지난해 글로벌 M&A(인수합병) 시장이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시장조사업체인 딜로직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계기로 급격하게 침체됐던 글로벌 M&A 시장은 2013년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며, 2015년 글로벌 M&A 거래규모는 5조달러(약 5700조원)를 상회해 역대 최고치였던 2007년 4조6000억달러(약 5400조원)를 경신했다. 세계 경기회복 지연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거나 근원적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M&A에 적극 나서는 양상이다. 특히 에이티앤티(AT&T)가 디렉티브이(DIRECTV)를 672억달러(약 77조27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초대형 거래가 활성화되고 건당 인수금액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M&A 규모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상당히 저조한 상황이다.
글로벌 물류시장의 M&A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1722건, 933억달러(약 107조2800억원)의 거래가 이뤄졌다. 분야별 M&A는 육운 456건, 3PL로지스틱스 393건, 해운 307건 순으로 거래됐다. 또한 글로벌 해운시장 재편바람을 타고 해운업계의 M&A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움직임이다. 2015년에도 물류분야에서 기업 간 M&A가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였으며, 평균 거래액도 8억7000만달러(약 2조원)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글로벌 물류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국의 페덱스가 네덜란드의 TNT를 44억유로(약 5조6800억원)에 인수를 합의하는 등 M&A의 대형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물류시장의 저성장으로 인해 물류기업 간 M&A는 성장의 수단을 넘어 생존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여기다 공급사슬의 지역화에 따라 글로벌 네트워크가 중요해지면서 이를 확보할 수 있는 요인으로 M&A가 주목받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는 2016년에는 글로벌 운송 및 물류기업 간 M&A가 730억달러(약 82조9400억원)를 돌파할 것이란 예측도 내놓고 있다.
中·日 공격적 M&A 나서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주도권을 쥐던 글로벌 M&A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 기업이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했다. 2020년 WTO가입 후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를 배경으로 해외자원 개발, 선진기술과 브랜드파워 획득 등 다양한 목적으로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중·일 삼국의 해외기업 M&A 규모는 한국 389억달러(약 48조원), 일본 3020억달러(약 371조원), 중국 2808억달러(약 345조원)로 집계됐다. 중국과 일본이 무서운 기세로 해외기업을 사들이는데 반해 한국은 해외기업의 M&A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일본 기업의 M&A 건수와 금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M&A 컨설팅회사 레코프에 따르면 지난해 계약이 완료된 해외 M&A 건수는 591건으로 집계됐으며, 인수총액은 8조1939억엔(약 85조7600억원)으로 분석됐다. 이는 전년대비 각각 6.9%, 2.8% 늘어난 수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들이 M&A를 위해 은행에서 받은 대출은 2조1800억엔(약 22조8000억원)으로 2014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기업들의 차입 비용도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물류기업에 대한 M&A도 활발했다. 일본의 긴테쓰익스프레스(KWE)는 싱가포르 물류기업인 APL로지스틱스 주식 100%를 1442억엔(약1조5000억원)에 인수했고, 일본우정도 호주의 물류기업 톨 홀딩스(Toll Hodings)를 6200억엔(약 6조4800억원)에 인수했다. 최근에는 일본우정이 DHL 글로벌 포워딩 사업부인수를 추진한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한진물류연구원 박찬익 수석연구원은 일본물류업계의 큰 규모의 해외 M&A가 증가하고 있는 배경으로 일본 내수 시장의 한계성 극복,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무 안전성을 극대화해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니즈가 점증하는 글로벌 물류서비스 대응 등을 꼽았다. 다만 신흥시장의 경기둔화에 따라 올 1분기 일본 기업들의 M&A 활동은 위축된 것으로 집계됐다. 외신에 따르면 국내외를 포함해 일본 기업이 관련된 M&A는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최근 3년간 M&A 규모를 크게 늘리며 공격적인 기세로 해외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발표한 ‘중국 기업의 해외 M&A 급증과 위험요인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들의 M&A 규모는 1181억달러(약 143조5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존에는 인수 대상기업이 자원이나 원자재분야에 한정됐지만, 최근에는 기술력과 브랜드파워를 지닌 IT·제조업·소비재 기업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물류기업 가운데는 하이난항공그룹(HNA)의 움직임이 가장 눈에 띈다. 중국의 복합기업인 HNA는 지난 1월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인 인그램 마이크로를 60억 달러(약 7조3000억원)에 인수했고, 지난달에는 스위스 항공 기내식업체 게이트그룹을 14억2000만 스위스프랑(약 1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기업 인수를 통해 물류와 관광, 공항, 부동산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력 확보와 브랜드 경쟁력 강화, 성장 동력 마련을 등을 위해 M&A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M&A 지원정책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으로 꼽힌다.
CJ대한통운 M&A 불붙이나
지난해 국내 M&A 시장은 글로벌 시장의 M&A 거래 대비 소규모 스몰딜이 주를 이뤘다. 중국·일본과 비교해 M&A 규모는 약 7분의1수준에 불과했다. 중국은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도 M&A를 통해 선진기술과 특허를 수집하고 있고, 일본은 장기 저성장과 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침체에 대한 극복수단으로 M&A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우리나라가 M&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나마 물류기업 가운데는 CJ대한통운이 가장 적극적으로 M&A 시장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CJ대한통운 최근 다수의 물류기업 인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금시초문이다”고 말을 아꼈다.
CJ대한통운이 인수를 검토하는 한 업체는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알려졌다. 해당 업체는 2011년 이후 3자물류에 대한 매출 감소로 인해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기업은 최근 몇 년 간 매출액 감소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겪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지난해 2020년까지 매출액 25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늘린다는 ‘비전 2020’ 달성을 선포했고, 실제로 지난 2013년 미국 UTI월드와이드, 2014년 싱가포르 APL로지스틱스 인수에 뛰어들었으나, 연이어 인수에 실패하는 쓴맛을 봤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국민연금이 공동투자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중국 냉동물류 회사인 룽칭물류의 지분 71.4%를 인수하며, 글로벌 물류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물류전문가들은 CJ대한통운이 M&A에 뛰어들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케이엔제이글로벌컨설팅 조철휘 대표는 지난해 12월 열린 CJ대한통운 지식포럼에서 “DHL, 페덱스 등 글로벌 물류기업은 지속적인 M&A로 규모를 키워왔다”며 “CJ대한통운 등 국내 굴지의 물류기업도 물류기업 간 M&A에 촉각을 곤두세워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물류기업이 되기 위해선 네크워크 확보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며 “이를 위해 국내 물류기업이 세계 곳곳에 지사를 세워 인재를 현지로 보내 그 나라에 최적화된 물류전문가로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CJ대한통운 고위 관계자는 최근 “2020년이후 매출액 27조 달성을 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자체적으로 20~30조 매출을 달성할 수 없다. 지역별로 M&A를 통해 네트워크를 다각화시키고, 최적화시켜 물량을 확대하면서 확장시켜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APL로지스틱스 인수전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은 금리가 제로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도 결국 물류 M&A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하며 CJ대한통운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M&A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전했다.
글로벌 물류 인프라 구축 시급
한편 전문가들은 정부가 물류산업 육성을 위해 M&A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는 정부의 물류산업 육성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할 부분으로 과감한 해외물류사업 투자 자금 조성 지원을 꼽았다. 퀴네+나겔이 최근 5년간 11건의 기업을 인수한 점과 독일이 1990년 이후 500억 마르크(약 35조원) 이상 펀드를 조성, 1200척 이상의 선박에 투자한 것을 사례로 들며, 해외진출 및 세계유수기업 M&A에 장기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내 재벌 대기업, 2자물류회사 대신 공동투자 물류대기업 창설을 제안했다. 현대자동차, 삼성, LG 등 2자물류기업을 보유한 대기업과 포항제철, 농협 등 물류에 관심을 보이는 화주들이 공동으로 지분을 투자해 물류전문 대기업을 창설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자 유인책과 함께,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과 투자재원 조성에 정부 및 정부투자기관 등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양 교수는 분석했다.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인프라 투자에는 정부가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글로벌 물류산업 육성의 기반은 글로벌 물류 인프라 투자와 직결된다. 세계적인 물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물류SOC 등 막대한 네트워크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민간기업이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현재 국내물류에 국한된 국가물류계획도 해외물류투자를 포함한 국가국제물류계획으로 확대할 것으로 제안했다. 멕시코 항만, 파나마 운하나 중국, 베트남 등의 항만 및 항만 배후단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의 항만, 철도, 도로 그리고 아프리카의 항만 및 도로,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물류시설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물류표준화 및 공동물류 촉진을 위한 IT 기반의 기술개발 지원도 시급하다”며 “글로벌 경쟁에서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물류인프라 및 연계체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물류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업전략측면에서나, 물류성장 동력을 키우는 국가 R&D 측면에서 IT기술 등 신기술 접목, 첨단산업화 정책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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