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조선업이 지난 4월 월간 수주실적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을 누르고 세계 1위에 깜짝 등극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필리핀이 월간 수주실적에서 세 나라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필리핀은 4월 한 달에만 59만CGT(수정환산톤수) 규모의 선박을 수주, 53만CGT의 일감을 확보한 한국을 6만CGT 차이로 앞섰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29만CGT 14만CGT를 기록하며 2~3위를 마크했다.
필리핀이 4월 세계 1위로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와 필리핀에 진출한 일본 조선소의 공격적인 수주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진중공업은 4월에만 1조1천억원 규모의 일감을 따냈다. 4월 초 2만6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3척을 수주한 데 이어 1만1천TEU급 컨테이너선 6척의 건조계약을 추가로 체결한 것.
일본의 쓰네이시 세부조선소도 벌크선 6척을 수주하며 필리핀의 실적상승에 일조했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한진중공업 수빅 조선소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선주에게도 차별화 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됐다.
필리핀 조선업은 1960년부터 1980년 중반까지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필리핀 경제 쇠퇴와 정부의 중고선박 수입 관세 인하가 현지 조선사들의 발목을 잡으며 1980년 중반 이후부터 조선업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궤를 같이해 필리핀 현지 조선사들의 경쟁력도 잃어버린 것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경쟁력을 잃게 된 현지기업들은 주로 중고 선박을 수입해 판매했으며 현재는 단거리용 목재선이나 소형어선 및 바지선 등 일부 선박만을 제조해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진출은 업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한진중공업의 새로운 시도가 필리핀 조선업에 훈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2008년 한진중공업은 약 16억달러의 대형조선소를 필리핀 수빅만관리청내에 건설했다. 필리핀 정부는 고용창출이 높고, 경제파급 효과가 큰 조선분야에 해외기업들로부터의 적극적인 투자유치를 위해 인센티브(법인세 면제, 부가세·관세율 영세율 적용 등)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4월 깜짝 실적을 발표한 필리핀이지만 올해 누계수주량은 한국·중국·일본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올해 4월까지 필리핀의 누계 수주량은 60만CGT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343% 폭증한 실적이지만, 350만CGT(-15%)를 기록한 우리나라와 격차가 상당하다. 일본은 180만CGT(-36%)로 2위를, 중국은 170만CGT(-69%)로 뒤를 잇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투트랙 전략으로 조선소를 가동시킨다는 방침이다. 8만평 규모인 영도조선소는 고부가가치선인 특수선과 중형선박을 중심으로, 수빅조선소는 대형 상선을 위주로 수주를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필리핀 현지 조선소의 인건비가 저렴해 가격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있다”며 “이번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를 계기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