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약품은 다른 상품들과는 달리 인간을 존중하는 윤리적 가치를 바탕에 두고 관리돼야 한다. 그래서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 판매하는 제약회사,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과 약국은 관련 법규와 제도를 준수하는 것은 물론 윤리에 바탕을 둔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의약품의 영업과 마케팅 관행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논란거리가 돼 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6년 제정된 선샤인(Sunshine) 법에 의거 제약회사가 의료기관에 제공하는 각종 판촉활동 내용을 시민사회에 공개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의료기관 및 약국에 제약회사가 제공한 리베이트 문제로 홍역을 치러 오고 있다. 리베이트로 인한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리베이트 비용은 약값에 반영돼 의료비와 건강보험료의 인상을 가져오게 돼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제약회사의 불공정한 경쟁을 조장 시키고 신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게으르게 해 제약산업 전체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자고 하는 요즈음 시대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제약 업계뿐만 아니라 의료기관과 약국, 유통업계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진료수가를 현실화해 리베이트와 같은 각종 편법과 불법의료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왜곡된 진료 현장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고 업계의 자율적인 결의도 필요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고 투명한 거래를 감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시스템이 구축 돼야 한다.
과거에도 제약산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의약품비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의약품 유통개혁 기획단’이란 기구를 구성해 ‘의약품물류조합’과 ‘의약품정보센터’의 설립을 추진한 적이 있다. 유통정보와 실물의 흐름을 연계시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구매전용카드를 도입하면 유통상의 실제 거래가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리베이트나 할인, 부당청구와 같은 비리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제약회사와 도매상이 공동으로 출자해 의약품의 보관과 수배송업무를 담당하는 조합을 설립하고 보건복지부는 보험자가 의료기관에 지급하던 의약품비를 물류조합에 지급하게 하고 다시 조합이 의약품비를 제약회사에 건네도록 함으로써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계획이었다. 물류조합이 설립되면 연간 4000억원 가량의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제약회사와 도매상. 병원 창고와 차량등 불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의사나 약사의 과잉 투약을 방지해 소비자에게 이득이 돌아 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관련단체들은 복지부의 계획에 총론은 찬성하지만 각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물류조합 구성주체인 제약사와 도매상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대한병원협회는 의약품비 지급체계를 바꾸는 것에 대해 반대 했다. 또한 병원협회는 약값은 실거래가격으로 정해지므로 제약사들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에 보다 음성적인 방법으로 로비를 할 것이 분명하며 이런 상황이 되면 모든 책임이 의료기관으로 돌아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투자주체인 제약회사와 도매상의 소극적인 참여 의지와 당시 물류업계의 화두였던 제3자물류, 공동화의 이상론에 치우쳐 물류의 실제 흐름과 거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준비 부족으로 무산 됐지만 획기적인 발상이었음에 틀림없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의약품 안전관리와 유통의 투명화 그리고 위해 가짜의약품을 차단하기 위해 전문의약품에 일련번호를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고 점차 일반 약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제도를 차질 없이 실시하기 위해 지난 7월 2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14년 상반기 의약품 바코드 및 RFID tag 실태조사’설명회가 열렸는데 600석이 넘는 회의실 자리와 준비한 자료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설명회를 주관하는 보건복지부의 담당자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좋은 시스템으로 생각되고 의약품 관련 업계 모두가 높은 관심을 보여 지난 번 실패했던 ‘의약품물류조합’을 추진하던 때와는 달리 무언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조업체와 수입업체는 의약품에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고유 번호를 의약품에 기재해야 한다. GTIN-13코드체계의 KD코드( Korea Drug Code ) 13자리 숫자( 국가코드 3자리, 제약회사 코드 4자리, 품목코드 5자리, 검증번호 1자리 )와 GS1-128코드 체계의 의약품 속성정보( 유통기한, 제조번호, 일련번호 )를 결합해 표기하게 되고 수배송 단위 포장에 적용하는 국제표준 Aggregation 코드도 도입된다. 그리고 의약품 공급업체( 제조회사, 수입사, 의약품도매상 )는 월 1회 의약품 공급내역을 의약품정보센터에 보고해야 하고 의약품제조회사와 수입사는 분기에 1회씩 제약협회와 의약품수출입협회를 통해 의약품정보센터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실질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물류관리 현장에 상당한 부하가 걸릴 것이고 적지 않은 투자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반품, 교환, 폐기등 판매 이후의 관리도 복잡해 질 것이지만 재고관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수배송 단위 포장( Serial Shipping Container Code )에 적용하는 국제표준 Aggregation 코드는 배송 효율을 크게 향상 시킬 것이다. 또한 재사용 할 수 있는 ‘Smart Returnable’ 포장 용기를 도입하면 비용절감과 환경개선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고가 의약품의 분실과 도난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약품정보센터에 보고하기 위해 수집한 정보를 경영정보로 활용하면 선입선출과 확실한 유효기간 관리를 할 수 있게 되고 실시간으로 재고 현황을 파악할 수 있어 재고 자산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살아있는 판매 정보에 기반을 둔 효율적인 생산계획 수립과 구매 관리를 할 수 있게 돼 큰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사제품의 지역, 거래처 별 판매 실적을 파악할 수 있게 돼 마케팅 계획과 인사관리( 영업사원 운영 )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제약 영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밀어내기 영업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RFID를 현업에 활용한 좋은 사례가 돼 IT업계 관련 기술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의약품처럼 세밀한 관리가 필요한 콜드체인을 운영해야 하는 식음료 분야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앞으로 어렵게 수집한 정보를 다양한 분야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시스템을 계속 진화 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나라의 제약, 의료산업 전체의 국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추진돼 자리 잡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관계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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