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대표.
월간 「물류와 경영」에서는 평생을 물류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지금도 국내 물류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대한민국 물류역사의 산 증인, 한국물류전략연구소 김정환 대표의 물류 40년사를 칼럼으로 연재합니다.
2. 우리나라 물류현장의 변천
이제 흘러간 나의 물류 40년의 세월을 회고컨대 감개무량하다. 나의 친구들은 ‘야 이제 그만해라’ ‘너 얼마 남지 않았어’ 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 황혼기 들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이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젊은 유통 및 물류교수들의 망년회 회식에 초청돼 참석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영문도 모르고 술잔을 나누다가 대화중에 ‘나도 이제 내년에는 그만두어야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이 ‘오늘 왜 이 회식에 초청됐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교수님이 80세까지 현직에 머물러서 일하는 그 비법을 알고자 초청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학교에서 떠나면 남은 인생을 어이 살 것인지 말입니다. 그만둔다는 말은 마시고 어떻게 하면 될 것인지...’ 나는 이 말을 듣고 후배들에게 미안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속으로 내가 그리 됐나 하고 자문했다.
나는 1955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충청도 모 고등학교 교직으로 발령됐으나 마침 그 해 3월 28일 부로 학군(CSMC)장교 (현 ROTC전신)로 입대 명령을 받게 됐다. 군임관후 부관병과에 보직 받아 인사장교와 교관생활을 하게 됐다.
1965년도 군전역과 함께 주식회사 태평양(현 아모레)에 입사해 기획과 인사와 영업 분야를 거쳐 물류분야로 옮겨 왔다. 이로부터 약 40년동안 현장에서 10년, 대학교수직 20년, 연구직으로 10년을 보냈다. 당시 물류부문으로 이동발령이 났을 때 착잡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도 이제 이 회사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됐구나’ 하는 마음에 일단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당시를 회상하며 부끄러울 따름이다. 당시만하더라도 물류분야(창고, 수송, 하역)는 천시와 멸시 그리고 사고다발 부서로 이 분야에 근무하는 사람은 명함마저도 제시하는 것을 꺼렸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물류분야가 가장 낙후된 원인중의 하나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창고담당부서로 발령을 내면 과장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북에서의 아오지탄광으로 쫓기는 인상이 들었다. 이러한 인상은 비단 태평양만이 아니고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같은 사정이었다.
그때 이후 창고와 창고부라는 이름이 없어지고 자재창고는 자재과, 제품창고는 제품과, 상품창고는 상품과로 개명하게 돼 이제는 창고가 거의 없어진 상태다. 현재는 거의 물류과 물류부(실)로 개명해 이제는 명함을 당당하게 제시하게끔 됐다. 이러한 부서에 가는 것을 나라고 해서 마음이 편할 리는 만무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주 발생하는 도난사고 또 재고의 들쑥날쑥, 배송의 지연, 영업 분야에서의 불만 등으로 말썽이 끊이지 않는 분야였고 또 창고라는 곳은 속된말로 노가다들이 일하는 곳으로 많이 알려졌었다. 필자는 일단 마음을 고쳐먹고 회장님의 명에 따라 선진국의 물류에 관한 견학을 1개월 정도 일본과 유럽으로 가게 됐고 특히 일본과 독일 네덜란드에서 물류 전반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됐다. 필자는 회장이 왜 내게 물류분야에 보냈는지 의도를 헤아리게 됐고, 나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게 됐다. 지금도 우리나라 기업의 물류는 낙후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거의 인력에 의존하고 기계화, 자동화는 엄두도 못 낼 때다. 본인은 이때 귀국행 비행기에서 우선 시급한 부분은 물류표준화가 선행돼야 기계화, 자동화된다는 것을 깨닫고 도착 즉시 착수하게 됐다.
1. 물류 초창기의 과제
나는 일단 상품부장으로 부임했다. 나는 착잡한 마음에서 무엇부터 할 것인지 엄두도 못 냈으나 해외에서 돌아오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실감하게 됐다.
(1) 현황파악과 문제점
° 조직은 분산해서 본사, 지점, 공장은 물론 화장품, 가정용품, 식품, 제약 등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영업창고는 영업부산하, 자재 및 제품창고는 생산부 산하에 두고 있었다.
° 수배송은 자사차가 90% 이상을 점하고 나머지는 용차사용을 하고 있었다.
° 수발주처리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운반하역은 80%이상이 수작업이고 손수레에 상품을 적재해 지게차가 부분적으로 운반하역 작업을 수행했다.
° 당시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낡은 파렛트를 구입해 상품을 보관하는데 깔판으로 사용하게 됐다.
° 포장은 어떤 규격도 없이 97종의 골판지상자가 사용되고 있었다.
° 상품의 보관은 한 건물에 조명도 밝지 않고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낡은 건물이었다.
° 작업은 거의 매일 야간작업을 해야 했고 토요일, 일요일도 거의 없었다.
° 상품재고는 남는 것은 엄청나게 남고 모자라는 것은 또 엄청나게 부족했다.
° 상품주문이 월초에 몰려 초순에는 잔업, 특근이 많았고 중순이후가 되면 작업량이 많이 줄고 하순에는 하루종일 종업원이 노는 날이 많았다.
(2) 현황분석과 물류백서 제정
위와 같은 내용을 분석해 문제의 심각성과 물류비의 과다지출을 주 내용으로 물류백서를 만들게 됐다. 몇 번 건의해도 위에서 별로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정부에서의 경제백서를 보고 물류백서를 만들게 됐던 것이다. 또 이 백서를 중역회의에 상정하게 됐다. 중역회의에서는 물류백서를 보고 모두 킬킬대고 웃기도 했다. “물류가 일본말 아니냐, 또 백서가 뭐야” 등과 같이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건의안은 회장님의 강력한 지시를 받게 됐다.
① 조직개편
영업부서장 및 각 지점 산하에 있던 창고과, 수송과 등을 통합해 수도권지역에 상품1부를 그리고 지역을 묶어 상품2부를 신설하고 물류를 총괄하는 본부제가 사장직속으로 신설됐다.
② 물류거점 확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신갈 등에 물류센터 부지를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③ 물류표준화 작업 착수
이 당시 표준포장치수가 전무해 거의 품목마다 골판지 외상자(OUT BOX)종류가 97종에 이르렀고 규격 파렛트가 없어 기계화, 자동화의 기본인 KS A 2155 파렛트인 T-11형을 기준으로 포장모듈화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④ 수발주의 전산화
수작업으로 실시되던 시스템을 1차적으로 호스트컴퓨터에 처리하도록 해 출하지시서와 전표를 기차편으로 매일 아침 지방에 배달하도록 했다.
⑤ 배송차량을 지입차를 도입해 노후차량은 점차적으로 지입차로 대체하기로 했다.
⑥ 포장의 모듈화와 유니트로드시스템이 도입돼 수송을 전량 파렛트 적재 운송토록 하고 보관창고의 랙시설도 이 규격에 맞추도록 했다.
⑦ 매월 1회씩 상품 및 판촉물 재고조사를 하게 됐다.
⑧ 하역작업을 포장의 모듈화와 함께 전량 지게차에 의해서 시행토록 했다.
⑨ 상품주문을 1일 캐파범위내에 주문하도록 하고 어음 발행 일자를 조정하도록 했다. <다음호에 계속>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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