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치적이란 소유한 선박을 자국이 아닌 외국에 등록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치․군사적 동기에서 유래한 이 제도는 오늘날엔 경제적 동기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다. 1922년 지금은 없어진 유나이티드어메리칸라인이 여객선 2척을 파나마에 치적한 게 경제적 동기에서 편의치적을 시작한 시초로 알려진다. 1948년 리베리아가 파나마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제공하면서 편의치적 서비스를 선언했다. 이후 온두르스 코스타리카 키프로스 소말리아 바하마 등이 편의치적국으로 등장했다. 최근 선박금융 문제로 편의치적 선박이 급격히 늘고 있다. 2007년 60%가 채 안되던 편의치적 선박은 최근 70%를 훌쩍 넘어섰다.
마셜제도공화국은 편의치적국의 후발주자다. 지난 1988년 편의치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로 26년째를 맞는 셈이다. 편의치적의 흐름은 마셜제도의 등장과 함께 급변했다. 마셜제도의 빠른 성장 속도 앞에 기존 편의치적국들이 힘을 못쓰고 있다. 마셜제도는 편의치적을 시작한 지 30년이 채 안돼 등록톤수 1억t을 돌파했다. 마셜제도 공화국 선박 및 법인 등록처 한국사무소의 김영민 대표는 2014년 1월부로 마셜제도의 선박 등록이 3050척 1억t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파나마 리베리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5년 새 두 배 성장
마셜제도는 기존 편의치적 강자들과 겨뤄 높은 기국(旗國) 품질로 주목을 받아왔다. 마셜은 늦깎이 편의치적국이지만 각종 차별화된 정책을 앞세워 선주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편의치적 서비스를 시작한 뒤 1990년 39척 200만t을 달성한 마셜제도는 10년 후인 2000년 300척 980만t을 달성했으며, 2009년 7월 5000만t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4년 반 만에 다시 1억t을 뛰어넘는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OMI와 오버시즈쉽홀딩(OSG) 등 미국 선사를 고객사로 뒀던 마셜기국은 2000년대 리크머스그룹과 오스카웨어, 나비오스그룹, 오션벌크마리타임, 프론트라인, 토발드 크라베네스 등 유럽 선사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스콜피오와 일본 MOL, 한국선사 등으로 고객층을 더욱 다양화하고 있다.
김영민 대표는 마셜의 빠른 성장에 대해 ‘선박 치적의 명품화’ 정책이 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셜의 선박치적 업무는 미국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인터내셔널레지스트리(IRI)에서 대행하고 있다. IRI는 전 세계 해운 거점 지역에 25개 사무소를 운영해 시차와 언어의 문제 없이 신속하고 편리한 고객 지원이 가능하다. 또 각 지역 사무소를 통해 각종 증서 발급 등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까다로운 등록기준으로 마셜은 기국과 편의치적국을 통틀어 가장 낮은 출항정지율(PSC Detention)을 자랑한다.
한국에 마셜제도가 편의치적국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한국사무소가 설립된 2007년 3월 이후부터다. 초창기부터 한국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김영민 대표는 짧은 시간 동안 차별화된 서비스로 1위 편의치적국인 파나마를 맹추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선박 중 마셜제도에 등록한 선박은 1월 현재 161척 930만t에 이른다. 650척의 파나마에 이어 2위 규모다. 한국은 마셜제도 기국 내에서 9.3%의 점유율로 그리스 미국 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선박을 등록한 국가로 부상했다.
김영민 마셜제도공화국 선박 및 법인등록처 한국대표 |
김 대표는 “한국 사무소 설립 당시 삼호해운 소속 1척이 가입해 있다가 곧바로 매각돼 사실상 ‘제로’(0) 상태에서 시작했다”며 “국내 선사들이 마셜제도의 질 높은 편의치적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마셜제도에 편의치적하고 있는 선사는 팬오션과 장금상선 폴라리스쉬핑 현대글로비스 현대상선 유코카캐리어 SK해운 흥아해운 동아탱커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팬오션이 30척으로 가장 많고 폴라리스쉬핑은 초대형벌크선(VLOC) 14척이 마셜제도 기국 선박이다. 현대상선은 신조 중인 1만3100TEU급 컨테이너선이 마셜제도 국기를 달게 된다. 유코카캐리어스는 자동차운반선(PCTC) 5척을, 글로비스는 PCTC 등 운항선대 대부분을 마셜제도에 등록했다. 권혁 회장의 시도상선이 마셜제도에 등록한 까닭에 수 척이 홍콩 선박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편의치적 경쟁체제 본격화…해운계에 기여
김 대표는 마셜제도의 편의치적 서비스가 국내 해운업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평했다.
“마셜 기국의 성장으로 편의치적도 경쟁체제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셜이 질 높은 편의치적 서비스를 추구하고 있는 데다 선택의 폭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한국 해운산업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김 대표는 마셜제도의 편의치적 서비스 차별화를 이렇게 말했다. 최대(the largest)가 아닌 최고 기국(the best flag state) 추구다. 그렇기에 선령과 출항정지율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마셜제도는 20년이 넘거나 어선, 출항정지율이 높은 선박은 아예 등록을 받지 않는다. 등록 기준을 까다롭게 함으로써 기존 등록선박들이 항만당국의 신뢰 속에 세계 5대양 6대주를 누빌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마셜제도 선박등록처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파리MOU, 도쿄MOU, 미해안경비대(USCG) 퀄십21(QUALSHIP21)에 우수국가(화이트리스트) 자격을 취득했다. 반면 파나마기국은 등록선박의 평균 출항정지율이 8%를 넘어 파리MOU나 도쿄MOU 등에서 블랙리스트로 관리되고 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명품 기국 서비스를 통해 마셜제도 편의치적의 장점을 더욱 알려나갈 계획이다.
“파나마에 선박을 등록했다가 우리 기국으로 넘어온 선주들 중엔 출항정지율이 낮으면 퇴출시키다보니 불만이 있기도 한데 해상안전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하면 다들 수긍하고 있습니다. 마셜기국은 관리가 까다롭고 고부가가치선박인 LNG선박이 가장 많습니다. 그만큼 명품 기국이라는 점을 선주들이 인정해주신 거죠. 일류 선주들은 일류서비스를 알아본다고 확신합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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