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1 15:57

“산업 형평성 논리에 매몰된 해운산업 지원책”

해운업 긴급진단 세미나서 해운업 금융지원 한목소리

국내 대형선사들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해운산업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의도에 울려 퍼졌다. 이인제 의원과 해럴드경제, 녹색성장해양포럼 주최로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해운업 긴급진단과 전망’ 국회 정책세미나에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시급한 금융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책금융기관들이 조선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선사에 돈을 빌려주는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해양수산부 김성범 해운정책과장은 영구채 발행, 해운보증기금 설립 등 해운산업 발전 정책과제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했다. 그는 먼저 정부의 해운업 지원이 외국에 비해 뒤처진다는 지적에 대해 해명했다. “금융위기 이후 해운산업에 실제 투입한 금액이 1조8000억원, 16억~17억달러 정도였다. 외국과 비교해서 단일선사에 지원한 것과 구분해야겠지만 정부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말씀드릴 수 있다.”

김 과장은 해수부는 올해 대형선사 만기도로 회사채 2240억원의 차환 지원을 모두 마무리 지었으며, 내년 만기도래 회사채 약 8600억원에 대해서도 차환 발행이 차질없이 지원되도록 금융당국과 협의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을 통해 10~11월 사이 7개선사에 350억원을 지원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김 과장은 최근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이 추진 중인 영구채 발행에 대해선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에서 1차적으로 영구채 발행을 위해 노력했고 해수부도 금융당국에 협조요청을 했지만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못했다. 김 과장은 “영구채가 자본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부채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의미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구채 발행 산넘어 산

해운보증기금의 경우 몇 가지 쟁점을 관련 부처에서 협의한 뒤 내년 상반기까지 매듭짓고 설립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운보증기금 설립의 쟁점사항은 ▲통상마찰 우려 ▲민간재원 50% 이상 조달 ▲산업간 형평성 문제 ▲해운업 한정해 지원시 조기 부실화 우려 등이다.

김 과장은 내년 말로 일몰제가 도래하는 톤세제 연장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톤세제는 2005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도입될 당시만 해도 일몰제에 해당이 되지 않았으나 2006년 12월30일 법령 개정과 함께 일몰제 대상에 포함됐다. 2009년 법령 개정으로 다시 2014년 12월31일까지 일몰이 연장됐다.

김 과장은 해운산업 지원 정책 도입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여러가지 대책과 현안 문제를 금융당국과 얘기하면 끝에 가서 벽에 부딪치는 논리가 산업간 형평성이다. 금융당국은 건설도 있고 다른 제조업도 있는데 왜 해운만 지원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나타낸다”며 “이런 인식을 갖게 한 데 대해 해수부도 심각히 반성하고 있으며 해운업계도 반성해야 한다. 해운업이 어렵지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결대 한종길 교수는 일본 해운산업과 비교해 우리나라 해운이 더 깊은 침체에 빠진 원인에 대해 진단했다. 한 교수는 해운 시장 불황의 가장 큰 원인인 선박수급 불균형을 두고 한일선사들의 온도차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선사들의 선박이 크게 늘어났다고 하지만 일본 역시 선박이 크게 증가했다”며 “차이점은 일본은 2004년부터 많이 늘어난 반면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일본의 선제적인 투자가 해운불황기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이어 일본의 해운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1964년 해운집약정책의 큰 틀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으며 초장기적 관점에서 해운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운항사 선주사 선박관리사의 역할분담을 철저히 해 해운 생태계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또 대량화물의 자국선사 우선주의 정책을 배경으로 한 자국화주와의 적극적인 공생관계는 일본 선사들이 불황 속에서도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교수는 “선화주 공생관계는 정부의 행정지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양한 선종 포트폴리오와 장기계약을 우선시해 경영 안정성을 높이는 전략, 국책은행을 통한 안정적인 선복확보자금 제공, 사내에서 전문경영인을 발굴하는 책임경영체제 등도 일본 해운산업의 장점으로 지적됐다. 한 교수는 “국내 해운이 없는 항만산업이 있겠는가? 해운이 붕괴되면 부산 광양 평택 인천 산업이 모두 무너질 수 있다. 해운은 국적선사가 무너지면 대체제가 없다. 일본이 해운만큼은 지원하는 이유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패널로 나선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물류연구본부장은 “해운시장의 먹구름이 옅어지고 햇살이 비치는 시기”라며 시황 낙관론에 무게를 뒀다. 그는 “수급의 펀더멘틀(기초여건)이 확연히 개선됨을 알 수 있다”며 “발주잔량도 기존 선대 대비 건화물선이 15%에 불과하기에 시황에 대해서 안심해도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선순환 사이클에 들어갈 타이밍이지만 우리 선사들은 어려운 사정으로 이를 못하고 있다”며 국내 선사들에 해운불황 극복의 지혜를 주문했다.

선박금융 무늬 제작금융

김영무 선주협회 전무는 국책은행의 조선 편중 지원책에 대해 비판했다. 김 전무는 “수출입은행 등의 선박금융 지원 정책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해외 플랜트 금융지원”이라며 “해운과 전혀 상관 없는 쪽을 금융 지원하면서 해운을 지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선도산업인 해운 지원이 우선돼야 조선산업도 침체를 극복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책금융기관들이 머스크나 CSAV 등 우리 해운산업을 위협하는 해외선주에 대한 선박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적선사는 채권 발행이 불가능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며 선박 발주에 대한 여력도 없다”고 국적선사들이 당하고 있는 불이익을 토로했다.

김 전무는 또 같은 날 오전 열린 한 조찬간담회에서 신재윤 금융위원장이 ‘금융기관이 보신주의에 빠져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금융기관의 업무형태는 경기 순응적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강제로까지 빌려주고 어려울 때는 그걸 회수한다. 경기가 어려울 때 극복하도록 역행투자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김홍섭 인천대 교수는 “해운은 제4군(軍)이며 전후방 연계효과가 강하다”고 해운의 중요성을 지적한 뒤 “해운이 무너지면 외국 선사를 쓸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건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고 국내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생각”이라며 해운산업 지원을 촉구했다.

최순권 부경대 교수는 “한국의 해운산업이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논리에 걸려서 지원을 못받고 있다”며 “경기변동을 흡수할 수 잇는 체력을 보유할 수 있느냐가 해운산업의 성공요인이다. 가장 중요한 게 금융지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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