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근해항로에서 동남아항로가 가장 왕성한 이슈메이커로 발돋움했다. 한일항로와 한중항로가 안정화 단계 진입 또는 지속적인 침체로 이렇다 할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동남아항로는 최근 몇 년 간 근해 중소선사들의 잇따른 진출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동남아항로는 올해 들어 높은 물동량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5%대 안팎의 성장률을 보이던 한국-동남아항로는 올해 상반기 성장 폭이 더욱 커졌다. 선사들의 진출 의욕을 높이기에 충분한 항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동남아간 컨테이너 물동량은 103만3300TEU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의 96만3100TEU에 견줘 7.3%의 성장률을 보였다. 국적선사와 외국선사 실적은 65만1400TEU, 38만1600TEU로 각각 7.8% 6.3% 증가했다.
이와 비교해 지난 한 해 동남아항로 물동량은 194만1100TEU를 기록, 4.9%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국적선사는 122만200TEU, 외국선사는 72만800TEU를 수송, 3% 8.3%의 성장 폭을 보여줬다. 국적선사와 외국선사의 성장률이 반년 새 뒤바뀐 셈이다.
물동량 ‘쑥쑥’…선사들 ‘눈독’
올해 들어 국적선사들의 두드러진 성장은 동남아항로 점유율 확대로 이어졌다. 상반기 동남아항로에서 국적선사와 외국선사의 점유율은 63.1% 36.9%를 기록했다. 지난 연말 62.9% 37.1%에서 반년 사이 소폭 변화됐다. 국적선사 점유율은 2011년 말 64% 지난해 다소 떨어졌다가 올해 들어 다시 확대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올해 국적선사들의 점유율 제고는 신규항로 취항과 공격적인 영업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항로를 취항하는 국적선사들은 다양한 노선에서 동남아항로를 공략해 왔다. 기존 선사들의 항로 확장 또는 신규선사들의 진출 등이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동남아항로는 고려해운과 흥아해운 장금상선 STX팬오션 등 일부 근해 국적선사들에 의해 좌우됐다. 이들 선사는 선복을 공유하거나 공동운항하는 방식으로 동남아항로에서 효과적으로 점유율을 늘리며 안정적인 발전을 일궈왔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기 들어 판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화선은 바로 남성해운이다. 남성해운은 동북아항로만을 취항하던 근해선사들이 동남아항로로 눈을 돌리는 데 첫 단추를 꿰는 역할을 했다.
남성해운은 안정적인 한일항로를 기반으로 수익을 비축한 뒤 지난 2006년 자사선을 띄워 남중국과 홍콩항로 서비스를 시작하며 동남아항로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 선사는 이듬해 드디어 인천과 베트남 하이퐁을 잇는 인천·하이퐁서비스(IHS)를 개설하며 명실상부한 아시아역내선사로 발돋움했다.
남성해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2010년 3월 베트남 호찌민과 태국을 잇는 한국-베트남·태국(KVT) 서비스를 추가 개설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흥아해운과 선복교환을 통해 한국-하이퐁항로를 주3항차로 늘리는 등 동남아항로에서 입지를 다졌다.
남성해운의 뒤를 이은 곳은 천경해운이다. 천경해운은 지난 2010년 선복을 빌려 태국 서비스를 시작한 뒤 지난해엔 자체 선박을 띄우며 동남아항로 진출을 선언했다. 때마침 신생선사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양해해운이 2011년 상반기 경영악화로 태국서비스를 접으면서 천경해운의 동남아항로 진출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천경해운은 지난해 5월 남성해운이 단독으로 운항해오던 KVT에 배 1척을 넣고 본격적으로 동남아항로 서비스에 나섰다. 이어 같은 해 9월엔 주 1항차의 컨테이너선 항로인 베트남·태국서비스(VTS)를 개설했다.
이번엔 고려해운·장금상선과 호흡을 맞췄다. 세 선사는 이 항로에 적재능력 1000~1100TEU급 컨테이너선 1척씩을 나란히 배선했다. 천경해운은 한 해에 베트남 호찌민과 태국항로를 주2항차로 늘리는 발빠른 움직임으로 주목받았다.
STX팬오션 빈자리 공략 ‘가열’
올해 들어서도 동남아항로 확대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오히려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흥아해운과 장금상선 STX팬오션이 지난 3월 손잡고 1700TEU급 컨테이너선 3척을 앞세워 인도네시아 해운시장 공략에 나선 게 첫 시작이었다. 서비스 명은 부산·자카르타익스프레스(PJX)다. 광양항을 출항해 부산과 울산을 경유, 홍콩-자카르타-홍콩을 주 1회 직항 연결하는 노선이다.
같은 달 말 장금상선은 이번엔 고려해운과 손잡고 800TEU급 선박을 1척씩 배선해 부산·울산·광양과 베트남 하이퐁을 잇는 한국·하이퐁(KHP) 항로를 개설했다. 이로써 장금상선은 동남아항로 진출 후 처음으로 하이퐁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
고려해운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 4월 원양선사인 한진해운, 대만·홍콩계 선사인 TS라인과 합작해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네시아를 잇는 뉴차이나인도네시아(NCI) 노선을 개설했다. 이 항로엔 고려해운 한진해운 1척, TS라인 2척의 라인업으로 25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이 취항했다.
후발주자인 남성해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성해운은 지난 3월 1850TEU급 신조 컨테이너선 3척을 천경해운과 함께 운항하는 KVT항로에 투입하며 수송능력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또 지난 6월엔 PJX 서비스 선복을 용선함으로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올해 하반기는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초대형 이슈를 기반으로 동남아항로에서의 새로운 판세 짜기가 가속화됐다. STX팬오션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6월17일 이후 모든 동남아항로에서 철수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전 항로가 중단됐다.
동남아항로 후발 주자인 천경해운과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이 STX팬오션의 빈 자리를 공략한 대표적인 선사들이다. 천경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 6월 말 우리나라 인천·부산과 베트남 하이퐁을 잇는 신항로를 열었다. 인천을 출발해 부산, 홍콩, 하이퐁을 거쳐 다시 홍콩, 중국 샤먼, 인천으로 돌아오는 이 서비스는 하이퐁익스프레스(HPX)로 이름 붙었다.
두 선사는 이 항로에 1000TEU급 선박 2척을 운항 중이다. 천경해운은 사선을, 현대상선은 천경해운에서 용선한 선박을 각각 투입했다. 엄밀히 따져 천경해운 선박만으로 항로가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천경해운과 현대상선은 베트남 하이퐁에 첫 진출하는 쾌거를 일궜다. 그 전까지 두 선사는 호찌민서비스만을 진행 중이었다.
천경해운은 HPX가 개설 이후 빠르게 안정화되자 제2의 하이퐁서비스인 HPX2 개설을 현대상선과 협의 중이다. 천경해운은 3개의 동남아항로 서비스 중 유일하게 HPX에서 흑자를 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 8월 STX팬오션이 빠져나간 PJX에 합류, 장금상선 흥아해운과 하이파이브했다. 현대상선은 PJX 참여로 기존 ANX(Aisa New Express)와 함께 인도네시아 노선을 2곳으로 늘렸다.
고려해운은 STX팬오션과 서비스해오던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 노선에 단독으로 배를 띄우며 수혜선사로 떠올랐다.
동영해운과 동진상선은 STX팬오션이 빠진 틈을 노려 동남아항로 진출을 단행했다. 동영해운은 천경해운과 현대상선이 개설한 HPX 서비스에 지난 7월 초 선복 용선 방식으로 합류하며 동남아 항로에 진출했다.
이 선사는 동남아항로 진출 시기를 놓고 저울질하다 최근 항로 물동량이 늘고 있는 데다 STX팬오션의 공백으로 물동량이 다른 선사로 이탈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전격적으로 서비스를 결정했다.
동진상선도 사정은 비슷하다. 8월 남성해운과 천경해운이 공동배선 중인 KVT에 선복을 빌려 호찌민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동안 동남아항로 진출을 놓고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동진상선은 남성해운 천경해운과 선복 용선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해 8월 말 마수걸이 서비스에 나설 수 있었다.
동진상선과 동영해운은 신조선이 인도되는 내년 이후 자사선 서비스를 출범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두 곳은 현재 1000TEU급 컨테이너선을 1척씩 나란히 발주한 상태다.
동영해운은 지난 2월 현대미포조선에 1700만~1800만달러에 신조선을 발주했다. 지난 1997년 대선조선에서 <페가서스 프렌티>호를 인도받은 이후 16년 만의 신조선 발주다. 선박인도는 내년 3월께다. 동진상선도 한화 200억원(약1800만달러)을 투자해 대선조선에 동급 선박 1척을 발주했다. 신조선 인도시기는 2014년 말이다.
범주·태영만 미진출 선사로 남아
이제 근해 컨테이너선사 중 동남아항로에 진출하지 않은 곳은 범주해운과 태영상선 한성라인 등 3곳만이 남게 됐다. 장금상선 자회사인 한성라인은 한중항로 서비스를 목표로 설립된 선사란 점에 미뤄 실질적으로는 2곳만이 남은 셈이다.
이 중 범주해운은 지난 2011년께 신조선을 발주하며 동남아항로 진출 채비를 마쳤으나 끝내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일본 선사 MOL의 해운대리점을 맡고 있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양사는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면서 주력노선을 침범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MOL은 한일 및 한중항로에, 범주해운은 MOL이 서비스하는 항로에 배를 넣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범주해운은 동남아항로 진출 마지막 단계에서 MOL과의 오랜 친분관계를 고려해 진출 의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범주해운은 동남아항로를 염두에 두고 발주한 1060TEU급 신조선 2척을 지난해 10월 신설한 일본 서안항로에 투입했다.
STX팬오션의 서비스 철수와 신규 선사들의 잇따른 동남아항로 진출로 항로 점유율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관심사다. 종전까지 동남아항로의 물동량 점유율은 고려해운 20%, 흥아해운 14%, STX팬오션 8%, 장금상선 4%가량이었다.
이 가운데 고려해운은 인도네시아, 흥아해운은 호치민·태국 노선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주력선사로 활동 중이다. 후발주자인 남성해운과 천경해운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원양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까지 가세함으로써 동남아항로는 격전지를 방불케 할 만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전투구식의 경쟁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실제로 뒤늦게 진출한 선사들은 낮은 운임 구조로 아직까지 한 곳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STX팬오션의 동남아항로 중단으로 그 수요를 신규항로에서 흡수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화주나 포워더들이 늘어난 선사들을 상대로 운임 인하에 나서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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