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6 14:22

기획/부산항 덤핑하역료 뾰족한 수 있나

부산항 두자릿수 성장에도 북항은 ‘뒷걸음질’
자성대 조기폐쇄 물 건너가…하역료 신고제, 북항부두통합 등 대책 고심

●●●지난해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1600만TEU를 넘어서며 전년대비 14%의 성장을 보였다. 세계 5대 항만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부산항만공사(BPA)는 지난해 성장에 힘입어 올해는 컨테이너 100만TEU를 끌어올린 1750만TEU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부산항 컨테이너 성장을 이끈 것은 단연 신항의 독보적인 물량 증가 때문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부산 신항에서 처리한 컨테이너는 774만9731TEU로 지난해 548만5227TEU에 비해 무려 41.3%가 증가했다. 올해도 신항의 성장가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설 부두 개장과 철도물류시설 확충 등 신항 성장의 든든한 밑거름이 그 배경이다.

올해 1월 부산 신항 2-3단계 부두인 부산항신항컨테이너터미널(BNCT) 4선석이 개장했다. 고려해운과 CMA CGM의 선박이 1월말부터 BNCT로 기항하기 시작했으며 차츰 북항에서 신항으로의 물량 이전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신항은 그동안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배후철도망까지 갖추면서 본격적인 신항시대의 발걸음을 떼고 있다. 부산항의 지난해 철도 수송량은 전년대비 10% 증가한 81만3천TEU를 기록했다. 오는 10월에는 신항 남측 컨테이너부두에 1일 최대 1400TEU를 처리할 수 있는 철송장이 들어선다. 철송장 운영사에는 삼익물류가 선정됐다. 신항이 공급과 수요의 쌍끌이 성장으로 웃음꽃을 피우는사이 북항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북항 부두의 세 축인 자성대(한국허치슨터미널) 신선대(대한통운부산터미널) 감만부두의 컨테이너 처리 실적은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자성대 터미널은 물량이 6.5% 줄었으며 신선대 터미널은 4.4%의 역신장에 한숨 지었다. 선사들의 신항 러시가 북항 부진의 근본 이유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신항에 자체 터미널을 마련하고 옮겨간 데 이어 APL이나 MOL 등 외국선사들도 신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다만 북항 터미널들이 마이너스 또는 1%도 안 되는 낮은 성장을 보일 때 우암부두는 4.5%의 비교적 견실한 물량 증가를 기록해 눈길을 끈다. 우암부두의 호성적은 취항선사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우암부두를 이용하는 주요 선사는 흥아해운과 고려해운 등 근해선사들이다. 원양선사들이 대부분 신항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심각히 검토중인 반면 근해선사들의 경우 전용 부두가 없는 신항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 여전히 북항을 찾고 있다.

원양선사들의 신항 이전 가능성은 올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북항 터미널 운영사들도 선사 단속에 두통이 심해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그랜드얼라이언스(GA)의 신항 이전 여부다. 지난해 연말 아시아-유럽항로에서 NYK 하파그로이드 OOCL이 뭉친 GA와 현대상선 APL MOL의 뉴월드얼라이언스(TNWA)가 결합해 G6를 만들었다. G6는 당초 계획보다 한 달 앞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G6가 출범하면서 신선대부두가 마음을 졸이게 됐다.

현재 GA측 선사들은 북항 신선대부두를, TNWA 소속 선사들은 신항 부두를 이용하고 있다. G6 체제에 의한 서비스가 본격 출항할 경우 GA와 TNWA가 얼라이언스 극대화를 위해 한 곳으로 모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양선사들이 신항으로 이전하는 추세인 만큼 GA도 이번 기회를 빌어 신항에 터를 잡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G6는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총 8곳의 서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2개 노선이 부산항을 들르게 된다. 북유럽과 지중해 노선 1곳씩이다. G6는 북유럽 노선은 현대상선부두를, 지중해 노선은 신선대 부두를 기항키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현재 GA측 선사들의 신항 이전 계획은 없다”며 “G6의 부산항 기항 노선에 대한 하역료 견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항으로 물량이 지속적으로 이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항 터미널 운영사들간의 과당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하역료는 바닥 없는 추락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항은 생산성이 북항에 비해 높은데다, 터미널 운영사들의 성격상 전략적으로 대형선사를 유치할 수 있는 구조로 물량이동을 부추기고 있다.

G6를 잡기 위해 터미널 운영사들이 더 낮은 요율을 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이미 신항으로 터를 옮기기로 결정한 곳도 있다. 함부르크수드는 오는 3월부터 남미동안 노선에 대해 두바이포트월드가 운영 중인 부산신항만(PNC) 부두로 옮긴다.  한 하역업체관계자는 “지금보다 대한통운과 GA계약이 8월에 종료되는 때에 하역료가 더 내려갈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귀띔했다.

컨테이너하역 시장 안정화 ‘머나먼 길’

항만업계에 따르면 부산항의 평균 컨테이너 하역요금은 4만원 안팎이다. 운영사별로 높은 곳은 5만원, 낮은 곳은 3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선사들이 신항으로의 이전을 빌미로 경쟁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하역사들이 물량 확보를 위해 심각한 수준의 낮은 요율을 제공하고 있다. 운영사들은 하역료 인상이 쉽지 않은 만큼 정부에서 한시적으로나마 인센티브제도 등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토로한다.

업계는 지난해보다 올해 하역료가 더 내려갈 수 있어 하역시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사들이 비상경영 체제로 돌아서면서 비용감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보면 결국 운영사들은 크레인을 세우게 되고 항만근로자를 감축해 노동시장불안을 가져오게 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항만물류협회가 나서서 컨테이너 하역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하는 이유다.

항만물류협회는 지난해 진행한 하역료 안정화방안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단기적으로 협회와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간에 공정경쟁협약(클린협정)을 진행하고 공정경쟁규약을 제정해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후 항만운송사업법 개정 절차를 밟아 공동행위 조항을 삽입하고 요율 공표제 도입 등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결과를 얻기도 전에 이 같은 계획은 현재 ‘올 스톱’된 상태다.

클린협정은 외국계 터미널 운영사들의 참여 부진에 공정거래법 저촉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공정거래위원회측이 항만물류협회에 클린협정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아직까지 공정위로부터 이에 대한 공식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지만 결국 공정경쟁규약 등 다음 절차로 넘어가는데에도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터미널 운영사간에 하역료 과당경쟁에 대한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는 마련할 수 있었다. 선사들도 하역업계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항만물류업계의 현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단지 실행에 옮기지 못할 뿐이다. 협회도 공감대 형성을 이뤘다는 점에서 컨테이너 안정화 방안에 대한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고 보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컨테이너에 이어 벌크 안정화 방안 용역도 추진할 계획이다.

하역료 시장이 바닥까지 내려간 데에는 물량에 비해 터미널공급이 과잉돼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부산신항 1단계에선 싱가포르 PSA와 ㈜한진이 부산신항국제터미널(PNIT) 3선석을 운영하고 있고 DP월드가 부산신항만(PNC) 6선석을 운영하고 있다. 2단계에는 한진해운(HJNC)이 4선석, 현대상선(HPNT)이 4선석을 각각 가동 중이다. 1월부터 고려해운, CMA CGM, KCTC, 인터지스가 참여한 2-3단계 BNCT 4선석이 개장하면서 부산신항은 총 21선석이 운영되고 있다.

부산항은 올해 100만TEU의 물량 증가를 목표하고 있지만 신항 BNCT 개장으로 전체 부두 공급은 더욱 늘어나 북항 터미널 운영사들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대형 하역업체인 A사 관계자는 “신항 공급이 늘어나고 있고 터미널마다 처리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경우 수급균형은 향후 몇 년 간 요원할 것”이라며 “공급을 줄이는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밝혔다.

터미널 공급 줄이는 묘안은?

자성대를 조기 폐쇄해야한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흘러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와 협회가 추진 중인 컨테이너 안정화 대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자성대 폐쇄도 가능성이 희박하긴 마찬가지다. 운영사인 허치슨측은 자성대 부두를 조기 폐쇄하는 대신 대체부두로 신항 2-5단계를 요구하고 있다. 경쟁업체들은 터미널 공급축소를 위해 자성대의 조기폐쇄를 전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나 허치슨의 신항 요구에는 결사반대다. 허치슨의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형 하역사 한 관계자는 “자성대의 조기폐쇄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신항 운영권 요구는 말도 안 된다”며 “현재 신항 1단계는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가 차지하고 2단계는 선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정부가 2-5단계는 국내 운영사에게 기회를 줘야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자성대 조기폐쇄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있다. 정부도 북항재개발계획에서 자성대의 조기폐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국토해양부 송상근 과장은 “자성대는 2019년까지 운영하게 돼있고 정부는 그 권리를 보장해 줘야한다”며 “일각에서 조기 폐쇄 안을 얘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고려하지 않고 있고, 신항 2-5단계 운영은 외국계건 국내건 부산항에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운영사로 선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국내 터미널 운송업체에게만 더 큰 기회를 주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공급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하나 사라지자 업체들은 다른 해결책을 찾고 있다. 북항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현재 과당경쟁으로 인한 하역요금 덤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개 터미널운영사가 통폐합을 협의 중이다. 하역사를 줄여 북항의 경쟁을 완화하겠다는 의도다. 조만간 통합추진을 위한 전담팀(TFT)이 꾸려져 각 운영사들의 참여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각 운영사 대표에게는 참여 의사를 묻는 협의서가 전달된 상태다.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통합이 추진되면 1개의 통합 운영사를 만들고 각 업체들은 시설 생산성과 영업력 등을 평가해 지분율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운영사 통합에 대해 북항 운영사들은 현재 상황으로서는 어떤 조치든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통합은 하나의 대안일 뿐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운영사간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밖에 없어 통합논의에 미온적인 모양새다. 통합에 참여한다고 해도 이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 운영사 관계자는 통합이 추진되면 우선 참여해 향후 추진계획을 지켜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통합을 추진하게 되면 몇 십 년 동안 관계를 유지해오던 기존 고객과의 비즈니스가 멈추게 되고 참여해도 지분율 문제가 복잡한데 굳이 통합할 게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정부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지는 않더라도 업계가 통합을 통해 경쟁을 해소하겠다는 방향에는 뜻을 같이 한다는 입장이다. 운영사 통폐합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업계에서 통합 추진 과정에서 의견불일치 등의 조정을 요청하면 지원은 해 줄 수 있지만 국토부가 주축이 돼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상반기 중으로 통합폐합에 대해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공급과잉은 정부 탓’…국토부 ‘우리도 고심 중’

하지만 업체들은 통폐합을 가정하면서도 이런 공급 초과현상을 이끈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선석당 컨테이너 적정하역능력을 고려하지 못하고 항만개발을 추진해 덤핑경쟁으로 운영사를 내몰았다는 것.
국토부 송상근 과장은 “하역료 관련해서는 여러 요인이 있고 정부도 하역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각적으로 주시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신고제를 바탕으로 실제 하역료 조사를 벌여 지나치게 낮은 하역료를 제시하는 업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말부터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은 부산항의 하역료 안정화를 위해 컨테이너전용 부두운영사들의 실제 하역료 조사에 나섰다. 서면조사와 현장조사 등을 벌여 하역료 실태조사를 벌이며 신고 하역료와 실제 하역료 차이를 파악했다. 신고요금을 기준으로 ±20%의 허용범위를 두고 하역료를 더 낮게 받는 업체에게는 과징금과 사업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조치가 ‘솜방망이’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업체들이 처음부터 신고요율을 낮게 제시하기 때문에 20%의 허용범위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충분히 낮은 하역료를 줄 수 있는 것. 정부는 신고 하역료가 너무 낮으면 반려한다는 입장이지만 낮은 하역료의 기준도 모호한 상황이다.

 정부는 업체별 요율체계가 달라 가이드라인을 정할 수 없는데다 공정거래법 저촉을 우려해 법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란 점을 들어 애매한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실하역료 조사는 지난 1월부터 전국항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가 하역료 덤핑으로 허덕이고 있는 항만시장에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킬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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