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1 09:29

이호영칼럼/ 엿치기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밤바람이나 쏘일까 야간 산책을 나왔더니 잡 앞 평촌 지하철 역전 먹자골목이 불야성을 이루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진기하게도 엿목판을 벌려 놓고 있는 엿장수가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엿을 유달리 좋아했다. 그래서 엿장수의 가위소리만 들리면 돈도 없이 뛰어 나갔다 재수가 좋으면 엿치기 하는 어른들을 만나 공짜 엿을 얻어먹게 되는 횡재를 하기도 했다. 또 조금 커서는 집에 헌 신발이나 양은 냄비 안 쓰는 것이 생기면 엿으로 바꿔 먹으려고 잘 챙겨 두기도 했다.

충남 공주에서 내 나이 아홉 살 때 있었던 일이다. 아버님이 병환으로 위독하셔서 어머님께선 등교하는 우리들에게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학교에서 조퇴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학교를 조퇴하고 귀가하던 중, 시장에서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났고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른들의 엿치기 한 판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나는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엿치기 구경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엿가락을 분질러 수북하게 쌓아 놓은 엿가락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내가 눈에 밟혔는지 엿치기를 하던 아저씨가 “얘, 꼬마야! 엿 먹고 싶냐?”며 엿치기를 하고 남은 부러진 엿을 잔뜩 집어 줬다. 나는 웬 떡인가 싶어 상의 앞자락을 내밀어 엿을 받았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이 난 듯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절을 하고는 볼이 메어지게 엿을 먹으며 집으로 내달렸다. 얻은 엿을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이윽고 아버님이 누워 계시는 사랑방에 들어서니 아버님은 잠자는 듯 누워 계시고 어머님과 함께 성당에서 오신 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엿을 우물거리며 “다녀왔습니다!”하고 외치며 들어서는 나에게 어머님은 말없이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뭔가 분위기가 몹시 무거워 상항파악을 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신 어머님께선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나는 입 속에 하나 가득 들은 엿을 남들이 눈치 못 채게 녹여 삼키려 애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성당에서 오신 분이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하자 어머님과 방안에 계신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곡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떤 누군가가 나보고도 곡을 해야 한다며 말했다. 나는 슬픈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억지로라도 울어 보려고 대천 해변에서 식구들을 잃어버렸던 것을 마음속에 떠 올렸다. 평소에는 그 생각만하면 울음이 나왔는데 그날따라 울음이 나지 않고 ‘입 안에 들어 있는 엿과 호주머니마다 가득 들어 있는 엿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데만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퍼뜩 아버님이 위태로우신 날 엿에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게 얼마나 아버님께 죄송한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바보스럽고 울고 싶도록 멍청해 보이는지 정신이 들었다. 꼭 내가 엿에 한눈을 팔아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 같은 기분에 후다닥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서 입에 들은 엿을 뱉어 버리고 호주머니의 엿을 모두 버렸다. 그렇게 많은 엿을 얻어 기쁜 적도 없었지만 그다지도 엿이 짐스럽고 애물단지 같았던 적도 없었다.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평촌 역전 엿장사에게서 엿을 한 상자 샀다. 그리곤 하나 집어 입 안 가득 엿을 우물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엿에게 무슨 죄가 있었나?”

그런데 또 한 번 퍼뜩 ‘아차! 내가 또 미련하게…’ 하며 머리를 쳤다. 얼마 전에도 엿을 먹다가 치아를 봉했던 것이 빠져 다시 이를 씌웠는데 내가 또 엿을 먹다니! 나는 길가 쓰레기통에 엿을 상자 째 처박아 버렸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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