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4 17:15

논단/ 유류오염사고에서의 선주의 책임제한 배제

정해덕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
■ 선주자신의 무모한 행위로 인한 손해는 책임제한이 배제됨

<4/21자에 이어>

3. 대법원 2006. 10. 26. 선고 2004다27082 판결 소개

(1) 사안의 개요

위 사건은 freight forwarder가 갑판적으로 선적되어 운송된 화물의 해수침손사고에 대하여 화주에게 배상하고 이를 해상운송인에게 구상청구한 사안에 관한 것으로 위 대법원 판결은 해상운송계약 당사자인 형식상의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실제 해상운송을 한 해상운송인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한편, 해상운송인의포장당 책임제한 주장에 대하여 갑판적을 한 행위는 선주 자신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선주책임제한을 배제하였다.

(2) 판결이유

1) 청구인 적격의 문제
원심은 그 채용증거들에 의하여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는 이 사건 제2운송계약에 따라 이 사건 화물을 안전하게 선적하여 보존관리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여 이 사건 수출화물 중 로우어 쉘 1상자를 갑판적으로 운송함으로써 화물의 손상을 야기하여 원고로 하여금 이 사건 수출화물의 화주에게 손해배상을 하는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피고는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원고가 입은 이러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는바, 이와 같은 원심의 판단 속에는 제2운송계약상의 수하인이 아닌 제1운송계약상의 송하인 내지 수하인으로부터 권리를 양수받았다고 주장하는 원고에게는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는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불 것이다. 따라서 원심판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판단누락의 위법이 없다.

2) 법인격부인의 문제
원심이, 소외 1 회사는 해상운송에서 운송인의 책임을 부당하게 회피할 목적으로 피고와 영업상 실질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으로만 브리티쉬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소위 paper company)로서 피고와 동일한 법인격처럼 운영되어 왔다고 인정한 다음,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이 외견상 원고와 소외 1 회사 사이에 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소외 1 회사의 배후자인 피고는 소외 1 회사와 별개의 법인격임을 주장하며 이 사건 제2운송계약에 따른 채무가 소외 1 회사에만 귀속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고, 피고 역시 이 사건 제2운송계약에 따른 채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기록에 비추어 정당하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내지는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없다.

3) 갑판적 합의의 존재 여부
원심이 이 사건 수출화물을 갑판에 선적하여 운송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점을 인정한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갑판적 합의가 존재하였다는 피고의 항변을 배척한 조치도 기록에 비추어 정당하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내지는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없다.

4) 선하증권 이면약관의 적용 문제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이 사건 제2운송계약 당시 이 사건 수출화물에 대하여 선하증권을 발행하지 않는 이른바 서렌더(surrender) 화물로 처리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져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않았다고 보아, 선하증원의 발행을 전제로 그 주장의 선하증권 이면약관 제24조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미화 500SDR로 제한된다는 주장을 배척한 조치는 정당하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내지는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없다.

5) 포장당 책임제한의 적용배제 문제
상법 제789조의2의 제1항 본문에 의하면 해상운송인이 운송물의 수령, 선적, 적부, 운송 등에 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은 당해 운송물의 매 포장당 500SDR을 한도로 제한할 수 있으나, 한편 같은 항 단서에 의하면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그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것인 때에는 이러한 책임의 제한을 허용하지 않는다. 위 조항의 문언 및 입법연혁에 비추어, 단서에서 말하는 ‘운송인 자신’은 운송인 본인을 말하고 운송인의 피용자나 대리인 등의 이행보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 단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겠으나, 법인 운송인의 경우에 있어, 그 대표기관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만을 법인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면, 법인의 규모가 클수록 운송에 관한 실질적 권한이 하부의 기관으로 이양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 단서조항의 배제사유는 사실상 사문화되고 당해 법인이 책임제한의 이익을 부당하게 향유할 염려가 있다.

따라서 법인의 대표기관뿐 아니라 적어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에 따라 당해 법인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이사회의 구성원 또는 임원이 아니더라도 그의 행위를 운송인인 회사 자신의 행위로 봄이 상당하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그 채용증거들에 의하여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 수출화물을 원고와의 합의 없이 임의로 갑판에 선적하도록 지시한 피고의 관리직 담당직원인 소외 2와 소외 3이 대외적으로 대표권을 갖는 소외 1회사의 대표기관은 아니더라도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체결과 그 이행과정에 있어서 소외 1 회사의 직무분장에 따라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대표기관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건 화물을 갑판에 선적한 행위는 운송인 자신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조치는 기록에 비추어 정당한 것으로 수긍되므로, 원심판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 내지는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해석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3) 결어

위 대법원판결은 법인의 이사 또는 임원이 아닌 차장급 직원의 의사결정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상황에 따라서는 운송인 자신의행위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차장급직원의 행위를 선주자신의 행위로 간주함으로써 선주자신으로 볼 수 있는 범위를 넓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위 판결은 그 당부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고 비록 포장당 책임제한에 대한 판결이기는 하지만 그 해석기준은 일반적인 선주유한책임이나 선주의 유류오염손해배상책임에 있어서의 책임제한배제여부에 관하여도 일응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프랑스 보르도항소법원 판결(1994. 5. 31. Heidberg Case) 소개

(1) 사안의 개요

위 사건은 독일 선박 Heidberg호가 1991. 3. 9. 프랑스 Pauillac 해안 방파제에 충돌하여 손상을 입힌 건에 관한 것으로 선주가 방파제 소유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책임제한을 주장한 사안이다.

(2) 판결요지

위 사건에 대하여 프랑스보르도항소법원(The Court of Appeal of Bordeaux)은 1994. 5. 31.자 판결에서 충돌사고가 선장의 잘못으로 인한 것임은 물론 선장의 선원에 대한 믿음부족, 선원간의 단결부족으로 인한 것이고 이러한 사정은 선주가 정기적인 보고를 받는 이상 알았거나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충돌사고가 선주 자신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인한 것으로 판시하고 선주책임제한을 배제하였다.

(3) 결어

위 판결은 1976년 책임제한조약의 책임제한배제 조항(제4조)의 해석에 대한 일응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로서 그 후의 2003. 2. 11. Pepe Roro 사건, 2003. 10. 8. Multitank Arcadia 사건 등 프랑스법원 판결에서도 그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5. 결론

선주책임 배제사유로서의 “선주자신의 무모한 행위”여부는 일의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우며, 구체적 사안에 따라 선주자신의 개입 또는 인식여부, 정도, 사용자의 피용자에 대한 수권여부, 보고여부, 업무분장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엄격한 기준 하에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유류오염사고와 같은 대형사고에 있어서는 각 당사자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므로 선주책임배제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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