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0 11:31
1997년 건조. 최초의 한국국적 카훼리 선박, 최대 속도 25노트, 총톤수 21,607톤, 길이 160미터, 폭 25미터, 승객 정원 552명, 화물 적재량 220TEU, 탑승 승무원 48명.
이번에 탑승하게 된 ‘팬스타드림’호의 제원이다. 워낙 숫자 감각이 없는 나였기에 2만톤급 선박을 보아도 ‘그냥 크다’는 것 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홀 전면에는 팬스타드림 탑승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홀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프론트가, 오른쪽에는 식당, 면세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현수막 앞에는 먼저 올라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군단이 방 배치를 받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계셨다. 저마다의 인솔 가이드를 중심으로 서로 방을 확인하고 계시는 할머니 부대를 지나 프론트로 가서 방 열쇠를 건네 받았다. 선상의 하룻밤을 보낼 방은 디럭스룸 123호.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 4월 23일은 ‘팬스타드림’호의 취항식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단열구조 등을 좀 더 보완해서 완벽한 국적선으로 출항시키려는 팬스타드림의 안전점검을 맡은 한국선급의 배려(?)로 결국 취항식은 5월 중으로 미뤄졌고, 일본/오사카 첫 출항의 테이프는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 공동개최의 성공염원을 담고 한·일 노인 친선 교류회 주선으로 일본을 방문하시는 노인 대학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소수의 일반 승객 그리고 7명의 기자단으로 구성되어진 390명이 끊게 되었다.
배는 아직 부산항에 정박해 있다. 배를 둘러볼 요령으로 짐을 객실에 던져 놓고 밖으로 나섰다. 전체 객실은 2인 양실의 로얄 스위트 2객실, 2인 양실의 디럭스 스위트 24객실, 2인 양실의 주니어 스위트 28객실, 그 다음부터는 4인과 7인으로 나누어 쓸 수 있는 프리미엄룸이 38객실과 12객실, 4인 양실을 비롯한 다인실로 구분되는 스탠다드룸이 25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인 객실 구조의 특성이 한 방에 20명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소위 ‘다다미’방 보다는 4명이하의 소수 인원이 한 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객실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이러한 객실 분포에 대해 김현겸 사장은 “소위 보따리 상인들로 통칭되는 상용고객을 뛰어 넘어, 가족 단위의 여행 문화를 염두에 두고 전부 고쳤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인 객실 분위기를 호텔 식의 고급화 전략을 따라 추구하기로 했다고.
이미 객실을 찾아 짐을 풀고 계신 할머니, 객실을 찾아 짐을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할머니, 짐을 다 풀어 놓으셨는지 그새 옷을 갈아 입고 친구분을 찾아 나선 할머니. 복도 좌우로 늘어서 있는 객실을 들여다 보며 각각의 객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들여다 보았다.
4인실은 대학 때 지내던 기숙사 방을 연상시켰다. 4개의 침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그 귀퉁이에 자리한 나무로 된 길쭉한 장롱. 기숙사 때처럼 2층 침대는 아니지만 -나중에 보니 2층 침대가 놓인 객실도 있었다-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간식거리를 꺼내 놓고 화투 패를 돌리며 긴 여행을 준비하기도 하고, 친구 찾아 이방 저 방 쏘다니기도 하고, 로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런거리는 할머니들 모습 속에서 기숙사 입주 첫 날 밤이 스르륵 겹쳐져 왔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간 첫날 밤. 행여 아는 사람을 만날까 싶어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 보면, 복도는 나처럼 친구를 찾는 이로 붐비고 있었다. 이 방 저 방 머리를 디밀며 아는 이의 얼굴을 찾아 내려는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길이며, 친구를 찾은 이들의 반가움에 겨운 목소리며 몸짓, 그 자체가 새 집에 활기를 불어 넣곤 했다.
객실 귀퉁이를 돌아 가자 사우나 표시가 보였다. 출입문이 증기로 뿌연 것을 보니 지금이라도 사용 가능하도록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바깥으로 향하는 녹색 사인을 따라 갑판으로 나섰다. 그 새 비가 그쳤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바람이 장난 아니다. 행여 손 흔드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양복 입은 아저씨 몇 분만이 팔짱을 끼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멀리 주황색 영도 다리를 배경으로 노란색 여객 터미널 건물이 서 있고, 파란 기와를 이고 있는 터미널 정문이 보인다. 높고 얕은 건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어 키를 재고 있고 그 앞 도로로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장난감처럼 굴러 가는 부산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배의 선미에는 이런 저런 밧줄들이 도르래에 동여져 배를 부두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 뒤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태극기를 단 최초의 국적 카훼리선에 내가 타고 있는 것이다. 배 선두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에 갑판 옆 창문을 들여다 보니 ‘다다미방’이다. 아직 부산항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베개를 베고 누워 계신 할머니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선교(브릿지) 안에는 아무도 없이 고요하다. 예전에 견학했던 화물선처럼 브릿지 안은 전자 해도와 GPS시스템 그리고 운항에 필요한 기계들이 여유 있게 배치되어 있다. 배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싶지만 다들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지 머리털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객실로 돌아가 짐 정리를 하기로 했다.
4시 정각 부산항을 떠났다. 이제 일본으로 출발. 배가 움직이는데도 항구에 정박하고 있을 때와 비교해 별다른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배가 움직이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내가 둔한 건지 배 자체가 워낙 커서 그런가 했더니 나중에 들어 보니 배를 고치면서 ‘방진용 정밀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덕분에 멀미 걱정은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배가 진동 없이 운항되다 보니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등 취재 목적의 방송 기자재 등의 특별 화물 수송 분야에서 벌써부터 문의와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팬스타라인닷컴은 이번에 훼리를 띄우면서 일반 화물보다 Valuable cargo 공략에 초점을 맞추었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값을 받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
현재 운항하는 재래선으로는 빠른 화물들과 특수 화물에 대한 운송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운항 추세도 바뀌어 최근에는 일본/한국간 시장에서 여객 수요만큼이나 화물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현재 화물선의 운항 시스템에 따라 부산/오사카 구간을 3일 정도의 트랜짓 타임에 운항하고 화주에게 최종적으로 인도될 때까지 총 4-5일이 소요되는 현 상황은 시장의 수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팬스타의 생각이다. 주로 돈육, 농산물, 화훼, 어종(fish)등 냉동/냉장 컨테이너를 주로 나르는 항로 특성을 감안하여 56기 정도의 플러그를 설치, 비행기만큼이나 빠른 속도와 일반 화물선만큼 저렴한 운임으로 팬스타 라인은 이 곳 항로에 승부를 걸은 셈이다.
주 3회 일, 화, 목 부산항 출항 스케쥴은 기존 컨테이너 선사들의 운항 스케쥴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18시간의 트랜짓 타임을 자랑하는 팬스타드림의 속도상 전날 출발한 컨테이너선과 같은 날 입항할 수 있어 하루를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역비 비싼 일본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로로선의 특성을 가진 훼리가 유리하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세관통관 및 검역절차도 한국에서는 대한통운과 일본에서는 일본통운과의 긴밀한 업무공조에 의해 신속하게 진행된다. 오사카 세관은 시모노세키와 동일하게, 사전신청만 하면 연중개청이 가능하며 동, 식물의 경우도 터미널 내 검역장소로 신속하게 이동시켜 당일 검역, 통관이 이루어지게 한다고.
까치섬’ 이라고도 하는 한국 해양 대학이 있는 조도까지 나오는데 대략 36분 정도 걸렸다. 배를 데리고 부산항을 빠져 나온 부산항 도선사가 배에서 뛰어 내려 PILOT이 선명하게 보이는 도선배에 옮겨 탔다.
부산 앞바다에는 폭풍주의보가 내려져 있고 배에 맞바람이 20노트로 불고 있어 항해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날씨라고 할 수 없다고 갑판에서 작업을 하던 한 선원이 말했다. 그럼에도 배는 맞바람을 가르고 23.5노트의 운항 속도로 매끄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돌아보니 이제 부산항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안개만이 수평선에 걸쳐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부산항을 떠난 지 2시간 경과한 저녁 6시. 갑갑한 객실을 나오신 노인 대학 할머니들이 갑판에 나와 잔뜩 움츠러든 몸을 풀기 위해 갑판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맨손체조를 하기도 하고, 난간을 잡고 허리를 탕탕 부딪쳐 보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그냥 망연히 망망 대해에 눈길을 주어 보기도 하고….
바람을 등지고 떠나 온 부산 쪽을 바라보니 아스라한 수평선 위에 태양이 쓸쓸히 빛을 발하고 있다. 오염도 제로의 신선한 바람이 머리를 어깨를 치고 간다. 바닷물결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배 좌우로 부서진 흰 포말들이 밀려 간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는 하얀 그림자가 길게 따라 온다.
진행 방향의 일본 쪽 하늘도 그저 자욱하니 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배를 탄 지 3시간이 지나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망망한 바다 좌우로 등대처럼 보이는 깜박이는 불빛이 보였다. 한동안 바다를 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먹먹한 대해에서 발견한 문명의 산물이 이리도 반가울 줄은 정말 몰랐다. 관문인 시모노세키까지는 아직 2시간 반을 더 가야 한다. 그렇다면 저 깜박이는 불빛의 정체는 혹시 대마도가 아닐까?
-사의 찬미-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에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 알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의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사실 오사카로 가는 카훼리를 타게 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리에 퍼뜩 떠오른 사람은 윤심덕이었다. 이바노비치의 ‘푸른 다뉴브 강의 잔물결’ 선율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로 대변되는 통속적 허무가 뚝뚝 떨어지는 가사의 ‘사의 찬미’를 취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여가수이기도 하다. 그녀는 19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 갔다가 귀국길에 관부연락선인 도쿠주마루[德壽丸] 위에서 애인이었던 극작가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 정사(情死)하였다. 배가 오키노시마를 지나 대마도를 왼쪽으로 두고 가고 있을 때였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사회면 톱을 장식하기도 했다.
현해탄. 일본명 ‘겐카이나다’. 깊고 그윽하여 신비한(현), 그러나 물살이 급해 위험한(탄) 바다. 빛나는 재능의 두 예술가를 거두어 가버린 현해탄은 그런 과거지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불어 제끼는 바람을 따라 육중한 콘트리트 빛깔의 몸체를 이리 저리 흔들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취재·글 백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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