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항구나 인적이 드문 해안가에 반쯤 물에 잠긴 채 녹슬어 기울어진 선박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방치 선박은 항행 안전을 위협하는 장애물이자 언제 기름이 새어 나올지 모르는 환경 위험 요인이다. 해양경찰청이 2024년 8월 기준으로 파악한 장기 방치·계류 선박은 전국적으로 약 376척에 이르며, 2019년 이후 이러한 선박에서 발생한 해양오염 사고는 약 36건에 달한다.
현행법상 방치 선박에 대한 정의는 법률이 아닌 해양수산부 고시에 의존하고 있다.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업무 처리 규정’ 제2조 제5호에 따르면 방치 선박이란 계선 신고 기간 만료 후 1년이 지나도록 운항하지 않는 선박, 폐업 보상을 받고 계류 중인 선박, 등록이 말소된 후 해체 조치를 하지 않은 선박, 그 밖에 공유수면의 보호 및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거나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고 공유수면관리청이 인정하는 선박을 말한다.
방치 선박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이를 규율하는 규정이 여러 법률에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관련 규정이 공유수면법과 선박입출항법에 흩어져 있어 주무 관청의 체계적이고 일관된 집행이 어렵다. 여기에 더해, 선박검사 면제 제도도 선박 방치의 빌미가 되고 있다.
선박안전법에 의하면 선박검사증서를 반납하고 계선한 경우 선박검사가 면제된다. 어선법에도 동일한 취지의 규정이 존재한다. 본래 선박검사 면제 제도는 조업이나 영업을 중단한 기간 동안 선주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폐선 비용을 회피하려는 일부 선주들이 형식적으로 계선 신고만 유지하면서 선박을 사실상 유기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확인된다.
방치 선박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거나 기름유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해양환경관리법은 선주에게 방제조치 또는 배출방지조치 의무가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오염물질이 배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되려면 선박이 좌초, 충돌, 침몰, 화재 등의 사고가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 단순 방치 상태의 선박에 대하여는 선제적으로 위 의무를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유수면관리청이 방치 선박을 강제로 제거하거나 오염물질 배출방지조치를 취하려면 대집행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행정대집행은 보충성과 비례원칙의 제약을 받고, 또 단순히 선박이 장기간 방치, 계류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대집행의 요건이 충족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당연히, 선박이 장기간 방치됐다는 사실만으로 그 소유권이 국가나 지자체로 자동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또한 선박에 저당권 등 담보권이 설정돼 있는 경우에는 담보권자의 동의 없이 선체를 처분할 수 없게 돼 있다(공유수면법 제6조 제3항 단서).
따라서 재산적 가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선박은 복잡하게 얽힌 채권자의 권리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행정대집행이 무기한 지연되거나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활용 가치가 없어 저당권조차 설정되지 않는 FRP어선들은 또 다른 골칫거리다. 선주가 의도적으로 선명이나 식별표지를 제거해 유기하는 경우 소유자 특정 자체가 불가능해 행정처분의 대상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청은 딜레마에 빠진다. 소유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방치 선박을 행정청이 직권으로 제거했다가 나중에 자신이 그 선박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은 예산 문제다. 행정대집행을 위해서는 먼저 지자체나 국가의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낮은 방치 선박 처리에 막대한 예산을 우선 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행정청이 예산과 법적 절차의 문제로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자연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매년 여름 찾아오는 태풍은 방치 선박을 단순한 ‘쓰레기’에서 치명적인 ‘시한폭탄’으로 탈바꿈시킨다.
본질적인 책임은 선주가 져야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은 방치 선박에 대한 책임은 본질적으로 행정청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선박을 버리고 떠난 선주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망간 선주는 당장 행정청의 눈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고 발생 시 들이닥칠 민·형사상의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치된 선박에서 유출된 기름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방치 선박이 태풍에 휩쓸려 부순 타인의 재산은 고스란히 갚아야 할 채무로 변한다.
이처럼 방치 선박 문제는 개인의 재산권 행사와 그에 대한 책임, 공공의 안전과 환경 보호라는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이다. 법적으로는 여러 현실적인 한계와 장벽이 행정청의 신속한 개입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주에게 면죄부를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방치 선박 문제의 핵심은 ‘소유권에 대한 책임 의식’이며, 행정대집행은 공익을 위한 최후의, 그리고 보충적인 수단일 뿐 결코 선주의 책임을 대신해 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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