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환경 조류를 타고 이차전지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이차전지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화재 사고도 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담긴 컨테이너박스뿐 아니라 전기차를 실어 나르는 운반선에서 대형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알리안츠는 최근 ‘해운 안전 리뷰’ 보고서에서 세계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며 해운업과 공급망에 새로운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해상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전년 대비 20% 늘어난 총 250건으로, 최근 10년 사이 최고치를 찍었다.
알리안츠는 탈탄소화에 따른 신규 위험을 해운업계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꼽으며, 위험 요인 인식과 예방 조치가 산업 현장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600억달러(약 220조원) 수준으로,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산에 힘입어 2030년엔 32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는 한두 달 사이에 리튬이온 배터리와 관련한 해운·항만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2024년 9월26일 리튬이온 배터리를 실은 화물차가 미국 LA·롱비치항 인근 항만 진입로에서 전복돼 폭발했다. 이 화재로 인근 터미널은 약 이틀간 운영을 멈췄다. 캐나다 몬트리올항에선 9월23일 오후 1만5000kg의 리튬 배터리가 들어있는 컨테이너박스에서 화재가 일어나 한나절만인 이튿날 새벽에 진화됐다. 직접적인 항만 피해는 없었으나 인근의 메르시에 오셜라가 메종뇌브 자치구에는 잠시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앞서 8월에는 중국 닝보항에 정박 중이던 대만 선사 양밍해운의 6600TEU급 호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중국 항만 당국은 위험물 안전 관리를 강화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를 포함한 위험물 컨테이너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실온에서 자체 분해돼 막대한 열을 방출하는 화합물 TBPB가 전원이 제거된 냉동 컨테이너에 적재된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됐다.
알리안츠는 위험물 오신고가 컨테이너 화재의 주된 원인이며 화주나 수출업체의 무지·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다고 경고했다. 해운리스크 컨설팅을 담당하는 라훌 칸나 총괄은 “이제 보험업계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해운 및 공급망에 미치는 리스크를 중요한 관리 포인트로 보고 있다”면서 “위험물 오신고, 화재 감지, 사고 대응 역량 등의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운반선의 위험성 증가도 지적했다. 랜디 룬드 수석 컨설턴트는 “최신 자동차 운반선은 최대 1만대의 전기차를 실을 수 있어 사고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산 가치 손실뿐 아니라 환경과 선원 안전에도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화재 확산 속도가 빠르고 진화가 까다로워 불이 나면 위험성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전기차를 실은 영국 조디악마리타임의 <모닝마이더스>호는 화재를 진압하지 못해 미국 알래스카 인근에서 침몰했다. 이 선박은 6월3일 사고를 보고한 뒤 20일 만에 해안에서 약 670km 떨어진 해역에 가라앉았다. 탑재된 3000여대의 신차 가운데 70대는 전기차, 680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였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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