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사들이 내년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우회하는 운항 전략을 유지할 거란 관측이 나왔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10월29일 부산 서면 롯데호텔부산에서 개최한 2024 KOBC 마리타임콘퍼런스에서 프랑스 해운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의 얀 티데만(Jan Tiedemann) 수석연구원은 “선박이 빠른 시일 안에 홍해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선사들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희망봉을 우회하는 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티데만은 희망봉을 우회하는 노선이 지금 당장의 공급 과잉을 회피하면서 선사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선사들이 2026년에나 수에즈운하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면서 복귀하더라도 과거 같은 방식으로 컨테이너선단을 운영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홍해사태로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으로 우회하면서 아시아-유럽항로의 전체 운항기간은 12주에서 14주로 2주 정도 늘어났고 투입 선박도 그만큼 확대됐다. 희망봉 우회로 아시아-유럽항로의 컨테이너선단이 16%가량 늘어났고 전체 글로벌 해운 시장에선 4~5%의 공급 감소 효과가 발생했다는 게 알파라이너의 분석이다.
희망봉 우회로 선복 16% 흡수
티데만은 컨테이너선사들이 수에즈운하가 정상화하더라도 저속운항(슬로스티밍) 등의 방식으로 아시아-유럽항로 운항 선단을 13척 이하로 줄이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홍해사태 이전에 비해 선박 1척을 추가 투입해 심각한 공급 과잉 시장을 완화하려고 노력할 거라는 예상이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막대한 공급 증가가 예정돼 있다. 티데만은 9월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선단은 7073척 3065만TEU를 기록,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전했다. 1년 전에 비해 1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에 더해 700만TEU를 훌쩍 뛰어넘는 신조선 공급이 예고돼 있다. 현재 신조선 발주량은 전체 선단의 25%에 이르는 747만TEU에 이른다.
그렇다고 선사들이 폐선을 활발히 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 8개월간 해체된 컨테이너선은 46척 7만6000TEU로, 지난해 연간 13만8000TEU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티데만은 홍해사태와 러우 전쟁 등의 정정 불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사들은 폐선을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현재의 선단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펼 거라고 전망했다.
다만 운항 지연과 항만 적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공급량을 일부 흡수할 걸로 보인다. 코로나19사태가 본격화한 2021년 이후 항구에서 10일 이상 대기하는 컨테이너선은 전체 선단의 18% 수준인 550만TEU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 비해 무려 100만TEU 이상 급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 들어서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게 티데만의 진단이다.
내년부터 가시화하는 운항동맹(Alliance) 재편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글로벌 컨테이너선 시장은 3대 얼라이언스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스위스 MSC, 덴마크 머스크가 맺은 2M ▲프랑스 CMA CGM(APL), 중국 코스코(OOCL), 대만 에버그린으로 구성된 오션 ▲우리나라 HMM, 일본 ONE, 대만 양밍, 독일 하파크로이트가 결성한 디얼라이언스(TA) 들이다. 현재 얼라이언스에 투입된 선복은 ▲2M 344만TEU ▲오션 439만TEU ▲TA 322만TEU 정도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3+1 형태로 변화한다. 2M과 TA를 대신해 ▲머스크 하파크로이트가 결성하는 제미니 ▲HMM ONE 양밍의 프리미어얼라이언스가 새롭게 출범한다. MSC는 머스크와의 동행을 끝내고 독립 선사로 활동한다. 선복량은 제미니 267만TEU, 오션 439만TEU, 프리미어 236만TEU 정도로 파악된다. 티데만은 프리미어가 사이즈에서 열세에 놓여 있지만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세계 최대 선사인 MSC와 제휴하기로 해 변수를 만들어낼 것으로 관측했다.
벌크선 시장을 진단한 영국 SSY의 로어 아들랜드 리서치 대표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선종별 희비 교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형선인 케이프사이즈는 수요가 2.1%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1.7% 증가에 그치면서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비교해 파나막스 수프라막스 핸디사이즈 선종은 공급은 3~4%가량 늘어나지만 수요는 이에 크게 못미쳐 수급 불안이 이어질 거란 분석이다. 특히 5만t(재화중량톤)급 안팎의 수프라막스 선박 시장은 수요가 0.5% 감소하는 부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매퀼링 올리버 게 리서치 대표는 유조선 시장을 전망하면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시장 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두는 해리스보다 트럼프가 당선될 때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고 유조선 시장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조세리스 도입으로 친환경선박 신조 유인
토론에선 선박 자산의 고속상각을 허용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조세리스(Tax Lease) 제도를 도입해 해운사의 친환경 선박 신조를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프랑스는 선가의 12~15%를 절감할 수 있는 조세리스를 도입해 CMA CGM 등의 국적선사와 항공사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도 선가의 5%를 절감할 수 있는 조세리스(JOLCO) 제도를 운영 중이다.
세계로선박금융 조규열 대표는 “선사들이 저탄소 선박을 발주하면 20~30%의 비용이 추가된다”며 “선가의 5%가량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조세리스를 활용해서 선도적으로 저탄소 선박 발주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HMM 한순구 전략재무본부 상무는 “최근 선사들이 유동성이 풍부해서 선박금융을 (선가의) 50% 정도만 이용하는데도 국내 금융기관은 (선사들이 원하는) 금리를 못 맞춘다. 리먼 사태 당시 해운시장 붕괴로 금융기관이 손실을 본 뒤 선박금융을 꺼리는 것 같다”고 국내 시중은행이 선박금융을 외면하는 실태를 지적했다.
해운항만금융업계 관계자 4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에서 안병길 해양진흥공사 신임 사장은 “러우 전쟁 장기화와 중동 분쟁, 미중 갈등 등으로 해운·항만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해운과 항만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시장을 읽고 동향을 통찰하며, 미래를 조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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