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자에 이어>
2. 원고의 주장
피고는 수하인으로부터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위임받은 운송인으로서, 이 사건 화물을 안전하게 운송하고 보관해야 할 운송계약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의의무를 해태함으로써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3. 판단
가.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1) 피고가 운송인인지
가) 피고는, 이 사건 화물의 운송에 관해 선하증권을 발행하지 않았고,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화물에 관해 작성한 운송계약서도 없으며,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화물의 운송에 관해 확정운임을 청구하지도 않았으므로 피고가 운송인이 아니라 운송주선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나) 물품운송계약은 당사자의 일방이 물품을 한 장소로부터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로 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해 일정한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므로, 운송계약에 따른 권리·의무를 부담하는 운송인이 누구인지는 운송의뢰인에 대한 관계에서 운송을 인수한 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확정된다. 따라서 운송주선업자가 운송의뢰인으로부터 운송관련 업무를 의뢰받은 경우 운송까지 의뢰받은 것인지, 운송주선만을 의뢰받은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때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탐구해 운송인의 지위도 함께 취득했는지 여부를 확정해야 할 것이지만, 그 의사가 명확하지 않으면 선하증권의 발행자 명의, 운임의 지급형태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운송주선업자가 운송의뢰인으로부터 운송을 인수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확정해야 한다(대법원 2012년 12월27일 선고 2011다103564 판결, 대법원 2015년 5월28일 선고 2014다88215 판결, 대법원 2012년 11월29일 선고 2012두17025 판결, 대법원 2019년 6월13일 선고 2019다205947 판결 등).
다) 앞에서 본 인정사실에다가 갑 7, 11에서 14호증을 포함해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피고는 원고와의 관계에서 운송주선인이 아니라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담당하기로 한 운송인이고, D, E는 피고의 이행보조자라고 봄이 타당하다.
(1) 피고는 국내·외 운송업 등도 사업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2) 원고는 2018년 6월경부터 2021년 1월경까지, 피고와 수회에 걸쳐 화물 등에 관한 운송계약을 체결했고, 피고의 청구에 따라 피고에게 운송주선업무에 대한 수수료가 아니라 “운송에 대한 운임이 포함된 비용[OCEAN FREIGHT(해상 운임), WHARFAGE(부두 사용료), HANDLING CHARGE(시설 이용 수수료), INLAND TRUCKING CHARGE, WAREHOUSE CHARGE(창고 이용료) 등 포함]”을 일괄적으로 지급해 왔다. 피고의 청구서에는 화물의 실제 운송인, 피고가 그 운송인에게 지급한 운임 등이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러한 특수한 사정에 따라 원고와 피고는 계약서 없이 이메일 송수신만으로 이 사건 화물에 관한 운송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3)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 사건 화물의 운송 운임을 청구하지 않았을 뿐이지, 피고가 운송인이 아니기 때문에 운임을 청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4) 이 사건 화물의 운송에서도 원고는 운송 여부 확인부터 선적 스케줄, 컨테이너 로딩 여부, 선박 출항, 도착일 지연 등 운송과정 전체에 관한 의사결정을 피고에게 일임했다. 원고는 D, E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5) 운송주선인은 운송인과 물건운송계약을 체결했을 때, 상법 제123조 및 제104조에 의해 운송위탁자에게 그 구체적 내용을 통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에게 운송주선인으로서 체결한 운송계약에 관해 통지하지 않았다.
2) 소결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이 사건 화물의 분실로 인해 손해를 입었고, 피고, D 또는 E가 운송인 또는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로서 주의 의무를 해태해 위와 같은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1) 이 사건 사고의 발생 구간
가) 피고는,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과 이 사건 선하증권에 봉인장치 번호가 기재돼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엘에이항에서 이 사건 컨테이너 봉인 장치가 있었던 상태였으므로, 이 사건 사고는 해상운송구간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고, 설령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운송구간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상법 제816조 제1항 또는 같은 조문 제2항에 따라 피고는 (운송거리가 가장 긴) 해상운송구간에 적용되는 법에 따라 책임을 진다고 주장한다.
나) 앞에서 본 인정사실에다가 갑 16, 17호증을 포함해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사고는 철도운송구간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1) 피고는 이 사건 사고의 경위를 파악한 후 원고에게 이메일로 ‘댈러스 창고에는 정상적으로 입고가 됐음을 확인했다. 댈러스에서 컨테이너 작업 후 레일로 운송해 엘에이항으로 운송하던 과정에서 도난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회신했다.
(2) 이 사건 컨테이너 봉인장치 번호는 실제로 봉인장치를 확인하지 않고도 서류로 알 수 있으므로, 위 번호가 이 사건 선하증권 등에 기재됐다는 점만으로 엘에이항 선적 시까지 봉인장치의 분실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엘에이항의 직원은 이 사건 화물의 해상운송에 제공된 선박의 소유자인 J 주식회사에게 ‘엘에이항에서는 검수원 및 확인자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컨테이너의 봉인이 있는지 여부(whether container is sealed or not)를 별도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3) 이 사건 컨테이너의 부산항으로의 하역, 보관 및 반출 업무를 수행한 K 주식회사(이하 ‘K’)는 원고의 사실조회에 대해 ‘2021년 4월22일 부산항에서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을 당시 이 사건 컨테이너 봉인의 분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당사의 기기인수증[EIR] 자료에 표기된 봉인 번호는 선사의 검수회사로부터 제공받은 전산자료에 의해 표기한 것이다.’라고 회신했다.
(4) 이 사건 컨테이너가 부산항에 양하된 후 5분 뒤 L 구역에 장치됐고, 그로부터 약 6시간 30분 뒤 해당 구역에서 반출됐다. 이 사건 컨테이너가 장치된 시점부터 반출된 시점까지 그 앞뒤로 다른 컨테이너들이 빼곡하게 장치돼 있었고, 이 사건 컨테이너를 포함해 각 컨테이너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기 때문에 당시 누군가가 이 사건 컨테이너의 봉인을 훼손해 그 문을 개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으로 보인다. K 역시 원고의 사실조회에 대해 ‘부산항 내에서 이 사건 컨테이너의 봉인 훼손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회신했다.
(5) 엘에이항에서 부산항으로 선박을 통해 이동하는 해상(海上)에서 이 사건 컨테이너 내 다른 화물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이 사건 화물만 분실됐다고 상정하는 것은 다소 불합리하다.
2) 상법 제797조 적용 여부
피고는, 이 사건 사고에 대해 배상해야 할 손해액의 한도는 상법 제797조 제1항에 의해 화물의 매 포장 당 666.67 계산단위(SDR) 또는 중량 1kg 당 2 계산단위(SDR) 중 큰 금액으로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앞서 본 것처럼 이 사건 사고가 해상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없는 이상, 해상운송사고가 발생했음을 전제로 하는 상법 제797조는 이 사건 사고에 적용될 수 없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추가 운송비 청구 가부
원고는, 이 사건 화물의 수입대금 외에도 이 사건 화물과 동종 제품을 다시 수입하기 위해 추가운송비 미화 약 1,100달러를 지출했고, 피고는 이러한 손해가 발생하리 라는 것을 예견했거나 예견할 수 있었으므로 민법 제393조에 따라 위 손해 역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범위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상법 제137조는 다수인을 상대로 다량의 화물을 신속하게 운송해야 하는 운송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운송인을 보호하는 한편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배상을 처리하도록 해 법률관계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규정이다. 운송물이 ‘멸실·훼손·연착’된 경우 에 관해 손해배상의 액을 정하고 있는 이러한 상법 제137조는 민법 제393조에 대한 예외규정에 해당하고, 이는 운송물의 분실에도 적용되므로(대법원 2004년 3월19일자 2004다674 판결, 부산지방법원 2011년 4월27일 선고 2010가합8061 판결, 인천지방법원 2016년 3월17일 선고 2015가단210551 판결) 이 사건 사고에는 민법 제393조가 아니라 상법 제137조가 적용된다. 그런데 원고가 구하는 대체품 항공운송비는 상법 제137조의 손해배상액에 포함되지 않고, 달리 이 사건 사고가 피고의 고의·중과실로 발생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같은 조문 제3항 참조)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화물의 가액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다. 소결론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화물의 수입대금인 미합중국 통화 39,600달러 및 이에 대해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인 2021년 8월4일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재여부 및 범위에 관해 항쟁함이 타당한 이 판결선고일까지는 상법이 정한 연 6%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한웅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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