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협회가 고희(古稀)의 나이가 됐다. 해운산업 합리화, IMF 구제금융, 글로벌 금융위기, 한진해운 파산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 4위 해운강국으로 도약한 우리나라의 대표 해운 단체가 70돌을 맞은 건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해운산업은 우리나라가 세계 6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7%를 해운이 담당한다. 한국해운 발전과 성장의 중심에 협회가 있다.
한국해운은 1950년 1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책기업인 대한해운공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대한해운공사는 1953년 2월 <동해>호와 <서해>호를 미주항로에 투입하며 원양항로 개척의 서막을 울렸다.
공사가 설립되고 4년이 지난 1954년 4월20일 해운협회의 전신인 대한선주협회가 발족한다. 당시 회원은 해운공사를 비롯해 11곳이었고 이들 회원사가 보유한 선복량은 8만t(총톤) 정도에 불과했다. 전체 선복량의 70%는 해운공사 몫이었다. 민간 선주가 중심이 된 한국대형선주협회가 1957년 2월1일 창립하면서 잠시 두 개 해운 단체가 병립하기도 했지만 1960년 6월 현재의 통합 조직으로 재출범했다.
1954년 4월20일 대한선주협회 발족
통합 해운협회가 출범한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범국가적으로 해운 성장에 힘을 쏟았다. 1960년 정기선 항로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1967년 해운진흥법을 제정해 해운기업 세제 지원과 국적선에 수출입화물을 우선 선적하는 화물유보제도(WAIVER)를 법제화했다. 1976년엔 계획조선제도를 도입해 한국 상선대 증강의 디딤돌을 놨다.
해운사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협회와 함께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고려해운은 1964년 2월 대한조선공사에서 <신양>호를 인수하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항선박을 건조한 주인공이 됐다. 한진해운의 전신인 대진해운은 1972년 9월 최초의 국적 컨테이너선인 188TEU급 <인왕>호를 도입했다.
이 시기 우리나라 선원들은 막대한 외화 획득으로 국가 발전에 공헌했다. 한국인 선원은 1964년부터 1982년까지 해외 선박에서 근무하며 13억달러를 거둬들였다. 외화 수입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벌어들인 금액이 1억달러란 점에서 선원들이 경제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수 있다.
승승장구하던 한국해운은 1980년대 들어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오일쇼크가 도화선이 된 장기 불황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많은 해운사들이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결국 정부는 해운산업 합리화 카드를 꺼내들었고 1984년에 111곳이었던 외항해운사가 33개사로 통폐합됐다.
해운업계는 이후 각고의 노력으로 1980년 대 말 무려 7년 만에 흑자를 내며 위기에서 벗어났고 1990년대 들어선 미수교 상태였던 중국과 소련 등의 북방항로에 진출하고 세계 일주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힘을 모았다.
▲해운협회는 17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해운산업, 2050년 무역대국 견인’이란 내용의 장기 비전을 선포했다. |
1996년엔 해양 행정 일원화와 해양강국 도약을 목표로 해양수산부가 발족하면서 한국해운은 또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해수부는 출범 이후 다양한 선진 해운제도를 잇달아 도입해 해운업 발전을 이끌었다.
1997년 해운협회의 건의를 수용해 해운업계의 최대 숙원 과제였던 선박 도입 관세를 철폐하고 국제선박등록법을 제정해 외항상선 지원과 안보 선대 도입 장치를 만들었다. 2002년 선박투자회사(선박펀드) 제도를 도입해 선박금융 선진화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2005년엔 해운사의 세금 부담을 줄여 선박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인 톤세제도를 전격 시행했다.
2016년 심각한 장기 불황으로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비운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의 해운 재건 정책과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을 배경으로 우리 해운산업은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진해운 사태 당시 세계 7위까지 떨어졌던 우리나라 외항상선대는 다시 세계 4위 수준인 9920만t(재화중량톤)으로 늘어났다. 아울러 협회 회원사들은 2022년 한 해 코로나 특수 등에 힘입어 역대 최대치인 62조원(483억달러)의 해운 수입을 달성했다.
우리나라는 해운 분야의 높아진 위상을 등에 업고 지난 2015년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민관 하나돼 신해양강국 도약
해운협회는 창립 70돌을 맞아 지난 17일 저녁 서울 소공로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해운산업, 2050년 무역대국 견인’을 장기 비전으로 선포했다.
아울러 ▲수출입 화주의 무역 경쟁력 제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 ▲고부가가치 해운산업 혁신 ▲안정적인 해운 인력 확보 ▲친환경 해운 달성 등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5대 과제가 제시됐다.
협회는 컨테이너화물과 전략화물의 국적선 적취율을 각각 60% 100%까지 끌어 올려 2040년까지 해운매출액 100조원을 돌파하고 현재 8500만t인 지배선단을 2050년까지 1억7000만t으로 2배 확장한다는 목표다.
이날 협회 정태순 회장은 “지난 70년 동안 해운산업의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현재 선복량 세계 4위의 해운강국으로 성장했다”며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해운산업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듯 우리 해운산업도 민간과 정부가 일치단결해 원팀으로 움직여야 신해양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한국해운은 지난 70년간 많은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며 놀라운 성과를 이뤘지만 최근 환경 규제, 공급 과잉, 불안정한 국제 정세 등의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며 “우리 해운기업이 글로벌 넘버원이 될 수 있도록 업계와 정부가 함께 노력한다면 더 나은 미래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행사에서 해운산업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국제해사기구 임기택 명예총장 ▲한국수출입은행 윤희성 은행장 ▲해군 양용모 참모총장 ▲한국무역협회 윤진식 회장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박성용 위원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아울러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한국해양소년단연맹 한국선장포럼 한국해양재단엔 총 2억4500만원의 지원금을 전달하고 앞으로도 회원사와 함께 해운 성장으로 거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이날 행사엔 정태순 회장과 강도형 장관을 비롯해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최윤희 회장, 국제해사기구 임기택 명예사무총장, 한국수출입은행 윤희성 은행장, 해군 강동길 참모차장, 해병대 사령부 이호종 참모장, 해양진흥공사 김양수 사장, 무역협회 김고현 전무, 포스코플로우 반돈호 사장, 현대글로비스 이규복 대표 등 회원사와 업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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