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5 09:30

판례/ “물품하자 검사비용, 누가 부담하나”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22자에 이어>

[평석]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판례는 이탈리아 소재 섬유도매회사와 한국 소재 펠트 등 제조회사 간의 분쟁으로, 손해배상책임의 제한을 판단함에 있어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 1980, 이하 ‘CISG’라 한다)에서의 ‘손해경감의무’와 ‘손해발생의 예견가능성’의 의미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① 원고는 이탈리아국법에 의해 설립된 섬유도매업을 하는 법인이고, 피고는 대한민국 상법에 의해 설립된 부직포 및 펠트 제조업 등을 하는 회사이다.
② 원고는 2013년 5월10일 피고에게 품질기준 명세서(이하 ‘위 품질명세서’라 한다)를 보냈는데, 위 품질명세서에는 형광증백제를 금지한다는 내용(이하 ‘형광증백제 금지조항’이라 한다) 등의 ‘독성물질 요구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③ 원고는 2014년 6월경부터 2014년 9월경까지 3회에 걸쳐 피고로부터 시제품을 공급받은 후 2014년 11월20일경 이 사건 계약을 체결했으며, 피고는 2015년 3월부터 원고에게 이 사건 하자섬유를 공급했다.
④ 원고는 2015년 4월8일경 피고로부터 공급받은 섬유에 형광증백제가 포함돼 있음을 처음 발견하고, 피고에게 물품부적합 통지를 했다.

3. 주요쟁점 및 법원의 판단 

가. 주요쟁점
피고는 원고가 물품에 대해 추가 검사를 하는 등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바, 손해배상책임의 제한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쟁점이 있었다. 
첫째, CISG 제77조에서 정한 손해경감의무는 전체 손해액의 일정비율을 감액하는 책임제한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및 이때 위 제77조 외에 책임제한과 관련된 구체적인 규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손해의 공평한 부담에 관한 CISG의 일반원칙에 따라 책임제한이 가능한지 여부
둘째, CISG 제74조에서 정한 손해의 범위 및 예견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

나. 법원의 판단 
우선, CISG의 손해경감의무는 책임제한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전체 손해액의 일정비율을 감액하는 책임제한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또한 CISG 제7조 제2항에 따라 내적흠결에 해당하는 경우 CISG가 기초하고 있는 일반원칙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고, 공평의 원칙 등에 기초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는 손해분담의 원칙은 CISG 일반원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손해의 공평한 부담에 관한 CISG 일반원칙에 따라 책임제한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또한, 계약위반으로 인해 상대방이 입은 이익의 상실 등 일체를 손해배상액으로 삼으면서도, 계약위반자가 계약체결 당시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사실과 사정에 비추어 예견했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손실로 손해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물품의 하자가 사후적으로 발견된 경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로 성분검사비용 등을 지출할 것임은 거래관행상 쉽게 예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매수인이 전매계약의 상대방에게 제품하자로 인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것임은 당사자 간의 계약체결 과정 및 경위 등에 비추어 통상 예견할 수 있는 손해의 영역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아 매도인인 피고의 배상책임영역에 속한다고 보았다. 

4. 검토 및 시사점

대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다.
1) 국내법으로의 도피를 제한했다. 
원심은 CISG의 내적흠결이 있으므로 곧바로 준거법인 대한민국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지적하며 CISG의 각 조문들(제77조, 제79조 및 제80조)의 목적과 그 취지 등을 종합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는 손해분담의 원칙이 내재한다고 이끌어내었다. 국제적 요소를 갖춘 개인들 간의 관계는 국내 관계와 동일하게 다룰 수 없는 점들이 많으며, CISG의 제정 및 각국의 가입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CISG 제정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지적은 타당하다. 
2) 손해발생의 예견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판단했다. 
손해발생의 예견가능성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면 결과적으로 상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심각한 방해가 될 수 있다. 원심은 물품의 하자에 대한 추가 성분검사비용이나 전매 상대방에 대한 손해배상비용의 경우 예견할 수 없는 손해로 보았으나, 대법원은 이 사건의 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살핀 뒤 예견가능한 손해로 보았다. 예견가능한 손해라는 개념은 일률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리 평가돼야 공평의 관점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추가 성분검사비용’, ‘전매 상대방에 대한 손해배상비용’ 등을 범주화해 모든 사례에서 동일하게 판단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당사자의 예견가능성을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은 실체적 정의에 더욱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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