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9 09:08

알기 쉬운 해상법 산책/ 민사소송에서 선박충돌 사고 과실 비율은 어떻게 산정되나

법무법인 세경 최기민 변호사


△△△변호사의 블랙박스 리뷰, △△△변호사의 몇 대 몇. 

교통사고 사례 별로 과실 비율을 판단해 주는 △△△변호사의 인터넷 방송과 지상파 방송의 제목이다.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누구의 과실이 더 큰지 여부를 판단하여 과실 비율을 따지게 되는데, 위 방송은 (△△△변호사의 개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므로 인기가 많다.

선박 충돌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이와 비슷하다. 선박 충돌이 일방의 선원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때에는 그 일방의 선박 소유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고, 쌍방의 선원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때에는 쌍방의 과실의 경중에 따라 각 선박 소유자가 책임을 분담하게 된다. 따라서 선박 충돌에 관한 민사소송에서 각 선박의 과실 비율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퉈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해사사건을 전담하는 해사법원이 없다. 그러다 보니 민사법원의 재판부는 선박 및 항법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실무상 해양안전심판원의 원인규명재결을 존중하고 참조하는 경향이 크다. 필자가 최근 10년 간의 사례를 확인하여 보니 민사소송에서 선박 충돌에 관한 해양안전심판원의 원인 제공 비율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경우가 대다수였다. 

해양안전심판원은 해양에서 발생하는 선박 관련 사고에 대한 조사와 심판을 통하여 해양사고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해양안전 확보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여 세워진 준사법기관이다. 해양사고에 관한 전문성이 있고 축적된 지식 및 경험이 풍부하므로 이 기관의 판단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해양안전심판원은 주인(主因)과 일인(一因)으로 사고원인을 구분하여 주문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해양사고심판법이 개정되어 1999년부터 원인제공비율을 직접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선박 소유자 및 선박의 책임보험자 등은 해양안전심판절차를 선박 충돌에서의 과실 비율을 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절차 중 하나로 여기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원인 제공 비율을 받지 못한 당사자는 해양안전심판절차가 종료된 이후에 재결취소소송을 통하여 추가로 원인 제공 비율을 다투어 보기도 한다. 

그런데 민사소송 상의 과실 비율과 해양안전심판재결상의 원인제공비율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해양안전심판원은 행정적인 목적을 위하여 선박 충돌 사고와 거리가 먼 단속법규를 위반한 과실조차도 인과관계 있는 사고원인으로 판단할 정도로 폭넓게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양안전심판원이 지나치게 항법 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원인 제공 비율을 판단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실제로 필자가 담당하였던 사건 중에서는 단속법규인 강제도선규정 위반행위가 선박 충돌에 기여하였다고 추정하고, 이에 대한 반증이 없는 한 인과관계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재결도 있었다(이 재결은 학계에서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민사소송에서 해양안전심판재결과는 다른 과실 비율 판단이 내려진 경우가 과거에 몇 차례 있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양안전심판절차에서 판단되지 않은 사실관계가 새로이 밝혀지거나 제3자의 행위를 추가로 고려하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민사소송에서 과실 비율이 해양안전심판재결상의 원인 제공 비율과 다르게 판단될 수 있을 것임은 당연하다. 간단히 예를 들어 살펴보자.

 


직접 충돌한 선박은 아니나 제3의 선박이 충돌선박에게 오해를 유발시킨 교신 잘못이 있는 등 간접적으로 선박 충돌에 관여한 제3의 선박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제3의 선박 측도 해양안전심판절차에서 해양사고관련자 또는 이해관계인으로 포함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나, 어떤 이유에서 제3의 선박 측이 해양안전심판절차에서 당사자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제3의 선박 측의 행위는 원인제공비율 판단에서 제외될 것이다(진행 중인 사건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이런 사례도 가끔 있다). 

이 경우 민사소송상의 과실 비율 산정은 해양안전심판재결상의 원인 제공 비율과 다르게 판단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제3의 선박의 소유자가 충돌 선박 일방의 소유자와 동일하다면 더욱 그 필요성은 높을 것이다. 과실상계 사유로 인정되는 과실은 일반적인 과실과는 다르게 넓게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법리로, 대한민국이 소유하고 있는 선박(예컨대 군함)과 충돌한 사안에서 다른 공무원의 과실이 선박 충돌 사고에 추가로 관여되었다면(예컨대 대한민국이 관리하는 해도가 잘못 작성된 경우)라면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과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국가가 부담하여야 하므로 민사소송에서 과실비율 산정은 선박 충돌에 관한 해양안전심판원의 원인 제공 비율과는 다르게 판단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도 해양안전심판원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며 민사소송에서 해양안전심판원의 판단을 가급적 존중하려는 최근의 경향에 대하여도 십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절차와 행정적인 목적을 위하여 진행되는 해양안전심판절차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어 주로 고려하는 사정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민사법원이 해양안전심판원의 판단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 실무적으로나 학문적인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민사법원은 해양안전심판원의 판단을 존중하되 보다 주체적으로 과실 비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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