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근인설에 따른 근인관계보다 그 범위가 넓은 광의의 개념이라는 최근의 판례를 중심으로
<3.7자에 이어>
(2)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와 이 사건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존재 여부
(가) 관련 법리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 후문은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했다면 보험자는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attributable to unseaworthiness) 일체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위 규정이 인과관계에 관해 사용하는 ‘인해(attributable to)’라는 표현은 근인관계를 의미하는 ‘proximately caused by’보다 그 범위가 넓어서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에 근인관계가 없더라도 감항능력 결여가 손해 발생의 먼 원인(遠因, remote cause) 내지 조건이 되거나, 여러 원인(原因) 중 하나가 되는 경우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라고 해석된다.
(나) 판단
이 사건에서 보건대, 이 사건 선박은 겨울철에 원양항로를 예인운항하면서 항로와 계절별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예인방법을 사용했고, 기상악화로 인해 예인줄 간의 잦은 간섭현상이 발생해 부선의 예인줄이 끊어지자 무리한 연결을 시도하다가 부선들과의 충돌이 야기돼 발생한 파공 부위로 해수가 유입돼 결국 침몰하기에 이르렀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이 사건 사고의 경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예인방식의 부적절함에 따른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는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이거나, 적어도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원인(遠因) 내지 조건이 됐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사건 사고 발생과 사이에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 후문에서 요구하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3) 감항능력 결여에 대한 원고의 악의(Privity)가 인정되는지
(가) 관련 법리
선박기간보험에 있어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요건으로서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 후문에서 정한 피보험자의 악의(privity)는 영미법상의 개념으로서 피보험자가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의 원인이 된 사실뿐 아니라, 그 원인된 사실로 인해 해당 선박이 통상적인 해상위험을 견디어 낼 수 없게 된 사실, 즉 감항능력이 결여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감항능력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아는 것(positive knowledge of unseaworthiness)뿐 아니라,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turning the blind eyes to unseaworthiness)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고(대법원 2002년 6월28일 선고 2000다21062 판결 등 참조), 여기에서 피보험자 자신의 악의뿐만 아니라 그의 분신(alter ego)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자의 악의도 포함된다(대법원 2005년 11월10일 선고 2003다31299, 31305 판결 참조).
또한 피보험자가 선박의 관리를 선박관리회사 등 외부의 제3자에게 위임한 경우 그 제3자의 악의도 피보험자의 악의와 마찬가지로 보험자를 면책시킨다고 해석되고, 따라서 피보험자가 회사인 경우 사실상 그 경영권을 가지거나 회사 업무의 특정한 상황을 통제하는 자의 악의도 피보험자의 악의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판단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앞서 본 사실관계 및 갑 19, 44, 132호증, 을 3, 19, 37, 69, 70호증의 각 기재, 당심 증인 AI의 일부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는 이 사건 항해의 개시 당시 이 사건 선박이 겨울철에 중국 상해에서 탄자니아까지의 원양항로를 통해 3척의 부선을 예인운영할 만한 감항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회피한 채 그대로 발항하도록 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4)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피보험자인 원고가 이 사건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들은 그로 인해 발생한 이 사건 사고에 따른 손해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 이를 지적하는 피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있다.
자. 영국해상보험법상 적법상 담보 위반 주장에 관해
(1) 관련 법리
영국해상보험법 제41조는 ‘부보된 해상사업은 적법한 사업이어야 하고, 피보험자가 사정을 통제할 수 있는 한 그 해상사업은 적법한 방법으로 수행돼야 한다는 묵시적 담보가 있다(There is an implied warranty that the adventure insured is a lawful one, and that, so far as the assured can control the matter, the adventure shall be carried out in a lawful manner)’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영국해상보험법 제33조는, 해상보험에 있어서의 담보에 관해 규정하면서, 그 제1항에서, 담보란 확약적 담보(promissory warranty), 즉 피보험자가 어떤 특정한 일이 행해지거나 행해지지 않을 것, 또는 어떤 조건이 충족될 것을 약속하거나 또는 특정한 사실상태의 존재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내용의 담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제2항에서, 담보는 명시적(express)일 수도 있고 묵시적(implied)일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그 제3항에서, 위에서 정의한 담보는 위험의 발생과 관련해 중요한 것이든 아니든 불문하고 정확하게(exactly) 충족돼야 하는 조건(condition)이고, 만약 이것이 정확하게 충족되지 않으면 보험증권에 명시적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자는 담보특약 위반일부터 그 책임을 면한다(is discharged from liability)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단 담보특약 위반이 있는 경우 설사 보험사고가 담보특약 위반과 아무런 관계없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보험자는 보험증권에 명시적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동적으로 그 담보특약 위반일에 소급해 그 보험계약상의 일체의 책임을 면한다(대법원 1996년 10월11일 선고 94다60332 판결참조).
(2) 소결론
이 사건 항해는 부보된 해상사업이 적법한 방법으로 수행돼야 한다는 영국해상보험법 제41조의 묵시적 담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보험자인 피고들은 그 위반일에 소급해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에 따른 책임을 면한다. 피고들의 면책 주장은 이 점에서도 이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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