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잘못된 법 적용에 기초해 컨테이너선사들에게 과징금 부과 결론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을 지낸 양창호 박사는 이달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보고서 판단에 대한 소고’에서 동남아항로를 취항하는 컨테이너선사의 공동행위가 “해운법이 허용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를 벗어나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공정위 심사 결과는 대법원 판례와 해운법 입법 취지 등의 법률 체계를 심각하게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지난 1997년 법무사 사업제한행위 시정명령 취소 사건에서 “법무사협회가 소속 법무사의 자유로운 집단등기사건 수임을 제한한 규정을 도입해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공정거래법 58조에서 동법 적용 제외 대상으로 제시한 ‘정당한 행위’를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라고 해석한 결과다. 이 대법원 판례는 이후 건설 의료 보험 항공 등 25개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판결에 인용됐다.
공정위는 같은 판례를 인용해 동남아항로 컨테이너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가 가입 탈퇴의 자유를 제한한 데다 운임 신고를 누락하고 화주와 협의하지 않아 ‘해운법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양창호 박사는 법무사협회 판례가 인용된 25개 판결이 모두 공정거래법 적용 업종을 대상으로 한 거라는 점을 들어 “해운법 29조에서 원칙적으로 공동행위를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외항 정기선해운에 같은 판례를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 박사는 “법 체계를 심각하게 오해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린 ‘선사가 운임을 공동으로 합의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공정위 시정명령은 선사 간 공동행위나 협약을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한 해운법의 입법정신을 정면으로 반한다”고 비판했다.
운임동맹 가입탈퇴 자유롭다는 선사 의견 외면
양 박사는 공정위가 선사들의 부당 공동행위 근거로 제시한 ▲가입 탈퇴 자유 제한 ▲운임 신고 누락 ▲화주 협의 미준수 등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동정협)가 운임 합의를 준수하지 않은 선사에 벌과금을 부과한 게 해운법 29조에서 금지한 공동행위 탈퇴 제한 행위라고 판단한 부분을 두고 “중립기구(Neutral Body)가 해운법에 규정된 운임공표제 준수를 감시하는 행위를 공정위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박사는 “국제적으로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 가입과 탈퇴 제한을 금지하는 건 폐쇄동맹으로 운영하는 걸 금지한다는 뜻”이라며 “선사 영업임원들이 공정위 조사에서 IADA(아시아역내협의협정)나 동정협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애로사항이 없다고 한 진술에 미뤄 가입탈퇴를 제한했다는 공정위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공정위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선사들이 해운법에서 규정한 운임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례가 100건 이상 있었다고 결론 내린 것도 잘못된 판단이라고 잘라 말했다.
공동행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해운법 관점에서 위반 사례가 있었는지 따져본 게 아니라 공동행위를 허용하지 않는 공정거래법의 시각에서 운임 신고가 정당했는지 심사해 잘못된 결론이 도출됐다는 의견이다.
선사들은 해수부에 총 19번 운임회복(GRR) 협약신고를 했다. 매년 2~4회가량 꾸준히 협약 내용을 정부에 보고한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신고한 운임을 지키고자 합의한 세부 운임 합의 122건이 신고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최저운임(AMR) 합의 91건과 할증료 도입 합의 26건, 최저운임 일괄 인상 합의 10건, 공표운임 합의 3건 들이다.
공정위는 “(운임) 합의를 해온 기간이 매우 장기간이고 합의가 매우 빈번하게 이뤄졌고 합의 대상이 되는 항목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점을 들어 해운법이 허용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양 박사는 “당초 신고한 운임을 벗어나는 최저운임 가이드라인을 설정했거나 부대요금 인상을 했다면 추가로 공동행위 운임 신고를 해야겠지만 신고한 운임 폭 내에서 설정한 최저운임 인상은 해운법 절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기선사 간 공동행위가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있고 조사기간 동안 유효하게 운임 신고를 해왔기 때문에 신고된 운임 폭 내에서 이뤄지는 무수히 많은 운송계약과 관련한 일련의 공동행위 회합 회동 하나하나를 전수 신고하지 않았다고 이를 해운법에서 허용하는 공동행위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는 건 ‘필요·최소한의 행위’라는 법리를 무리하게 적용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양 박사는 “동정협은 조사기간 동안 무역협회 산하 화주협의회에 해운법에서 규정한 내용을 포함한 운임회복 계획서를 빠지지 않고 보냈지만 화주협의회는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를 제외하고 18번의 운임 협의 요청 공문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화주와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공정위 판단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적선사, 2009년 이후 매해 적자경영
양 박사는 “선사 영업담당 임원 진술로 화주 요구에 의해 운임이 결정되는 시장임을 충분히 알 수 있고 조사기간 중 8년간 국적선사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서 선사 간 공동행위가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이를 방증하지 않고 운임 공동행위가 경쟁 제한 효과가 있다는 ‘당연 위법’ 논리로 결론을 내린 건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질타했다.
실제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11개 국적선사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과 2014년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양 박사는 “선사 간 공동행위는 해수부가 1차 조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는 부적절한 데다 공정거래법 적용 타당성 입증이 부족하고 무리한 법리 적용, 과징금 부과가 가져올 산업적 국제적 영향 등을 종합할 때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공정위의 심사 결정 취소를 촉구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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