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자에 이어>
(6) 위 인정 사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운송계약에 따른 이 사건 운송물의 목적지는 메르신과 이스켄데룬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원고의 인도의무는 운송계약에서 정한 양륙항에 입항한 시점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수하인에게 인도해야 완료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원고가 이 사건 운송물을 정당한 수하인에게 인도한 날을 기준으로 제척기간을 계산하거나, 만약 운송물의 인도가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는 운송물을 인도할 날을 기준으로 제척기간 도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운송물이 터키 내 항구에 입항한 시점에 원고의 운송이 종료됐다고 판단한 다음 그 날로부터 제척기간을 계산했다. 원심판단에는 제척기간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나. 평석
위 판결은 양륙항이 있는 터키내에서 화물통관이 이루어지지 아니해 인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양륙항 입항시점을 제소기간의 기산점으로 한 원심판결은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로서, 제소기간의 기산점이 되는 인도한 날 및 인도할 날의 의미와 그 적용범위를 명확히 한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복합운송에 관한 9개월 단기제소기간 약관에 관한 판례 평석
가. 9개월 단기제소기간
복합운송 B/L약관은 9개월의 단기제소기간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약관이 유효한 것인지, 해상운송에 관해 1년의 제소기간을 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강행법규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 등이 문제된다.
나. 대법원 판결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은 오래전에 9개월 제소기간은 1년 제척기간에 위반해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으나(대법원 1997년 11월28일 선고 97다28490 판결), 대법원 2009년 8월20일 선고 2008다58978 판결에서는 화물멸실이 육상운송구간에서 생긴 경우에는 9개월의 제소기간 약관을 소멸시효가 아니라 기간을 정한 부제소합의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고 이를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위 2009년 대법원 판결의 판결이유는 다음과 같다. 복합운송인이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국제상업회의소(UNCTAD/ICC) 복합운송증권규칙에 따라 발행한 유통 선하증권에, 운송인의 책임에 대해 “물품인도 후 또는 물품이 인도돼야 할 날 또는 물품이 인도되지 않아 수하인이 물품이 멸실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날로부터 9개월 이내에 소송이 제기되지 아니하면 복합운송인은 모든 책임으로 부터 면제된다”는 제척기간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 복합운송은 운송물을 육상운송, 해상운송, 항공운송 중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운송수단을 결합해 운송을 수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복합운송에 전체적으로 적용될 법규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손해발생구간에 따라 적용되는 개별적인 강행법규의 구속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계약관계의 당사자들 또한 선하증권에 정한 9개월의 제소기간을 원칙으로 계약관계를 파악할 것이기 때문에 손해발생구간에 적용되는 강행법규에 반하지 않는 한 선하증권의 제척기간규정을 적용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예측가능성을 해하는 등의 불이익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복합운송에서 손해발생구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구간에 적용되는 강행법규에 반하지 않는 한 선하증권에서 정하고 있는 제소기간은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7년 8월3일 법률 제8581호로 개정된 현행 상법은 이러한 고려에서, 복합운송인의 책임에 대해 제816조 제1항에 ‘운송인이 인수한 운송에 해상 외의 운송구간이 포함된 경우 운송인은 손해가 발생한 운송구간에 적용될 법에 따라 책임을 진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특히 해상운송의 경우에는 구 상법(2007년 8월3일 법률 제85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상법’이라 한다) 제811조에서 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무는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등으로부터 1년 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하도록 하고 이를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연장할 수 있으나 단축할 수는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에, 육상운송의 경우에는 구 상법 제147조, 제121조에 따라 운송인의 책임은 수하인이 운송물을 수령한 날로부터 1년을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하고, 이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연장하거나 단축할 수 있다고 볼 것인 점, 복합운송의 손해발생구간이 육상운송구간임이 명백한 경우에도 해상운송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면, 복합운송인이 그 구간에 대해 하수급운송인으로 해금 운송하게 한 경우에 하수급운송인과 복합운송인 사이에는 육상운송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것과 균형이 맞지 않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복합운송에서 손해발생구간이 육상운송구간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복합운송증권에서 정하고 있는 9개월의 제소기간은 강행법규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이 사건 도난 사고로 인한 이 사건 각 화물의 멸실이 육상운송구간에서 생긴 것임이 명백한 이상 위와 같이 9개월의 제소기간 약관을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다. 평석
위 대법원 판결은 9개월 단기제소기간규정이 약관의 설명의무 대상인지, 단기제소기간이 선하증권에 편입된 이유와 당위성 및 운송구간에 따른 제소기간 차등 적용의 불합리성 등을 이유로 많은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생각건데, 9개월 제소기간 약관은 해상법상의 1년 제소기간(상법 제814조)은 물론 운송주선인, 운송인의 1년 소멸시효기간(상법 제121조, 147조)을 3개월이나 단축시키는 것이므로 약관규제법상 약관의 명시설명의무(약관규제법 제3조 참조)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현행 해상법은 운송인이 화주에게 배상하는 경우 3개월의 제소기간 연장 등 구상권 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므로(상법 제814조 2항, 3항 참조) 복합운송인의 보호를 위해 9개월 제소기간을 따로 둘 당위성도 상실됐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사견으로는 복합운송의 경우 손해발생구간이 육송운송구간이든 해상운송기간이든 관계없이 가능한 한 해상법상의 1년 제소기간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며, 부제소특약임을 이유로 육상운송구간에 한해 9개월 단기제소기간 약관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절하지 아니한 것으로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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