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박대리점의 지위
일반적으로 선박대리점은 본인인 선박소유자 내지 운송인을 위해 상시 그 본인의 영업부류에 속하는 거래의 대리 또는 중개를 영업으로 하지만 본인의 상업사용인은 아니며, 본인에게 종속함이 없이 독립·대등의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대리상(상법제87조)이라 할 수 있다.
해상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그에 표창된 화물을 타인에게 넘겨줘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이를 인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물의 법적 멸실에 해당되며, 해상운송인은 채무불이행 책임은 물론 운송물 멸실에 따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 경우 화물인도에 관여한 선박대리점도 운송인과 마찬가지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는가가 문제된다.
2. 화물인도의무의 주체와 선박대리점의 책임
가. 화물인도의무의 주체
운송물의 인도의무의 주체는 운송인 또는 그 대리인이며 그 대리인 중 전형적인 것이 선박대리점이다. 따라서 선박대리점이 독자적으로 선하증권 소지인 등 수하인에 대해 운송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므로, 선박대리점이 운송인과는 별도로 화물인도에 개입·관여하는 등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에 한해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 선박대리점의 책임 문제
선박대리점은 운송인의 지시에 따라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그 업무의 효과도 운송인에게 귀속되므로 상관행에 따라 정상적인 업무절차에 따라 아무런 의사결정 없이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에 따라 화물인도 등 업무를 집행한 선박대리점에게 위법성이 크다고 할 수 없고 손해를 가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 과실도 인정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선박대리점에게 무조건적으로 불법행위 책임을 지우려는 것은 문제이다.
다. 운송인과 선박대리점의 사용자관계 여부
선박대리점은 운송인과 독립·대등의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하므로 운송인은 특별한 자휘감독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한 선박대리점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운송인과 그 선박대리점 사이에 사용자 관계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업무내용이나 내부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것이다. 즉 서울고법 1997년 6월20일 선고 96나24950 판결은 선박대리점에 대해 화물의 인도업무를 단순히 위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휘, 감독하는 관계에 있었다면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해 사용자 관계를 긍정한 바 있으나, 서울지방법원 1996년 1월26일 선고 94가합40036 판결은 국내의 선하증권 소지인인 은행이 운송인을 상대로 운송인의 멕시코내 선박대리점이 화물을 선하증권원본과 상환하지 않고 제3자에게 인도한 것을 이유로 고의·중과실에 기한 불법행위책임을 물은 사안에서 일반적으로 선박대리점은 그 자체 독립한 상인이고 해상운송인과는 위임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특별한 지시감독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한, 해상운송인의 피용자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해상운송인은 선박대리점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해 사용자 책임을 부정했다.
라. 운송취급인과의 관계
우리나라 대법원은 선박대리점 또는 운송인 내지 운송주선인의 대리점을 ‘운송취급인’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상법상의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 개념내용이 다소 모호하다. 대법원 1996년 9월6일 선고 94다46404 판결 등의 설시내용에 비추어 보면, 운송취급인이란 운송인과는 독립한 지위에서, 따라서 운송인의 단순한 피용자가 아닌 독립기업자의 지위에서, 운송인으로부터 운송물의 인도사무나 선하증권의 회수업무 등 제반 운송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자로서 넓은 의미의 운송주선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화물인도에 대한 선박대리점의 책임
가. 선박대리점의 불법행위책임
운송물의 인도의무의 주체는 원칙적으로 선사이므로 대리점은 인도에 적극 개입하거나 관여하는 등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한 경우 이외에는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선박대리점이 독자적으로 선하증권 소지인 등 수하인에 대해 운송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며, 운송인과는 별도로 화물인도에 개입·관여하는 등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에 한해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나. 판례의 입장
우리나라 판례는 선박대리점에 대해 선하증권과 상환없는 화물인도에 관한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것이 많은 것 같다. 대법원 1991년 8월27일 선고 91다8012 판결도 선박대리점이 운송인으로부터 운송물의 인도와 선하증권의 회수업무 등을 맡은 것에 지나지 아니하다면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해 계약상의 채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하는 채무불이행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으나, 선박대리점이 독립한 지위에서 선박운송물의 인도 및 선하증권의 회수 등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지도 아니한 사람에게 운송물을 인도하면 이 화물이 불법반출돼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운송물을 인도받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 것이므로 선박대리점은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선박대리점에 대해 화물인도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 위해는 개별사안에 따라 대리점의 업무 내용과 범위, 위임의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불법행위 성립요건을 구체적으로 따져 엄격히 판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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