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가 재연될 거란 우려가 언제부터인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온 수출과 내수실적이 쌍끌이 부진에 빠진 탓에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를 넘어선 큰 폭풍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 나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수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조선소에 부는 바람은 그 어느 곳보다 차갑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와 더불어 수출의 첨병 노릇을 맡았던 조선업은 최근 일감 부족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국내 대형조선 ‘빅3’의 올해 선박 수주량은 20척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그룹이 12척, 대우조선해양이 8척을 수주했지만, 삼성중공업은 아직까지 실적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하반기까지 지속된다면 2018~2019년께 수주잔량은 바닥을 드러내 조선업이 존폐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소조선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양플랜트 공사로 인한 손실만 없을 뿐이지, 대형조선소보다 상황이 나을리 없다. 중소조선사의 맏형격인 STX조선해양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으며, 삼라마이더스(SM)그룹과의 매각협상이 결렬된 SPP조선도 인력 구조조정 후 재매각을 추진한다.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진행 중이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성동조선해양, 연안여객선 건조시장에 뛰어든 대선조선도 매각이나 법정관리행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수주잔량은 조선사들의 경영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일감 부족이 현실화되면서 높은 인건비를 떠안고 있는 중소조선사들은 인력감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성동은 이미 약 15%의 인력을 감축했으며, SPP조선 역시 1300여명에 달했던 직원을 추가 감원을 통해 450여명 수준으로 줄일 방침이다. 이밖에 STX조선해양도 2600명 근로자 중 1500명을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등으로 내보냈다. 경영난으로 조선사들의 사무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회비를 내지 못하는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뼈와 살을 깎는 중소조선사의 자구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문제는 2018년부터다. 영국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STX조선, SPP조선 등 국내 중형조선소 수주량은 64만6000CGT(수정환산톤수)로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올해는 수주실적이 0건인 실정이다. 대선조선만이 5월 한 달 새 6척의 선박을 수주하며 2년치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나머지 대부분 조선소의 수주잔량은 2017년 하반기가 도래하면 바닥이 난다. 올해를 무사히 넘겨도 내년이 되면 중소조선소의 도미노 파산이 본격화할 거란 분석이 가능하다.
이제는 매스컴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일감절벽’이라는 용어가 국내 조선업계를 규정짓는 말이 됐다. 대중은 현재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혈세 투입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조선사들의 자구노력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2018년 이후 시황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측하지만, 옛 영광을 언제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이긴다’라는 말이 있지만, 중소조선사들의 생존투쟁은 험난하기만 하다. 생존을 목표로 강도 높은 체질개선에 방점을 둬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길 희망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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