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하나가 산업 지형을 뒤바꿔 놓을 수 있다. 2024년 12월 대법원에서 새로운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을 변경하는 판결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근로자가 받는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췄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 판단기준에서 “고정성” 요건이 폐기됐다.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경우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나 근무 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평가된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후 우리 주변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많은 기업과 노동계, 법조계에는 발 빠르게 그에 따른 대응조치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2013년 대법원 판례에 맞춰 임금체계를 마련하고 유지해 왔는데(예컨대, 많은 기업은 상여금 등 각종 수당에 재직자 조건이나 근무 일수 조건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방어해 왔다) 이제는 변경된 판례에 맞춰 임금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에서도 당연히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과 여파에 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해상근로의 특수성을 가지는 선원들의 임금체계는 육상의 근로자와는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해운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논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선원법상의 통상임금과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자. 선원법은 선원들의 임금을 논의할 때 통상임금과 승선평균임금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중 통상임금은 선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일정한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금액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상임금이 선원이 제공한 일정한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한 금액이라는 점이다. 대법원도 통상임금을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경우의 대가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선원이 제공한 “소정근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정근로는 근로계약 또는 취업규칙 등에서 근로자가 제공하기로 약정한 기본적인 근로를 의미한다. 선원법은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으로 정하고 있고, 그 이외의 근로시간을 시간외근로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시간외근로의 경우에는 통상임금의 150%에 상당하는 금액 이상을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시간외근로는 원칙적으로 소정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는 선원의 “고정” 시간외근로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해양수산부 예규에 의하면 시간외근로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시간외근로수당이 고정급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해상근무의 특수성상 선원들은 대부분 시간외근무를 해야 하며 초과근로의 시간도 계약으로 정해지며, 실제로 수행한 초과근로 시간에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정해진 대가가 지급되기 때문에 이를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다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살펴보면, 선원이 실제로 수행한 시간에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지급된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시간외근로에 대한 대가이며 선원의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고정급으로 지급되는 시간외근로수당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필자의 견해는 시간외근로수당이 고정급으로 지급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고정성 요건이 폐기된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의하더라도 이러한 판단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
다만, 지급되는 임금의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그 본질이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해운업계는 선원들의 임금체계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인지 여부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임금 항목별로 소정근로에 대한 보수인지, 초과근로에 대한 대가인지, 모든 선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 여부 등을 구분하고 확인하는 절차도 요구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노사 간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법의 변화는 종종 실무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이번 통상임금 판결로 인해 각종 산업계는 임금체계를 다시 한번 돌아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을 기회로 해운업계도 특유의 근로환경과 임금체계를 고려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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