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산업 동력인 조선업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해 대형조선 ‘빅3’에게 적자를 안겨준 ‘해양플랜트 악몽’이 올해도 재연되고 있다.
연초부터 조선시장엔 비보가 들려왔다. 1월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량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월간 수주실적이 ‘제로’를 기록한 건 미국발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9월 이래 처음이다. 2월 이후 현대중공업은 유조선 4척과 LNG선 1척을 가까스로 수주하는데 성공했지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소식은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대형 조선사들이 유조선을 중심으로 45척의 일감을 확보한 것과 대조돼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난해는 유가하락으로 선주들의 유조선 발주가 활발했지만 올해는 발주가 뚝 끊겼다. 2월 국내 조선소에 남은 일감 역시 2844만CGT(수정환산톤수)를 기록했다. 2004년 8월 2924만CGT 이후 11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선박 수출액 역시 전년 대비 46%나 급감한 실적을 내놓으며 우리나라의 2월 수출액은 14개월 연속 내리막을 걸었다.
과연 국내 조선사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 지난주 다른 상황의 생존을 다룬 다큐멘터리 2편이 방송됐다. 한 편의 방송에서는 글로벌 경제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의 현주소를 집중조명했다. 지난해 파산한 신아SB, 올해 채권단과 SM(삼라마이더스)그룹과의 양해각서 체결로 인수되는 SPP조선 등 국내 조선업의 어려움을 보여줬다. 반면 과거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던 일본은 수주잔량 부문에서 글로벌 3위로 도약하며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다른 방송에서는 너구리의 생존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이 재방송됐다. 멸종위기에 처한 너구리의 치열하고 냉혹한 생존경쟁이 그려졌다. 봄부터 겨울까지 너구리는 생존을 위해 1년 내내 먹이를 찾아다녔다. 로드 킬과 진드기로 인해 많은 너구리가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그들은 매순간마다 돌파구를 마련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두 방송을 잇따라 시청하면서 떠오른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너구리를 보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국내 조선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국내 조선시장과 너구리가 목표하는 바는 같다. 대처방안을 찾아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국내 조선업은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를 위해 국내 조선사는 뼈와 살을 깎는 자구노력을 감행하는 한편, 주무기인 상선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유조선,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상선부문에서 우리나라의 건조 기술력은 ‘세계 최고’다. 경쟁력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수익성 위주의 수주전략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다시 오를 유가에 대비해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도 진행돼야 한다. 핵심 기자재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다면 수익 창출과 공정관리가 원활해져 그동안 국내 대형조선소 실적 훼손의 주범이었던 해양플랜트 부문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업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경쟁국을 압도하는 기술 개발, 신시장 개척 모색 등 혼신의 노력만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생존의 갈림길에 선 국내 조선업이 활로를 찾아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으면 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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