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국적선사가 추가 자구계획에 돌입한 건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해운업계의 위기극복 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상선은 계열사 지분 및 사업부문 매각, 오너의 사재출연 등으로 45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정은 회장과 그의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사재 300억원을 내놨다.
한진해운도 30년 만기의 영구채 2200억원 발행을 통해 부채비율을 600%대로 낮춘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부채를 갚는 한편 담보로 잡혀 있던 자산을 팔아 3000억원대의 유동성을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두 선사는 2013년 말 자구계획을 발표한 지 2년 만에 6조원 가까운 자금을 모아 이행률 100%를 초과달성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선사는 올해 수천억원의 회사채를 막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진해운은 3월 700억원, 6월 1900억원, 9월 500억원 등 3100억원이 만기도래한다. 현대상선도 4월 1200억원 7월 2400억원 등 총 3600억원을 갚아야 한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모두 회사채 상환 능력을 잃은 상황이어서 정부의 개입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의 해운 지원정책은 많은 해운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정부는 지난 연말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산업별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해운산업에 대해선 부채비율이 400% 이하인 선사에 한해 신조금융 12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700~800%대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 같은 지원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 선사가 400% 이하로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선 1조5000억원의 거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원책’이란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해운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해운단체 정기총회를 잇달아 불참해 원성을 사고 있다. 올해 선주협회를 비롯해 국제해운대리점협회 해운중개업협회 등 주요 해운단체 총회에서 해수부 직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해수부는 선주협회 총회엔 대통령 업무보고를 이유로, 국제해운대리점협회 총회엔 담당 과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운중개업협회 총회엔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각각 불참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해운업계에선 “해운에 관심을 갖고 일하라고 만든 부처마저 해운에 관심이 없는데 어떤 정부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주겠느냐”고 비판한다.
조선과 수산업은 고용창출 또는 선거철 표를 의식한 정부와 국회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3차산업인 데다 전형적인 B2B 산업인 해운은 이도저도 아니란 이유로 정부의 관심권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듯해 안타깝다.
해운은 결코 정부가 지금처럼 홀대해선 안 되는 산업이란 점을 분명히 한다. 해운은 우리나라 수출입물량의 99.7%를 도맡고 있으며 조선과 항만 금융의 선도 산업이기도 하다.
자국에서 지은 선박으로 자국화물을 수송한다는 ‘국수국조’ 정책을 펴는 중국이나 해운과 조선이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일본의 예에서 보듯 해운을 외면하고서 조선 발전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중국과 일본 조선산업의 내수 비중은 무려 50%에 이른다고 한다.
반면 정책은행들이 외국 선사 지원에만 골몰하는 우리나라는 조선 수주량의 5%만이 국적선사 물량이다. 국내 은행들로부터 금융 지원이 힘들다보니 선가가 싸거나 금융지원이 좋은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까닭이다.
이런 와중에도 국내 중소형 컨테이너선사들이 현대미포조선이나 대선조선 등 중소 컨테이너선에 특화된 기업에 잇달아 신조선을 발주하고 있는 건 서글픈 현실이다. 해운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을 통해 해운과 조선이 현재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상생의 모멘텀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