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조선사에 수조원의 혈세를 지원키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국내 산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한 기업에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투입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논란이 관련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부실은 해양플랜트 리스크가 원인이다. 침체된 상선 시장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해양플랜트는 뚜껑을 열어본 결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닌 독이 든 성배였다. 규격화된 생산방식이 아닌 까닭에 프로젝트마다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조선소 실적을 갉아먹는 주범이 됐다. 거기다 기술력과 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 기업들로선 핵심기술 수입, 설계 변경, 공사 지연 등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면서 손실 폭을 키웠다.
해양플랜트 악재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들은 하루아침에 우량기업에서 부실기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올해 3분기까지 전체 영업손실 폭은 7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해양플랜트 비중이 큰 대우조선해양은 4조3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유가 하락으로 일감이 줄어든 발주사들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거나 완공된 설비의 인수를 거부하고 있어 앞으로 조선소들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정부는 조선 지원책을 꺼내들었다. 가장 피해가 큰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키로 한 것이다. 단일기업에 지원되는 금액으로는 최대 규모다. 산업은행에서 2조6000억원, 수출입은행에서 1조6000억원의 자금을 유상증자와 대출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공급한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해운업계에서 심한 허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지속적인 지원 요청엔 곳간 열기를 주저하다가 조선 부실이 표면화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천문학적인 금액을 선뜻 내주기로 한 정부가 야속한 까닭이다. 해운이 조선에 비해 이렇게까지 위상이 떨어지는 산업이었느냐는 자조적인 질문도 감지된다.
정부의 해운 지원은 업계가 바라는 것에 크게 못 미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산업에 구조조정 펀드를 통해 지원한 4000억원은 지난해 종료됐다. 아울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회사채 차환에 큰 힘이 됐던 회사채신속인수제도는 올해를 끝으로 폐지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해양보증보험이라는 간판으로 출범한 해운보증기구의 자본금 규모는 당초 전문가들이 조언한 2조원의 4분의 1 수준인 5500억원으로 축소했다. 더구나 정부가 당초 연내 출자키로 했던 400억원의 집행을 잠정 보류하면서 올해 목표인 1500억원 모집이 사실상 힘들게 됐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라는 지경학적인 위치와 수출의 99.8%를 해운이 담당하는 특수한 산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해운에 대한 정부 지원이 경쟁국가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운보증기구 수백억 출자엔 손사레를 치면서 개별 조선기업엔 산업 전체에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는 정부 정책에 해운업계에서 느끼는 박탈감은 자못 큰 편이다.
국책은행들은 국내 조선소를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해외 경쟁선사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국내해운업계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자국 양대해운기업에 95억달러를 지원한 중국이나 화주-선사의 공동발주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이 부러운 현실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이라는 섣부른 정책보다 장기적인 해운성장 전략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 해운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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