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베테랑’을 관람했다. 액션영화임에도 하청의 재하청 구조에서 핍박받는 화물자동차 기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그려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화물연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하고, 밀린 운송료를 요구하지만 도리어 협박만 받는다. 영화는 물류현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애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물류현장 근무자들의 척박한 근로 여건은 결국엔 물류인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직전문사이트에 접속해 ‘물류’를 검색해봤다. ▲배송직원 및 물류직원 모집 ▲물류상품 상하차 장단기 근무자 모집 ▲물류센터 주간 피킹사원 모집 ▲물류서비스센터 물류직 사원채용 등 약 1만5000건에 달하는 채용공고가 검색됐다. ‘상시채용’이 주를 이뤘다. 물류업계의 인력난을 방증하는 자료다.
구직자가 물류현장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업무 강도에 비해 박봉이란 인식 탓이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해 군포복합물류단지를 방문해 현장을 취재할 당시, 이들의 월급이 100만원 후반에서 2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란 걸 알았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업무가 진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많지 않은 임금이었다. 시급으로 환산해도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정도다.
대형 물류기업들 역시 인력난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물량이 몰릴 때면 사무직 근무자가 물류현장에 투입되는 사례도 다반사다. 국내 대형 물류기업 A사 관계자는 “명절이면 약 30% 가량 물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명절 전부터 서서히 인력을 늘려나간다”며 “현장인력을 구하기가 워낙 힘들고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급격한 노령화는 물류현장의 인력 부족 현상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트럭 운전자 부족문제로 적시에 물품을 운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철도화물협회는 일본의 트럭 운전자가 2020년엔 10만6000명, 2030년에는 8만6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직영제’가 일반화된 일본조차도 초고령사회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지입제’가 만연한 국내 물류기업들은 한 순간에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류기업들은 합리적인 고용정책을 내세운 덕분에 지원자가 몰린 사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쿠팡은 2014년부터 배송직원(쿠팡맨)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고, 월급도 200만원 후반에서 300만원 중반으로 끌어올렸다. 구직자들은 쿠팡맨이 되기 위해 줄을 섰고, 면접을 거쳐 일부 지원자만이 쿠팡맨으로 낙점받을 수 있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물류기업들도 일찍이 배송사원을 직접 고용해 서비스 품질을 높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국내 물류기업은 협력업체를 통해 현장인력을 조달받고 있는 형편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화물자동차 기사가 떨구는 눈물은 우리나라 물류산업의 부끄러운 이면이다. 국내 물류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현장 근무자에 대한 처우개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고, 앞으로 물류현장의 인력난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내실(內實)을 다져야 할 때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