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기선 시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2만TEU급 선박 발주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국내 조선소들의 잇따른 수주로 조선업계는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정기선 시장에선 선복 과다로 인한 운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아시아-북유럽항로의 운임은 연일 최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지난 4월10일 상하이항운거래소가 집계한 상하이-북유럽의 운임은 466달러로 500달러선이 붕괴됐다. 상하이-지중해 운임 역시 TEU당 607달러로 침체됐다.
유럽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들은 운임 하락의 원인을 선복 과잉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부터 1만9000TEU급 선박을 비롯한 대형선이 연이어 투입되면서 넘쳐나는 선복으로 운임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투입될 1만TEU급 이상 선박은 63척으로 선복량은 93만5000TEU에 이른다. 지난해와 투입될 선박의 척수는 같지만 선복량은 2014년 84만5000TEU보다 약 9만TEU 많다.
선복량 과잉으로 운임 하락이 기정사실화 됐지만 정기선사들이 앞다퉈 초대형 선박을 확보하는 것은 더 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수송할 수 있어 경제적이며 연료비도 적게 늘어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장 선복이 넘쳐나더라도 향후 운항비용 절감을 위해 대형 선대를 확보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선사들이 당장의 운임 하락을 걱정하기보단 선대 확보를 선택한 것처럼 더 먼 미래를 겨냥한 움직임은 대형 선박 발주에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된 호실적으로 선복량 기준 컨테이너선사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덴마크 머스크라인의 흑자 비결은 남북항로를 포함한 전 노선에서의 탄탄한 입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를 본받아 정기선사들은 공급 증가로 인한 운임하락에 힘겨워 하면서도 네트워크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원양항로를 취항하던 선사들은 아시아 역내 노선 취항에 나섰으며 국적선사들은 한 동안 소홀했던 남북항로 진출의 고삐를 다시금 쥐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자회사인 MCC트랜스포트를 통해 아시아 역내 노선 강화에 나섰다. OOCL, 에버그린 등은 인도, 아시아 역내 노선을 신규 취항하며 네트워크를 넓히는 중이다. 양대 국적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대만의 양밍라인과 함께 4월 말부터 중남미 노선 공동 운항을 시작한다.
물론 경쟁이 늘면서 시장환경은 악화일로다. 동남아항로는 지난해부터 국적선사들의 신규 취항 확대로 공급이 확 늘었다. 여기다 외국적 선사들까지 경쟁에 뛰어든다면 수송 물량은 더 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지난해 동남아항로의 누계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231만8865TEU로 지난해 같은 기간 210만8008TEU에 비해 10% 증가했으나 선사들의 노선 확장으로 운임은 하락했다. 원양항로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500달러대의 저운임을 기록하고 있는 남미 동안은 사상 최악의 시황 침체를 겪고 있다. 브라질의 경기 악화와 선사들의 캐스케이딩으로 선복량도 늘어 향후 운임 하락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극심한 불황을 겪으며 선사들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을 나름 터득했다. 눈 앞의 운임 하락을 걱정하기 보단 원시안적 사고를 갖고 더 먼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2년 후인 2017년에는 CMA CGM, MOL, 에버그린 등이 발주한 2만TEU급 선박들이 정기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선복량 증가는 이미 기정사실화 됐으며 선사들의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 질 것이다. 먼 미래에 웃는 정기선사는 과연 어느 곳이 될지 선사들의 움직임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다.
< 이명지 기자 mj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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