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사들의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일본 3개 컨테이너선사들이 한 회사로 통합하는 것도 선택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막연한 시장 관계자가 한 말이 아니다. 일본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MOL의 무토고이치 사장이 한 말이다. 무토 사장은 “아시아-유럽항로가 선사들 또는 해운산업에 피해를 끼치는 것은 자정능력 부족을 증명한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세계적인 해운시장 불황으로 정기선사들이 겪는 고통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 4~9월 동안 MOL -121억엔 NYK -151억엔 K라인 203억엔의 경상적자를 기록했다.
다른 정기선사들도 성수기인 3분기에도 줄줄이 적자실적을 보고하고 있다. 당장 국내 1위 선사인 한진해운은 3분기에 영업손실 1351억원 순손실 85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2조468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6% 줄었다. 현대상선은 같은 기간 99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급기야 한진해운은 임원들이 급여 10%를 반납키로 하는 등 불황탈출을 위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라인은 3분기에 2억9700만달러(머스크그룹 컨테이너선부문 합계치)의 적자를 내 지난해 10억2800만달러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매출액은 72억3000만달러로 1년 전 69억2200만달러를 기록해 4% 증가했으나 연료비 등 비용 증가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세계 7위 정기선사인 싱가포르 APL은 같은 기간 8800만달러(약 97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억100만달러 흑자에서 적자전환했으며 2분기 -5300만달러와 비교해 적자폭이 커졌다.
중국 코스코도 같은 기간 3억2400만달러 적자란 참담한 성적표를 내놨으며 차이나쉬핑컨테이너라인도 1억4900만달러의 적자에 울어야했다. 두 선사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 3억3200만달러 2억6400만달러의 흑자를 냈던 터다.
“성수기 웬 말” 3분기 오히려 부진
7~9월은 원양항로에선 전통적인 성수기다. 상반기까지 지지부진하던 물동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소석률도 높아져 선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운임회복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올해엔 이 같은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기본운임인상(GRI)이나 성수기할증료(PSS) 등의 운임회복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3분기 들어 운임은 내리막길 행보를 보이는 등 선사들의 실적 악화를 부채질했다.
올해 들어 시작된 선사들의 경쟁적인 대형선 도입이 시황침체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특히 아시아-유럽항로의 초대형선 공습은 물동량성장 폭을 크게 웃돌며 운임급락이란 부메랑이 돼 해운 시장을 강타했다. 컨테이너리제이션인터내셔널(CI)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원양항로를 주력으로 경쟁하는 세계 20대 선사들의 선박량은 1289만2천TEU로, 1년 전에 비해 10%나 늘어났다. 이들 선사의 선박량 점유율은 지난해 73%에서 74%로 1%포인트 확대됐다. 반면 20위 밖에 포진한 선사들의 선복 증가율은 2% 증가에 머물렀다.
게다가 물동량마저 더딘 걸음을 해 선사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3분기 동안 물동량은 지난해 대비 성장세를 유지한 모습이다. 컨테이너트레이드스터티스틱스(CTS)에 따르면 3분기 아시아-유럽 수출항로는 370만4000TEU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355만9000TEU에서 4.1%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7월 130만1500TEU로 7.7%에 이르던 월간 성장률은 8월(128만2000TEU) 4.1%로 크게 낮아졌으며 9월엔 112만500TEU로 0.2%로 뚝 떨어졌다. 선복량은 크게 늘어난 반면 물동량은 답보상태에 빠진 것이다.
아시아-유럽 수입항로 3분기 물동량은 152만900TEU로, 1년 전 138만4900TEU에 견줘 9.8% 늘어났다. 특히 월간 성장률은 7월 7.1% 8월 11.5% 9월 11% 등 두 자릿수를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수출항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물동량 수준은 선사들에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동량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운임회복의 근거가 되는 소석률(선복대비 화물적재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북미항로 물동량은 3분기에 아예 뒷걸음질쳤다. 미국 항만물동량분석기관인 피어스(Piers) 자료에 따르면 7~9월 아시아-미국 수출 물동량은 348만6059TEU로 1년 전의 362만9697TEU에 비해 4%나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3분기 물동량은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을 제외하고 최근 7년간 가장 낮은 실적이다. 4분기에도 약세가 지속된다면 연간 성적표도 역신장을 기록할 것으로 점쳐진다. 북미항로 물동량 증가율은 1분기 5.6%에서 2분기 2%로 크게 둔화된 뒤 3분기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침체가 가장 큰 이유다. 중국발 미국행 3분기 물동량은 242만9416TEU로 5.6%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노선 물동량은 6월 이후 4개월째 마이너스 성장률을 내놓고 있다. 한국발 물동량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기간 한국발 미국행 물동량은 16만7071TEU로 1년 전 17만8934TEU에 비해 6.6% 줄었다. 한국발 물동량 역시 6월부터 4개월째 하락곡선을 그렸다.
중국발 물동량 약세가 해운침체 이끌어
이 같은 시황 약세에 운임은 비수기보다 오히려 하락한 모습이다. 최근 한국-유럽 수출항로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700~800달러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 취항선사 관계자는 “BAF(유가할증료)를 750달러 적용하고 있는데, BAF만 받고 화물을 나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미서안간 단기수송계약(스폿)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TEU) 기준 1700달러 언저리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나마 한국시장에선 선사들이 성수기할증료(PSS)를 부과하고 있어 하락세를 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발 운임은 이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상하이항운교역소에 따르면 11일 현재 상하이발 유럽행 운임은 TEU당 573달러로 600달러선이 무너졌으며, 상하이발 미서안 운임도 FEU당 1500달러대가 붕괴된 1481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은 세계 해운시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막대한 해상물동량을 쥐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에 따라 해운업계가 울고 웃는 것이다. 때문에 이 같은 중국시장의 침체는 곧 전체 해운업계에까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중국발 운임이 약세를 띠는 한 한국발 운임이 독자적으로 치고 올라가긴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북미항로에선 시장 안정화를 위한 선사들의 몸부림이 포착된다. 선사들의 잇따른 서비스 철수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북미항로에선 밀물처럼 신규선사들이 진출했다가 썰물처럼 다시 빠져나갔다. 지난 4월 27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투입해 북미항로에 진출했던 중국 그랜드차이나쉬핑은 이달 초 수퍼퍼시픽익스프레스(SPX)를 중단함으로써 7개월간의 북미항로 대장정을 마쳤다. 6월 초 부산항 취항과 함께 북미항로 서비스를 한 곳 더 늘리는 빠른 행보를 보였으나 결국 시황 불황이란 엄혹한 현실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랜드차이나쉬핑과 비슷한 시기 북미항로를 노크했던 하이난PO쉬핑과 TS라인도 북미항로 노선 3곳 중 TP1과 TP3를 지난 6월과 9월 잇달아 중단하고 현재 중국 기점의 TP2 한 곳만을 서비스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스코에서 선복을 임대해 부산-미국 서비스를 진행하고는 있다.
북미항로 상시 선복조절프로그램 가동
이밖에 신생선사인 덴마크 더컨테이너쉽컴패니(TCC)가 지난 4월 진출 1년 만에 철수를 선언했으며 칠레 CSAV도 6월 말 3500TEU급 11척으로 서비스했던 아시아-미국(ASIAM) 노선을 폐지했다. 현대상선은 4600~4700TEU급 5척을 단독 배선하던 태평양서안남부(PSW) 노선을 중단했으며 한진해운 코스코 완하이라인 PIL 등이 공동운항해온 중국·롱비치익스프레스(CLX)와 CKYH와 완하이라인이 서비스해온 싱가포르·일본·캘리포니아익스프레스(SJX)도 지난달 각각 시동을 멈췄다.
PSW CLX SJX 세 노선의 철수로 주간 1만5천TEU의 선복이 북미항로에서 사라진 셈이다. 머스크라인 MSC CMA CGM은 매년 임시 취항해오던 성수기 특별노선을 올해는 도입하지 않기로 해 시황 개선에 힘을 싣기도 했다.
선사들은 일련의 선복감축을 배경으로 실질적인 실력행사에 돌입하려는 움직임이다. 한진해운을 비롯한 일부 선사들은 12월1일부로 미 서안과 동안 수출항로에서 FEU당 400달러의 PSS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운임회복안을 화주들에게 공지했다.
또 2차 운임회복 장치로 내년 1월1일 GRI 도입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현대상선 등의 선사들은 PSS보다는 1월 GRI에 주력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파악된다.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일단 대대적인 선복감축으로 소석률은 90% 선으로 올라서 고무적이다. 특히 CKYH얼라이언스는 매 항차마다 시황흐름에 따라 선복을 조절하는 돌발운항프로그램(CPS)을 진행하며 운임안정화를 채찍질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 연대한 운임회복이 아닌 한국시장에서의 단독적인 움직임이란 점은 부정적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PSS 도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CPS를 진행하고 있다”며 “선적예약이 선복을 넘어서는 등 선복조절 효과를 보고 있어 성공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선사 관계자는 “12월 PSS 도입보다는 1월 GRI에 힘을 모아야할 것”이라며 “중국이 빠진 한국시장만의 단독 운임회복이기 때문에 (PSS는)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항로는 운임회복 기대가 요원한 상황이다. 오히려 삼성과 LG 등 대형화주들은 내년 1월1일부로 계획된 수송계약(SC)를 체결을 앞두고 최대 15~20%대의 운임인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항로는 현재 1만TEU 이상의 초대형선들이 집중되고 있는데다 머스크라인의 데일리서비스 등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특히 중국-유럽에서 매일운항을 목표로하는 데일리머스크 서비스는 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그랜드얼라이언스(GA)를 빼놓고 이렇다할 선복감축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는 것도 유럽항로의 턴어라운드를 어렵게 하는 이유다.
그랜드얼라이언스 부산과 칭다오 상하이에서 북유럽을 잇는 루프D를 중단키로 결정했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데일리머스크가 있는 한 운임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며 “머스크와 대항해 일본선사들과 같이 자국선사들을 중심으로한 얼라이언스 재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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