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제16회 바다의 날’을 맞아 세계 G-5로 도약한 우리의 해운세력 신장에 큰 긍지를 느끼면서 아울러 바다를 소재로 한 해양문학에 대한 관심 고조와 이를 상기하는 계기 마련을 위해 외항상선선장 시인 김성식과 원양어선선장 소설가 천금성의 작품세계를 단순히 필자가 독자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각각 가볍게 더듬어 보기로 한다.
공교롭게도 김성식 시인은 한국해양대학을 거친 외항상선 선장으로 운문 부문에서, 천금성 작가는 서울대 졸업 후 원양어업기술훈련소를 수료한 원양어선 선장으로 소설부문에서 각각 신춘문예를 거쳐 등단한 대칭적인 입장이고 대조적이라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어쩌면 문학의 바탕이 바다려니 한 울타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해운과 수산이라 3차와 1차로 산업의 궤적이 서로 달라 전혀 다른 분야 같기도 한 것이 비교문학적 차원에서도 여하간 관심사일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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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양상선 선장 시절의 김성식 시인이 브리지에서 파이프담배를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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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외항선장 고 김성식(金盛式) 시인 - (상)
따라서 작고한 ‘외항해운 김성식 선장 시인’의 작품세계를 먼저 훑어보고 이어 ‘원양어업 천금성 선장 소설가’를 접해 봄으로써 우리나라 현대 해양문학 양대 장르와 해양문단 양대 산맥의 작품세계를 엿보며 바다의 날을 뜻있게 새겨보는 것으로 순서를 삼기로 한다.
한국문단에서 해양문학 또는 해양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2002년에 타계한 고 김성식 선장시인의 시비(詩碑)가 2004년 그의 모교인 부산 조도의 한국해양대학교 캠퍼스에서 제막됨을 계기로 일면식도 없으나 지면이나 작품을 통해 관심이 있었던 김 시인에 가까이 갈 기회라 생각하니 우선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필자는 그간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해양계의 여러 인사들을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김 시인만은 이름 석자와 한국해대 16기 동기생들이나 몇몇 그의 글 친구들의 전언 외에는 실제로 교호할 기회가 없어 신상에 대해서 크게 아는 게 없으나 발표된 작품을 중심으로 가볍게 조명해 보려고 한다.
김성식 시인은 기록에는 1942년생으로 생존한다면 갓 일흔, 필자와 동갑으로 함경도 이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71년 <청진항>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4권의 시집을 내고 30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하여 한국 해양문학의 선구자적 개척자로 그의 필명을 날렸었다.
한국해대·항해사 거쳐 범양상선 선장으로 33년간 바다생활
한국해양대학 본과와 전수과를 두루 거치면서도 졸업장은 거머쥐지 않고 국가자격시험을 통해 해기사 면허를 취득 후 항해사로 배를 타고 선장이 되기까지 33년동안 세계로 바다로 미래로 5대양을 두루 누비며 범양상선 등 원양상선을 타고 대양과 바다를 항해하면서 겪은 바다와 파도와 싸우며 지내온 바다경험을 바탕으로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하여 해양시 300여편을 남긴 것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이 바다위에서 영감을 얻어 빚어진 것으로 알려진대로 해양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문단에 <해양시>라는 독특한 장르를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칭송받은 건 김 시인이 마른 땅에서 외는 일반문학인이 아니라 외항선 선장이란 독특한 직업에 더하여 바다를 항행하는 마도로스라는 상징성과 이미지와 로맨티시즘이 플러스 알파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리란 게 막연히 필자가 느끼는 낭만적 견해다.
지난 2002년 3월 작고한 김 시인은 기인 원양상선 승선활동과 선장직무 수행 중 무사고 운항기록과 선원들의 권익보호 및 해운산업 발전을 통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몇 해 전 ‘바다의 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1971년 “淸津港”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본격 문단 데뷔
아까운 나이에 타계하기까지 줄곧 우리 문단에서 해양시란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온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0년말 승선 중에 투고한 시 <청진항>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난 이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77년 첫시집 <청진항>을 출간한 이래 2000년 하선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발간하기 전에 김 시인은 월남 후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때 부터 바다를 주제로 한 시를 써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는가 하면 늘 물결을 타듯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일관해 왔다.
그리고 살아생전 그리도 호방하던 김 시인은 배를 타던 중 하선해 종합검진에서 임파선암 판정을 받고 치료 중 점차 나약해 죽어가면서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시를 쓰겠다며 펜을 놓지 못하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고 술회하는 미망인, 부인의 심경을 여러 자료에서 읽은 적이 있다.
김성식 선장 시인은 험한 파도와 싸우며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생전에 늘 유독 갈 수 없는 항구 북한땅 청진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성식의 시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그의 시가 단순하게 바다를 무대로 할 뿐만 아니라 해양의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해양시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담보하고 질적으로 위상을 높혔다고 강조했다.
어느 학자는 김 시인이 선장으로서 33년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쓴 300여 편의 시는 해양문학을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를 뛰어넘는 해양시이며 해양문학작품이라는 점을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한다.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淸津港 도선사가 되는거야!”
조선일보 신춘문예 <청진항>에서 ‘배를 타다 싫증나면/까짓것/청진항 도선사가 되는거야/중앙 부두에/계류해 놓는거야’하던 김선장은 결국 청진항에 가보지도 못하고 도선사가 되기전 2002년 겨우 회갑의 나이에 아깝게도 타계했다.
들리는 바로는 김선장이 연가나 휴가 등으로 하선하여 부산 중앙동에 나타나면 술집이고 어디고 가는 곳마다 도떼기 시장같이 떠들석 했다고 16기 동기인 최건식 전 미쓰이소꼬 사장은 전한다.
청진항(淸津港)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거야
오오츠크해에서 밀려나온
아침 해류와
동지나에서 기어온
저녁 해류를
손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
큰 배를
몰고 들어갈 때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잡이 배를 피해
나진 웅기로 올라가는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 나르는
기름 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 부두에
계류해 놓는거야
(중 략)
잘 익은 능금 한 덩이
기폭에 던져 놓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별을
기폭에 따다 넣고
햇살로 머리 빗긴
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
저마다 메인 마스트에
태극기 태극기를
(중 략)
까짓것
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파이롯이 되는 거야
<계속>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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