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3 09:21
해양사고에 있어 정기용선자의 책임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변호사
■ 대법원 2008. 8.21. 선고 2007추80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재결취소 판결
【원고ㆍ상 고 인】 S 주식회사
【피고ㆍ피상고인】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주 문】 ① 중앙해양안전심판원 2007. 8. 2. 자 중해심 제2007-12호 재결 중 원고에 대하여 시정을 권고한다는 부분을 취소하고, 이 부분을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으로 환송한다.
②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2008. 12.22자에 이어>
1. 들어가며
정기용선계약은 잘 아시다시피 선박소유자가 용선자에게 선원이 승무하고 항해장비를 갖춘 선박을 일정기간 동안 항해에 사용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용선자가 이에 대하여 기간으로 정한 용선료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계약을 말한다. 따라서, 그 인적 물적 감항능력을 갖출 의무가 있는 자는 용선 선박을 자신의 활용에 맞게 사용하는 용선자가 아닌 선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박에 탑승하여 업무에 임하는 선원들을 객관적으로 지휘 및 감독하는 권한 역시 선주에게 있다고 새기는 것이 보통이다.그러나, 정기용선 선박이 운항 중 발생한 해양 사고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즉, 정기용선자라 하더라도 해양사고의 원인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 밝혀진 경우에는 해양안전심판법에 따라 정기용선자에게 직접 이를 시정권고하도록 재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기용선자의 경우에도 해양사고에 있어서는 일정부분 책임이 인정될 것이지만, 정기용선 중인 선박의 해양사고에 있어 시정권고의 주체가 무조건 정기용선자가 되지는 않는다. 기 소개드린 사례는 이러한 점을 언급하고 있는 바, 이하에서는 사실관계 및 대법원 판결의 요지를 살펴보고 본 판결의 의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사실관계
S 주식회사는 항로표지관리소 선착장 개량공사 중 수중공사를 하도급받아 예인선 T호와 부선인 P호 및 선원들까지 임대하였는데, 임대 조건에 ‘임대료에는 선원의 식대 및 수당, 소모품 비용이 포함되고, 장비에 대한 정비 등의 의무는 임대인에게 있으며, 무자격자에 의한 운전으로 발생한 사고 기타 불미스러운 사고 등의 책임은 모두 임대인에게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선박을 임차한 후 S 주식회사는 공사에 착수하였는데, T호와 P호가 작업을 마치고 귀항함에 있어 파도 및 조류 등의 영향으로 선박이 침몰하고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해양사고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S 주식회사에게 선박운항자로서 그 관리 등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이유 등으로 시정 권고 재결을 하였으며, 이에 S 주식회사는 ‘자신들은 정기용선자의 지위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한 것이므로 이러한 재결은 이유 없고 따라서 취소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항변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이 사건 원심 재결을 한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유없음을 지적하고, 이를 파기환송하였다.
가. T선에 대한 위 용선계약은 선박임대차계약과 구별되는 정기용선계약으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바, 상법상 정기용선계약에 있어서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하여는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휘?감독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로지 선주에게 있다 할 것이나, 해양사고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해양안전의 확보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해심법과 선박의 운행 중 사고로 인한 공평한 손해배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상법은 각기 그 입법 취지를 달리하는 것이므로, 상법상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 정기용선자라 하더라도 해양사고의 원인에 관계있는 사유가 밝혀진 경우에는 해심법에 의한 시정권고재결을 할 수 있다.
나. 그러나, 정기용선자가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한 안전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거나 정기용선자에게 안전의무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까지 그에 대하여 시정권고재결을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4. 평석 및 사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첫째, 이 사건 선박 임대차 계약을 정기용선계약으로 파악하였다. 즉, 이 사건 정기용선 계약은 외형은 분명히 선박 임대차 계약에 불과하다. 원칙적으로 선박 임대차 계약의 경우에는 해당 선박의 관리 책임은 임차인인 S 주식회사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S 주식회사가 당해 선박을 임차하면서 계약 내용에 포함시킨 내용은 정기용선계약으로서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었다고 평가함이 합리적이다. 즉, 선원의 승선이나 선원에 대하여 지출되는 비용 및 선박 운행에 필요한 비용을 임차인이 전부 부담하고, 선박의 정비 및 선원의 자격 여부 등으로부터 비롯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임대인이 지며, 각종 장비 등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임대인이 지게 된다는 점에서 사안에서의 선박 임대차 계약을 선박의 정기용선계약으로 파악한 것이다. 계약상 형식적인 면보다 실질적인 면에 주목하여 이 사건 선박 임대차 계약을 정기용선계약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독자 여러분들도 ‘계약의 외형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계약이 분류되고 그 성질을 평가한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
둘째, 정기용선자라도 해양사고에 있어서 무조건 책임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법상 정기용선계약을 파악하더라도 인적 및 물적 감항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는 선주이지만, 정기용선자가 해양사고에 있어 원인을 제공하였다면 그 책임주체가 됨은 이미 서두에서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기용선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정기용선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경우에 책임을 지게 된다면 오히려 불공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정기용선자가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한 안전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거나 정기용선자에게 안전의무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면한다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사안의 경우에 정기용선자인 S 주식회사가 위 사고 발생에 있어 원인을 제공하였다 평가할만한 과실이 없는 점에서 대법원은 재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주목할만한 점이라 하겠다.
정기용선자의 책임에 대하여 이번에 소개드린 사례에서는 해양사고에 있어서 정기용선자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점을 이번 기회에 독자 여러분들도 익혀두시어 정기용선계약의 성격 등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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