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7 14:06
판례/ 피예인선도 인적 감항능력을 갖춰야 한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국토해양부 고문 변호사)
<7/14자에 이어>
1. 들어가며
선박은 바다라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을 지나는 교통수단으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처가 필수라 할 것이다. 이는 선박 자체가 결함없이 안전한 항행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과 유사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의 배치로 나눌 수 있는데, 안전한 운항을 위해 둘 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는 없다. 전자를 물적 감항능력, 후자를 인적 감항능력이라고 한다. 감항능력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해상 보험의 경우에도 ‘감항능력을 갖췄음에도’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상하는 것임은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피예인선의 경우에 감항능력을 갖춰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피예인선은 예인선에 의해 끌려가는 것으로 보통의 경우에는 해상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수리받기 위하여 입항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선박의 고장에 있어서 물적 감항능력은 당연히 결여되어 있으나 이 경우에 피예인선에도 인적 감항능력이 반드시 요구되느냐 하는 점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서 소개드린 판례를 통해 숙지하셨다시피 사안의 경우 이러한 점에 대해 피예인선의 인적 감항능력을 결한 경우에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판결 요지를 우선 살펴보고 이에 따라 필자의 의견을 서술해 보기로 한다.
2. 판결의 요지
가. 피고의 공제약관 제2조가 제2항에서 ‘…조건으로 공제계약의 청약을 승낙해 보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피고가 공제자로서 제1항에서 규정한 해상위험을 부담하기로 하지만 공제의 목적물인 어선이 발항 당시 통상의 해상위험을 사실상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감항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을 조건으로 해 그 위험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나. 따라서, 공제의 목적물인 어선이 발항 당시 위와 같은 감항능력을 갖추지 아니하였던 것으로 판명되면 그 발항 이후부터는 공제계약에서 정한 해상위험에 대한 위험부담의 조건은 성취되지 아니하였던 것이 되고, 따라서 발항 이후에 해상위험이 현실화돼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피고는 공제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게 된다고 할 것이다.
다. ‘공제의 목적인 어선이 통상의 해상위험을 사실상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적합한 상태’를 뜻하는 감항능력은 선체나 기관 등 선박시설이 당해 항행에 있어서 통상의 해상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물적 감항능력)과 그 선박에 승선하고 있는 선원의 기량과 수에 있어서도 그 항행에 있어서 통상의 해상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인적 감항능력)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중에서 인적 감항능력의 구비 여부 판단에 있어서는 선박의 안전한 항행을 확보하기 위해 선박의 크기나 항행구역 등에 따라 선박에 승선해야 할 선원의 자격과 수를 정하고 있는 선박직원법의 관계 규정이 일응의 표준이 된다고 할 것인데, 선박직원법 제11조 제1항에 의하면 “선박소유자는 선박의 항행구역, 크기, 용도, 추진기관의 출력 기타 선박의 항행의 안전에 관한 사항을 참작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선박직원의 승무기준에 적합한 해기사를 승무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1995. 4. 21. 당시 시행되고 있던 선박직원법시행령 제22조 제1항의 ‘[별표 3] 선박직원 승무기준’에 의하면 이 사건 어선이나 제B호와 같이 연해구역에서 무선통신장치를 구비해 조업하는 200t 미만의 선박은 갑판부에 각 6급 이상의 항해사 자격을 가진 선장 및 1등 항해사를, 기관부에 6급 이상의 기관사 자격을 가진 기관장을, 통신부에 3급 이상의 통신사 자격을 가진 통신장을 승선시켜야 한다.
라. 위 사고의 원인은 선원이 모자란 상태에서 무리하게 발항하면서 불가피하게 측면예인을 하는 과정에서 선령이 오래돼 노후한 이 사건 어선이 제B호를 충격하면서 선저에 틈이 생겨 침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달리 반증이 없는 바, 인정 사실과 같이 이 사건 어선에 아무도 승선하지 아니한 채 운항한 만큼, 이는 위 약관 제2조 제2항 단서 및 제11조 제1항 제7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적 감항능력을 결여한 것이고, 따라서 원고로서는 이 사건 어선의 침몰에 따른 공제금의 지급을 구할 수 없다 할 것이다.
3. 판례 이론의 검토
판례는 피고의 공제가 적용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피공제자인 원고가 감항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피고의 공제가 기타 보험과 같이 ‘우연한 사고를 보험사고로서 담보하겠다’는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를 약관에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다라는 환경적 요인은 정해진 레일을 달리는 기차와는 달리 자연적 요인 즉, 파도의 높낮이나 폭풍에 의해 불의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 즉 감항능력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감항능력의 결여는 부당하게 보험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높이게 되는 바, 보험자인 피고 입장에서는 예방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부당하게 위험이 증가한 경우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된 경위를 살펴보면, 원고들은 예인의 방법에 있어서도 보다 안전한 선미 예선이 아닌 측면 예인을 했고, 예인로프가 4번에 걸쳐 끊어지고 있음에도 피예인선에 적절한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채 잠들어 버렸다. 선박직원법은 이 사건 선박과 같은 200t 미만의 어선의 경우 최소한 ‘갑판부에 각 6급 이상의 항해사 자격을 가진 선장 및 1등항해사를, 기관부에 6급 이상의 기관사 자격을 가진 기관장을, 통신부에 3급 이상의 통신사 자격을 가진 통신장을 승선시켜’ 위와 같은 불의의 상황에 대비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원고는 이와 같은 최소 인적 감항능력 요구사항을 어긴 것이 분명하므로 이는 피고가 보험책임을 지기 앞서 전제한 ‘인적 감항능력’의 결여라 할 것인 바, 이러한 경우까지 보험자인 피고가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판례는 이러한 점을 잘 지적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타당한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사료된다.
4. 사 견
피예인선은 언뜻 생각하기에 동력선인 예인선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므로 감항능력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위 사고 발생에 있어 유사시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 모두 예인선에 있었고, 로프가 4번이나 끊어지는 등의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모두가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잠들었기 때문에 피예인선의 침몰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 역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예인선이라도 감항능력을 갖춰야 함이 요구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선박의 침몰은 커다란 재난이다.
그 물질적인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인명 피해도 자주 발생하게 된다. 피예인선은 예인선에 의하여 끌려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동력 없는 통나무 선’은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사고 예방을 위해서 법령에 정한 최소한의 안전조치 즉, 적절한 인원 배치를 통한 감항능력을 갖출 것은 반드시 요구된다. 이러한 조치야말로 ‘인재’를 막을 수 있는 적합한 예방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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