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시대를 맞아 향후 컨테이너 운임이 대체로 높은 수준을 이어갈 거란 주장이 나와 이목을 끈다.
김경태 해양진흥공사 과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컨테이너선 탈탄소화 선·화주 협력 및 기술전략 세미나’에서 향후 컨테이너 수요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미·유럽 등 원양항로와 아주항로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내년까지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했다. 올 한 해 북미와 유럽 물동량은 전년 대비 7.2% 1.8% 증가한 2260만TEU 1690만TEU를, 내년엔 전년과 비교해 2.7% 1.2% 늘어난 2320만TEU 1710만TEU를 각각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와 내년 아주항로 물동량은 각각 6480만TEU 6690만TEU로, 전년과 비교해 3.8% 3.2% 늘어날 것으로 점쳤다.
수요는 늘어나지만 공급은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김 과장은 클락슨, 알파라이너, MSI, 드류리 등 글로벌 해운분석기관이 발표한 2024년 전망 수치를 평균·산출한 결과 공급과 수요 증가율이 9% 3.6%를 각각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해운시장에 공급될 신조 컨테이너선이 많다는 점이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약 200만TEU의 신조선이 해운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과장은 “컨테이너선뿐만 아니라 다른 선종도 발주잔량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어 2025년 인도량이 역대 최고이고 몇 년간 컨테이너 선복량은 최고치를 경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과장은 컨테이너 운임이 많은 발주잔량으로 하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탈탄소 규제로 인해 높은 수준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들이 친환경 연료, 선박, 인프라 투자 등에 투입되는 비용을 운임에 반영하면서 향후 구조적인 고운임 시대가 열릴 거란 지적이다.
그는 “탈탄소, 친환경에 관한 비용, 이른바 ‘그린프리미엄’으로 인해 선사들이 10%, 많게는 30%까지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담을 운임에 반영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운임 수준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탈탄소 선사간 양극화 불러와 해운업계 재편될 것”
탄소중립 실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가 해운업계에 부담이 되고 있고, 재무적인 능력에 따라 선사들의 대응 강도가 다를 거란 견해도 나왔다. 탈탄소 시대에 발맞춰 상대적으로 대응하는 게 쉽지 않은 중소선사를 향한 정부의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탈탄소화가 결국 선사 간 양극화를 불러일으켜 해운업계가 재편할 거란 진단이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는 주요 글로벌 기업의 탈탄소 대응 방법과 선화주 협력 사례를 소개하고, 향후 대책을 설명했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생활용품기업 유니레버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300곳의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감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공급업체에 감축목표 설정 등 사회환경책임 매뉴얼을 준수토록 요구하고 있다.
독일 지멘스는 1~3차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한 탄소 평가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미국 화학기업 다우케미컬은 해운물류기업의 감축 노력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공유하고 있다.
이 밖에 아마존, 파타고니아, 나이키 등 대형 화주들이 설립한 ‘ZEMBA(Zero Emission Maritime Buyers Alliance)’가 회원사 공동으로 탈탄소를 위한 해상운임 입찰을 진행하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에 선사들이 시대에 걸맞은 친환경 경영을 하지 않을 경우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교수는 “글로벌 화주들이 연합해 선사들에게 탈탄소를 적극 추진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화주가 증가하는 운송비를 부담할 의향이나 재무적 능력이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탈탄소 투자 비용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자료를 인용해 2050년까지 해운시장에서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려면 약 1조4000억달러(약 1930조원)가 필요하고, 선박이 탈탄소화하려면 매년 80억달러~280억달러(약 11조~39조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결국 화주들이 탈탄소화에 필요한 투자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중소선사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한 교수의 견해다.
그는 “글로벌 선사가 아닌 중소형선이 많고 화주에 비해 낮은 지위에 있는 중소선사가 친환경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을 운임 인상으로 커버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화주와의 적극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용 부담이 가능한 화주와 대형선사 중심으로 해운업계 재편이 이뤄지면서 탈탄소화가 해운시장에서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 교수는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해양수산부, 해운협회가 공동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든 뒤 탈탄소 추진 기금을 운용해 선사들을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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