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대 항만인 펠릭스토항 파업으로 유럽 전역에서 공급망 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 벨기에 등에서의 잇따른 항만 파업으로 물류 차질이 가중되면서 선사들은 대체 기항지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독일 벨기에 등 주요 항만서 파업 잇따라
펠릭스토 노동자 2000여명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감당할 만큼 임금이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난 8월21일부터 29일까지 9일간 파업을 벌였다. 8월 초 협상에서 컨테이너터미널 운영사들은 7% 급여 인상과 500파운드 일시불 지불을 협상카드로 내걸었다.
영국 노동조합인 유나이트는 “임금을 50% 더 지불하면서도 (사측은) 여전히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10%의 인상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터미널운영사 측은 “많은 사람이 일을 하고 싶어하고 회사 제안에 수용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결정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펠릭스토항처럼 올 들어 인플레이션으로 유럽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 파업이 잇따랐다. 독일 함부르크 빌헬름스하펜 브레머하펜, 벨기에 안트베르펜·제브뤼헤에서 파업으로 물류 차질이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추가 파업이 발생할 수 있어 유럽의 공급망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해운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영국은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0.1%로 40년 만에 두 자릿수나 뛰었다.
이는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에너지와 식량 가격의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더 심화시킬 거란 주장이 나온다. 독일의 소매판매 역시 전년 대비 10% 감소하며 집계 이래 최대 하락 폭을 나타냈다.
“항만파업 선사들 정시운항률에 악영향”
글로벌 항만 파업에 따른 적체가 가중되면서 선사들은 대체 기항지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에버그린은 8월 말 펠리스토항에 기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처녀취항에 나선 에버그린의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선 2만4000TEU급 <에버앨럿>(Ever Alot)호는 항만 혼잡으로 스케줄 소화에 차질을 빚고 있다.
펠리스토의 항만 파업뿐만 아니라 함부르크항에서의 혼잡 등으로 유럽항로의 스케줄이 유동적이어서 정상적인 운항이 어렵다는 게 선사들의 전언이다.
머스크도 8월21일부터 8월29일까지 펠릭스토를 기항지에서 제외했다. AE6의 1만9200TEU급 < MSC스베바 >호는 르아브르, SLC 서비스의 8500TEU급 <코스코베트남>호는 앤트워프로 대체 기항하고, 3600TEU급 <빌니아머스크>호는 런던게이트에서 정박 중이다.
선사 관계자는 “이번에 기항할 예정이던 3척의 선박은 우회하기로 결정했다”며 “파업이 끝나면서 르아브르와 앤트워프로 향하는 화물을 펠릭스토로 재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업 이후 선사 운송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추가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체 경로인 내륙운송의 상황이 순탄한 것도 아니다. 라인강과 다뉴브강 등 유럽의 주요 수계가 역대급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영국으로 수입되는 상당량의 화물이 도로로 몰리며 적체가 발생하고 있다.
시인텔리전스 알란 머피 최고경영자(CEO)는 “항만 재개까지 피더서비스나 대체 운송을 위해 트럭에 화물이 실릴 것”이라면서도 “최근 주요 강의 낮은 수위로 화물이 도로로 옮겨지고 있지만 해상운송뿐만 아니라 대륙의 트럭 상황도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핼러윈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펠리스토항 파업이 영국 공급망을 큰 혼란을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국 해운물류컨설팅기관 MDS트랜스모덜은 “영국의 남부 항만인 사우샘프턴과 런던게이트웨이 또는 대륙 항만이 추가 화물을 처리할 여유 용량이 있다고 가정하면 선사가 선박을 우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로를 재조정한다고 해서 운송시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할 위험이 제거되지는 않으며, 이는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은 영국 경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영국 항만 파업으로 선박 대기 시간도 길어져 선사들의 정시 운항률에 찬물을 끼얹었다. 글로벌 데이터 제공업체 포카이츠(FourKites)에 따르면 펠릭스토의 정체는 최근 몇 달 동안 낮았지만 파업으로 체류 시간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포카이츠는 “펠릭스토의 4주 평균 체류 시간은 8.8일이다. 이는 연초 평균 11일에 비해 20% 낮은 수준이지만 파업으로 혼잡이 다시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항만 파업과 기상 악화, 그리고 수요 약세에 유럽항로 운임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으로 5000달러를 밑돌았다.
상하이해운거래소에 따르면 8월26일자 상하이발 북유럽행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4441달러를 기록, 13주 연속 하락했다. 올 들어 최고치인 7797달러에서 43% 떨어졌다. 지중해 운임도 최고치인 7522달러에서 5071달러로 33%나 떨어졌으며, 5000달러대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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