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담합을 이유로 동남아항로와 한일항로를 취항하는 선사에 각각 962억원과 80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가운데 선사들의 공동행위와 운임시장 안정화는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서 주목된다.
전준우 성결대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 정책세미나에서 2003년 4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중국을 기점으로 한 한국 일본 동남아 유럽 미국 등 5개항로 운임지수(CCFI)를 조사한 결과 중일항로와 한중항로의 운임 평균 변동성은 각각 0.0036 0.0021로, 중-유럽항로(0.0101)에 이어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 연구에 따르면 선사들의 공동행위는 공정위 주장과 달리 운임 상승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셈이다.
한중 간 뱃길은 1993년 5월 한중해운협정 체결을 계기로 열렸다. 한중 양국은 50대 50의 비율로 양측 선사가 컨테이너선을 넣는 방식으로 항로를 관리해왔지만 운임은 심한 널뛰기를 이어갔다.
중일항로는 중국선사가 90% 이상을 장악한 독점항로다. 2000년 항로 안정화를 목적으로 중일 컨테이너규칙에 관한 협정을 도입했지만 저가운임을 무기로 한 중국선사의 덤핑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일본선사들은 모두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후 중국정부는 자국 선사끼리 경쟁하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2006년 국제컨테이너선 운임 신고 실시법을 도입해 제로운임과 마이너스운임 같은 덤핑영업을 금지했다.
한중·중일항로 운임변동성 가장 커
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한종길 성결대 교수와 이번 연구를 같이한 전준우 교수는 “중일항로와 한중항로 운임은 2007년까지 중-유럽항로를 제치고 가장 높은 변동성을 보이다가 중국 정부가 개입해 과도한 덤핑운임을 금지한 시점부터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근해항로 운임은 선사들이 공동행위로 인상을 시도할 땐 꿈쩍도 않다가 정부당국이 시장에 적극 개입할 때 비로소 상향 안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일항로 운임 변동성은 2003년 4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0.0089로, 5개항로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중항로 변동성은 같은 기간 0.0027로, 2위에 랭크됐다.
반면 중국 정부가 시장 개입을 본격화한 2008년부터 11년간 두 항로의 운임 변동성은 각각 0.0015 0.0019를 기록하며 4위와 3위로 떨어졌다. 중-동남아항로는 2007년까지 4위였다가 2008년 이후 꼴찌로 하락했다.
전 교수는 “중국정부의 개입으로 안정화된 중일항로 운임이 한중항로와 중-동남아항로 운임에 영향을 미쳤다”며 “한-동남아 항로도 중국을 거치기 때문에 폐쇄적인 항로가 아니라 중일항로 중-동남아항로와 연동된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 전체로 시장을 보지 않고 한국과 동남아 간 단일노선으로 판단해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위 결정은 잘못됐다는 인식이다.
전 교수는 또 “고려해운 흥아해운 장금상선 남성해운 천경해운 등 근해항로 5개 선사를 대상으로 해상운임과 매출액 영업이익 유형자산회전율을 분석한 결과 상관관계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며 “공정위 주장과 달리 15년간 기본운임 인상, 최저운임 설정 공동행위는 선사들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했고 오히려 낮은 수준의 안정된 운임은 화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나치게 낮은 운임으로 대부분의 글로벌 원양선사들은 한중 간 화물 적취를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해운 ESG 걸음마단계…선사들 인식 부재
이날 해운분야 ESG(친환경·사회공헌·윤리경영)를 주제로 발표한 윤민현 해사포럼 회장은 ESG의 시급성을 국내 해운업계에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ESG는 서구에서 주도하고 있고 아시아에선 일본이 앞서 있다”며 “우리나라는 뒤처져 있는 편으로, 상장 해운사 8곳 중 4곳이 초기단계일 만큼 중소선사 대부분은 ESG를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정책적으로 항만 터미널, 항내, 연안항로로 ESG를 확산하고 원양항로에선 호주-중국 철광석 항로의 시험운항과 동남아항로의 실크얼라이언스에 국내 해운업계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며 “참여한 선사에겐 호주 리오틴토나 포테스큐 등의 대형 철광석 회사들이 선적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공언하는 등 보상이 뒤따른다”고 주장했다.
다만 “해운업계 탈탄소화 규제에 2400조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추산”이라며 “해운업계에만 전가시키면 기업들이 도산할 수 있기 때문에 화주 금융 보험 분야도 함께하자는 게 ESG에 관한 이니셔티브”라고 지적했다.
김근섭 해양수산개발원(KMI) 항만연구본부장은 “해운에선 ESG가 느리다고 하는데 항만은 느린 정도가 아니라 도입할 생각조차 없는 거 같다”며 “항만 분야 에너지소비량 같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투명하게 관리해서 통일된 성과지표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ESG를 착한 기업되기 같이 생각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ESG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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