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창을 이끌고 있는 김현 대표변호사는 해운사에 과징금을 물린 공정위 제재를 두고 국가 경제 질서 유지란 목적을 망각한 탁상 행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세창 창립 30주년을 맞아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운임 공동행위를 담합으로 매도해 징계하면 해외 선사보다 영세한 국내 선사들만 피해를 보고 나아가 우리 수출기업들의 운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안보 위기에 대응한 안보선대 확보에 매진하고 해수부 기능 강화에 집중해야 하는 한편 선사와 화주의 공정 거래 구조 정착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신정부에 주문했다.
그는 한국해운이 발전하려면 해사사건을 비롯해 일체의 국제상거래를 다루는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설립하고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과 일본·중국이 제휴해 아시아 대표 해상보험사로 성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Q. 법무법인 세창의 설립 30주년을 축하드린다. 소감은?
세창의 사명(使命)이 ‘적극적이며 신속 친절 정확한 서비스로 의뢰인을 행복하게 하는 미래의 동반자’다. 창립 10주년인 2002년에 구성원들이 치열하게 토론해 정했다. 사명을 사무실 입구에 걸어 놓고 늘 쳐다보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세창을 도와주신 많은 분들, 특히 해운산업에 종사하는 여러분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비롯해 해운·조선·항만업계가 많이 발전한 걸 느낀다. 세창도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KSS해운과 해양수산부다.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고문변호사를 맡아서 31년째 하고 있다. 의뢰인과 세창이 함께 성장한 것에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Q. 세창의 설립과 발전 과정,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미국 워싱턴대에서 해상법 박사학위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1991년 귀국했다. 법무법인 세종과 화우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92년 4월 해상 전문 세창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세창’은 세상을 번창하게 한다는 뜻이다. 의사셨던 할아버지께서 1930년대 함경북도 종성에서 운영하시던 세창의원의 상호를 물려받았다.
1994년 세창합동법률사무소로 상호를 바꾼 뒤 1996년 송해연 변호사, 1998년 이광후 변호사, 1999년 안영환 변호사가 합류했다. 1999년엔 현재의 법무법인 세창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후 2003년 토마스김 미국 펜실베니아주 변호사, 2005년에 주진태 변호사가 합류했고, 2008년에 법무부 법무심의관과 안산지청 차장검사를 역임한 형사 전문 조정환 변호사, 2009년 부장검사를 역임한 김동찬 변호사가 합류했다. 2004년 이광후 변호사와 안영환 변호사를 파트너로 승진시켜 파트너 3명이 세창 발전의 중심이 됐다.
최근엔 해상 전공 조희수 변호사와 김상일 변호사, 공정거래 전공 류기준 변호사, 보험 전공 이명현 변호사 등을 새로 영입해 총 15명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하헌우 변호사를 비롯해 우리 로펌에서 판사를 두 명 배출했다. 독립한 송해연 변호사는 제가 대한변협 회장일 때 공보이사로 같이 일하면서 큰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코리아쉬핑가제트지에 해사판례를 기고하고 있는 게 기쁜 일 중 하나다. 1988년부터 기고를 시작해 올해로 34년째를 맞았다.
Q. 30년의 기간 동안 세창을 국내 대표 해상 전문 로펌으로 성장시켰다. 해상법 분야의 매력은 뭐라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하고 동경해왔다. 그러다 1981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송상현 교수님의 해상법 강의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해상법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해상법의 매력은 국제적으로 통일성이 있다는 거다. 선박은 오대양을 항해하지 않나. 각국이 저마다 다른 해상법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 선주와 보험회사 무역회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야마다 국제조약을 만들어 대다수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최근엔 해운에도 선진적인 ESG 즉, 환경보호 사회공헌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추세다.
다만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계 국가들과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미법계 국가 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독일-일본법의 전통을 따라왔는데, 영미법이 세계의 대세가 되는 분위기에 대응해 영미법의 영향이 강한 국제조약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해상법이 세계적으로 통일되는 흐름을 보이기에 해상변호사는 영어에 능통해야 하고 전 세계 관련 변호사들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제가 세계변호사협회(IBA) 해상분과와 국제해법회(CMI) 총회에 자주 참석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국제 조류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다.
Q. 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항로 취항선사에 총 96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한일항로와 한중항로에서도 중대한 위반행위가 있었다는 심사보고서를 내놨다. 해상 전문 변호사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쟁점은 해운업계의 공동행위에 해운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수 있느냐다. 해운법상 공동행위 요건으로 운임 인상 보고와 화주와의 협의를 규정하고 있지만 본 건에서 문제가 된 최저운임 협의는 보고 의무가 없다는 게 문제다.
해수부는 유권해석을 통해 이 사건 공동행위에 해운법이 적용돼야 하고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도 공정위가 제재 처분을 강행했다. 해운업계가 해운법과 관계 행정청의 지도를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법률 미비로 공정거래법상 처벌을 받아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됐다.
이번 제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해운업계의 ‘운임담합행위’는 가격 경쟁이 과도해져 선사들이 다 함께 손해를 보는 걸 막기 위한 자체 규제 행위다. 궁극적으로 국내 해운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더구나 일본 3대 선사인 NYK MOL 케이라인이나 프랑스의 CMA CGM 같은 20곳의 해외선사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국내 선사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국내 해운업계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시장점유율이 계속 줄어들고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운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무한경쟁시장이다.
국내 선사들의 운임 규제를 담합으로 매도해 징계하면 과도한 경쟁 속에서 해외 선사보다 영세한 국내 선사들만 피해를 보고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높다. 국내 해운산업의 침체는 우리 수출기업들의 운임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악화를 야기할 거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은 국가의 경제 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을 망각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로 보인다. 해운업계는 앞으로 행정소송과 해운법 개정 추진의 방법으로 적극 다퉈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코로나19로 해운시황이 사상 초유의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향후 해운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오랜만에 해운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선사들의 체질 강화 노력, 한국해양진흥공사의 효율적인 뒷받침에 힘입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말까지는 호황이 계속될 걸로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다.
다만 미국 서안과 중국의 적체, 컨테이너 수급 불안으로 인한 물류대란이 운임 상승과 선사 수입 증대에 기여했기 때문에 내년 이후에도 이 같은 호황이 계속된다고 확신할 순 없다.
더구나 작년과 올해 신조 발주가 지나치게 많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 선박이 모두 완성되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현금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미래의 불황에 대비하는 적극적이면서도 차분하고 유연한 자세를 가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선박 신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를 제시해주면 좋겠다.
Q. 수에즈운하 좌초처럼 선박사고 규모가 커지고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업계가 최근의 이 같은 흐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고 보나?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갑판에 적재한 컨테이너를 묶고 무게 균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졌다. 또 선원 인건비를 절약하려고 선박의 자동화를 진행하면서 배에 타는 선원 수가 감소하고 선박 관리 품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수에즈운하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도 선원 과실에 따른 인재였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대형 선주배상책임보험사(P&I클럽)인 스탠더드와 노스오브잉글랜드가 합병을 논의하는 것도 최근의 선박과 클레임의 대형화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처하려면 평소 철저한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선사들이 공동으로 침몰 좌초 화재 폭발 해적 선원상해 등 자주 발생하는 사고 유형별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또 전문가 참여 하에 육상직원과 선원들에게 정기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시켜 유사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위기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중대재해처벌법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Q. 해양산업 발전을 위해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수부 폐지론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해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한진해운처럼 중요한 선사가 문을 닫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소한의 안보 선대를 반드시 확보해서 비상시에 중요한 전략물자를 수송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해수부도 선제적으로 비전을 갖고 업계 현안을 신속히 파악해 해결하고 관련 부처와 긴밀하게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2018년 출범 이래 해운업 발전에 기여를 많이 한 해양진흥공사를 더 강화해 해운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젊은 선박을 도입하고 유동성 확보를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Q. 한국 해운 발전을 위해 도입이 필요한 제도는?
해사법의 발전을 위해 독립적인 해사법원 신설이 절실하다. 해사법원 신설에 부정적이던 대법원도 최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입장을 바꿨다. 인천과 부산이 해사법원을 설치하려는 데에 열심인데 지역 간 유치 경쟁이 적지 않다.
사견으로 우리 경제와 해운사들의 대부분이 소재한 서울에 해사법원 본원을 두고 부산과 인천 광주에 지원을 두는 게 어떨까 한다.
아울러 해법학회와 해사법정중재활성화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뜻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이 힘을 합쳐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설치해 해사사건뿐 아니라 국제상사 사건을 국제중재와 같이 유연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해사사건과 국제상사 사건은 모두 국제적인 상거래이고 전문적이고 신속성을 요하기 때문에 판사를 공유해 하나의 법원 조직에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사건이 증가하면 복수의 법원을 설치하는 것이 가능해 굳이 지역이 유치 경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이미 공청회가 성황리에 개최됐고 관련 법안도 발의됐다. 해사국제상사법원에 발령 받은 법관은 최소 4년 정도 해사 사건과 국제거래 사건만 처리하게 해 전문성을 쌓았으면 좋겠다.
해사국제상사법원이 관할할 사건의 범위도 중요하다. 해상운송 화물에 대한 클레임, 선박 가압류, 경매, 해상보험금 분쟁 등 통상의 해운 사건 외에 해운과 관련된 일체의 행정소송 형사소송 항공분쟁 선박건조분쟁까지 포함하면 이상적이다.
그동안 KP&I(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가 크게 발전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도약할 때가 됐다. 일본이나 중국 P&I클럽과 제휴를 적극 모색해서 아시아지역을 지배하는 대형 P&I회사로 성장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Q. 해운업계와 당국에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3자 물류전문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포스코처럼 대형화주들이 자회사를 세워서 일감을 몰아주고 해운물류업계를 위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물류 전문화 추세에도 역행한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해운기업을 키워야 한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에 전념시키는 게 중요하다. 우리 해운업계가 장기 생존성을 높이려면 단기운송보다는 장기운송계약의 비중을 키우고 최소운송물량 보장 등으로 적자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해운사는 을이다 보니 말처럼 쉽지 않다. 2자물류기업과 경쟁하고 때로는 화물을 확보하려고 불리한 조항이 들어 있는 계약서를 화주와 체결하기도 한다. 정부가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정립하고 ‘기울어져 있지 않은 공정한 운동장’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한층 기울여야 한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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