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월1일부터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이행 계획을 도입한 가운데 국적선원을 대상으로 한 방역 대책은 그대로여서 반발을 사고 있다.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윤기장 부의장(동진상선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적선원 자가격리 면제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방역당국과 지방자치단체 간 적용 기준이 달라 제대로 된 격리 면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8월14일부터 국적선원의 사기를 진작하고자 컨테이너선 벌크선 탱크선 자동차선 등의 국적선박에 타고 있는 한국인 선원의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방역 대책을 시행 중이다. 국적선원은 외국항만 승하선과 선원교대·임시상륙 금지, 선내 방역수칙 준수 등을 조건으로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으면 항해 기간과 무관하게 격리를 면제받는다.
윤 위원장은 격리 면제 조건을 충족한 국적선이 국내에 들어와도 복수항구에 들를 경우 첫 번째 항구에서만 격리를 면제받고 이후 입항하는 항구에선 예전처럼 2주간 자가격리를 받아야 배에서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선박 검역과 무관치 않다. 당국은 선박이 2곳 이상의 국내 항구에 들를 경우 첫 번째 항구에서만 검역을 하고 두 번째 항구부터는 검역을 생략한다. 짧은 기간 동안 계속 검역을 받아야 하는 선박과 선원들의 애로를 해소하려는 취지에서 이같은 검역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검역 제도가 오히려 선원들의 격리 면제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방역당국은 국내 첫 번째 항구에서 검역을 받는 과정에서 선원들이 비록 내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외부인과 접촉한다는 이유를 들어 두 번째 항구부터는 자가격리를 해야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지금의 선원 격리 면제 제도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며 “두세 번째 항구에서도 PCR(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오면 국적선원들이 자가격리를 받지 않고 하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가격리 면제 대상에서 일반화물선은 빠져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열거된 것만 허용하는 일종의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으로 선원 격리 면제 제도가 운영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윤 위원장은 “일반화물선에 타고 있는 선원들은 격리 면제 조건을 지켜도 자가격리를 받아야 하선할 수 있다”며 “명확한 이유 없이 일반화물선은 격리면제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육상사업장은 소독하고 영업재개 vs 선박은 운항중단
윤 위원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육상과 해상 간 기준도 매우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육상에선 확진자가 발생했거나 다녀간 것으로 확인되면 사업장을 소독한 뒤 곧바로 업무를 재개하지만 선박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전 선원이 배에서 내린 뒤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선박은 운항을 중단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국인 육상 백신 접종자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하면 수동감시하고 자가격리가 면제되는데 선원은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와도 무조건 2주간 자가격리를 한다”며 방역당국과 해수부에 방역 대책을 공평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선원들은 국내 항만 간 이동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윤 위원장은 “며칠 전 목포 조선소에 갔다 온 선원들이 부산으로 돌아와 전원 2주간 격리를 했다”며 “격리도 하지 않고 코로나 검사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는 항공승무원과 비교해 선원들이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문제는 위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다. 윤 위원장은 선원이 사고를 당해 즉각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위중한 상황이 발생해도 PCR 검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현 선원 방역 대책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그는 “위급 상황은 아직 안 나왔지만 위험성이 계속 내포돼 있다”며 “요샌 코로나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선사들이 상륙도 안 시켜줘서 선원들은 제소자와 다를 바 없다”고 토로했다.
정용현 이사(동아탱커 노조위원장)는 외국에서 백신을 맞은 선원들이 국내에 입국하면 일단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방역당국은 지난달부터 해외에서 백신 접종을 마친 내국인은 격리면제서가 없어도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선원들은 아직 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정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선원들도 외국에서 백신을 맞으면 격리 면제 대상이 되지만 첫 입국에선 안 되고 두 번째 입국부터 된다”며 “미국은 본선에서도 백신을 맞을 수 있는데 이런 방법으로 백신을 맞고 2주가 지나 한국에 입항하면 자가격리를 면제받아야 하지만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현재 상황에 미뤄볼 때 선원을 위한 방역 지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선원도 일반 내국인과 동일하게 (방역지침을) 적용하든지 아니면 아예 따로 만들어서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한석 이사(흥아연합노조 위원장)는 “선박이 입항할 때 코로나 검사를 다 받았는데도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20일 뒤에 하선하자 자가격리를 2주 하라고 하더라”며 “국내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자가격리를 시킨다”고 말했다.
윤인규 수석부의장(전국선원선박관리노조 위원장)은 “(방역) 지침이 질병관리청과 해수부에서 나오는 게 다르다”며 “해수청 지침도 여수 부산 인천 다 제각각”이라고 지적했다.
김수헌 부의장(대한해운 연합노조위원장)은 선원들의 가족 방선(訪船) 제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가스공사나 포스코부두 등은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가족 방선을 막고 있다”며 “요양병원도 가족 면회가 안됐다가 상황에 맞게 바뀌었는데 선원 코로나 대책은 행정 편의주의로만 가고 전혀 변화가 없다”고 쓴소리했다.
정학희 천경해운 노조위원장은 “선원이 가장 바라는 게 치킨 먹는 거”라며 “전화 한 통이면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선원들은 배에 갇혀 꿈만 꾼다”고 현실을 전했다.
김두영 의장(SK해운 연합노조위원장)은 “11월부터 위드코로나로 접어들었지만 선원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방역 대책이나 격리 등은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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