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회사들은 왜 법적인 문제만 생기면 영국 변호사에게 연락을 하나요?”
필자가 2010년 여름에 승선하고 있던 선박은 당시 영국의 도버해협을 통과하여 리버풀(Liverpool)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도버해협에서 승선한 영국인 도선사는 당시 항해사로 근무하던 필자에게 자신의 친구가 변호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필자는 당시에는 변호사가 될 생각이 없었고 영국에서 해상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도선사가 자신의 친구인 영국 변호사가 한국 해운회사의 일을 도맡아 한다면서 한국에는 해상변호사가 없냐는 자극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해운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는 약간 자존심이 상해, 도선사에게 웃으면서 “내가 조만간 한국에서 변호사가 되어 그 친구 분 일을 뺏어야겠다.”라며 호기롭게 답변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필자는 그로부터 약 2년이 흘러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2학년 여름방학 때 영국 런던 소재의 유명 해상로펌에서 인턴생활을 하게 되었다.
위 로펌에서 필자에게 한국 해운회사 또는 한국 조선소가 당사자로 되어 있는 계약서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하곤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계약서상 준거법이 ‘영국법’이었고 관할은 ‘런던 해사중재(LMAA)’이었다. 영국인 도선사가 2년 전 도버해협에서 필자에게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 완전히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또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나 대법원 산하 연구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지난주 필자에게 연락이 와서 우리나라 해상변호사로서 법원을 이용하는 실무가의 입장에서 ‘해사법원 설립’과 관련한 전문가 면담을 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우리나라 해사법원 설립을 염원하는 일원으로 흔쾌히 요청에 응했고, 위와 같은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어 연구위원에게 해사법원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를 독자들께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가 경험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해운, 조선회사의 영국 등 외국법정에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막대한 법률비용이 해외로 유출되어 국고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에 해운, 조선 산업의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전문적이고 독립된 해사법원이 설립된다면 외국법정에의 의존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현재 해사사건은 전국 각지의 민사법원에 제기되어 처리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해상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는 법관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 있다. 이로 인해 법원 심리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건처리가 지연되어 ‘신속성’이라는 소송이념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해사사건 처리의 전문성 강화 및 신속성 제고를 위해 전문성을 갖춘 독립된 해사법원 신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사사건 대부분이 외국에서 처리되는데 우리나라에 해사법원을 굳이 설립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해사사건의 경우 당 국가에 전문법원이 있어야만 사건이 찾아올 수 있는 구조이다.
전문법원이 없으면 당사자들이 관할 합의를 통해 전문법원이 존재하는 다른 국가로 사건을 가져갈 수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해사법원의 대외적 신뢰도가 높아지면 외국 법인이 일방 당사자인 경우 및 제3국간의 사건까지도 처리하여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또한, 해사법원을 굳이 설립해야 할 정도로 해사사건 수가 많은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 반론의 논거는 최근 설치된 서울고등법원 해사전담재판부가 처리하는 사건 수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①전국 각지의 민사법원에서 처리되는 해사사건 수가 상당하다는 점과 ②법원의 사건 분류가 접수계 직원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분류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전문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국제거래 전담재판부 사건과의 구별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재 해사사건임에도 서울고등법원의 해사전담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로 배당이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는 점, ③향후 계약 시 관할 합의를 통하여 외국법정에서 처리되는 사건들을 대한민국 해사법원에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등을 간과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해사법원이 생기면 사건 유치를 통해 해사사건 수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우 해사법원 설치 후 30년 동안 해사사건 수가 매년 10% 증가했고, 우리나라 특허법원의 경우 개원 전 특허청에서 이관 받은 사건 수는 434건인 반면, 개원 후 새로 접수한 사건 수는 1년 동안 851건에 달한다고 한다.
▲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의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경험을 쌓았다. 하선한 이후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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