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시장에 변화를 몰고 올 금융회계 제도가 2019년 본격 가동된다. 제도 도입으로 저시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해운업계에 대한 금융 심사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해운금융의 문제를 바로잡고 새로운 형태의 금융지원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국내 해운금융의 한계 및 발전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해운금융 필요성과 국내 선박금융의 문제점 등을 분석했다.
운용리스 자산부채로 인식, 어려움 가중
국제은행자본규제 기준인 바젤 III와 국제회계기준인 ‘IFRS16’이 2019년부터 시행되면 국내 해운금융시장이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바젤 Ⅲ는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내놓은 새로운 국제은행 자본규제 기준이다. BIS 기준 자본 규제를 세분화하고 항목별 기준치를 상향조정해 자본의 질과 투명성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완충자본, 차입투자(레버리지) 규제를 신설한 것이 특징이다.
은행들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새로 마련된 자본건전성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바젤Ⅲ 규제에 따르면 2019년까지 기본 자본은 6% 이상, 보통주자본비율은 4.5%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국제은행자본규제로 국내 해운업계의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보고서는 은행들은 바젤 III 도입으로 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위험도가 높은 투자를 축소하고 안전자산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돼 신용도가 높지 않은 업종이나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내 해운업계의 자금조달 어려움이 커지고 금융부담 부담이 늘어나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19년부터 적용되는 IFRS16 리스도 해운금융의 심사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 기업들의 목을 옥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운용리스 이용 비중이 높은 해운업의 경우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등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기준에서 운용리스는 재무상태표에 표시되지 않는다. 반면 새 기준에서는 운용리스와 금융리스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리스를 자산부채로 인식한다. 운용리스를 감춰놓는 게 불가능해 기업들의 투명한 회계 관행이 요구된다. 따라서 운용리스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라면 IFRS16 적용으로 예전과 다른 값이 입력된 재무제표가 나올 수 있다. 해운업뿐만 아니라 항공운송업 소매업 등에 대한 영향이 커지며 부채비율이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해운업의 경우 정기선사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KMI는 “IFRS16 리스 적용으로 모든 리스 관련 자산과 그에 상응하는 부채가 재무상태표에 반영된다”며 “부채비율을 낮출 목적으로 원가보전형 장기용선을 활용해 온 컨테이너 선사의 경우 부채비율 상승으로 신용도가 하락하고 자금조달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두 제도 시행으로 해운금융시장 위축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여 새로운 형태의 금융수단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종래에 이용하지 않았거나 이용률이 낮았던 금융수단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금융지원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간접적 금융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기금 형태의 금융지원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KMI에 따르면 중국은 기금을 통한 금융지원을 활성화하고 있다. 톈진의 선박산업투자기금, 상하이의 항운산업기금, 푸젠성 등 정부가 해운사 화주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해 선박금융에 활용하는 지역기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주로 신조선 세일즈앤드리스백(Sales & Lease-back·매각 후 재용선) 형태의 중고선 매입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역시 중소조선업 수출 촉진을 도모하기 위해 2012년 JSIF(선박투자촉진회사)를 설립했다.
금융기관 조선소 종합상사 등이 주주인 JSIF는 SPC(특수목적법인) 설립과 금융 조성을 주관하며 약 12억달러 규모의 금융지원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두 나라는 소유와 운영을 분리하는 형태의 금융지원과 제도권 해운금융을 보완하는 기금 형태의 금융지원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적선사만 배불린 국내 해운금융
새로운 금융회계제도 시행으로 변화를 맞고 있는 국내 해운금융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드러났다. 시중은행 선박금융 비중이 현저히 낮다는 점과 외국선사들에게 집중된 정책금융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특히 국내 산업발전과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정책금융기관들이 굵직굵직한 금융지원을 외국계 선사에 진행한 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 해운시장은 정책금융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해운경기 불황 이후 시중은행이 선박금융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은행권의 선박금융 규모는 총 4조790억원으로 집계됐다. ECA(공적수출금융기관)가 3조7100억원(91%) 시중은행이 3690억원(9%)의 규모를 보이고 있다. 2007년 해운 호황기 당시 시중은행이 3조7129억원(76.5%) 공적수출금융기관이 1조1390억원(23.5%)을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8년 해운 불황이후 시중은행 비중은 크게 줄며 현재 3690억원(9%)에 불과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주요 은행들의 총자산 대비 선박금융 비중은 노르웨이 DNB은행은 8.76%(선박금융 283억불) 스웨덴 노르디아은행 7.93%(183억불) 그리스 피레에프스은행 5.01%(39억불)를 차지했다. 반면 국내 시중은행 총자산 대비 선박금융은 0.2%에 불과했다. 해운업 여신 규모 역시 2011년 6조4000억원에서 2014년 5조5000억원으로 감소했다. KMI는 여신 감소 원인에 대해 “해운사의 상환 미이행 위험 증가로 은행의 위험업종 여신 노출 감소 노력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외국계기업에 집중된 대출 지원도 국내 해운금융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목됐다. 2009년 이후 5년간 외국선사들은 우리나라 해운금융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2014년 한국수출입은행은 외국적선사에 17억1000만달러의 선박금융을 제공했지만, 국내 해운업에는 3억2900만달러를 지원하는데 그쳤다.
우리나라 은행의 해운금융 조직구성과 인력수준은 해외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다. 2015년 8월 말 기준 국내 16개 시중은행 중 해운금융 담당조직이 존재하는 은행은 12개에 그쳤다. 특히 담당 인력이 10명을 넘는 은행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노르웨이 DNB은행의 인력은 3부 9팀에 총 90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KMI는 “경기 변동성이 강한 사업이기 때문에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해운과 금융을 이해할 수 있는 융복합 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해양금융분야와 인력이 선순환 성장하는 구조를 확립하고 국내외 유관기관 간 특화된 산학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선박펀드 운용대상 부동산 인프라 등 다양화해야”
KMI는 국내 선박금융이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해운여신 총량제 도입을 주장했다. KMI는 총량제를 통해 금융 규모를 조정하기보다는 해운여신 총량지표를 개발해 해운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의사결정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밝혔다.
또한 선박공급회사 활성화로 조선소들이 공동출자해 선박공급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선박공급회사가 선주의 역할뿐만 아니라 선박관리업무까지 수행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방안으로는 정부가 선박공급회사를 공사 형태로 설립하는 것이다. 공사 형태의 선박공급회사는 조성된 자금을 활용해 신조선 발주, 중고선 매입 등의 형태로 선박을 확보하고 이를 국내 선사에 대선하는 선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선박펀드를 확대해 운용대상을 다양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KMI는 선박펀드 운용대상을 현재 선박 이외에 유가증권, 부동산, 인프라 등으로 다양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투자범위를 확대하고 펀드 규모를 선박 가격의 1.5배 정도로 늘려 50%를 선박 이외의 투자대상에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선박 펀드의 합성을 허용해 유동성을 높이는 동시에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자산운용사의 선박펀드 진출 확대를 위해 현행 선박투자회사법 제24조 1항에 유가증권, 부동산, 인프라 등의 취득과 투자를 포함시키고 복수의 선박 펀드를 결합해 새로운 펀드를 조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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