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보조금을 폐지해야 됩니다.” 최근 수도권 화물터미널에서 만난 다수의 화물자동차 운전기사가 건넨 말이다. 의외였다. ‘유가보조금은 화물차 기사들에게 좋은 제도 아니었나?’
“왜 유가보조금을 폐지해야 합니까?” 그들은 형편없는 운임이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기사는 욕설도 날렸다. ‘운임’으로 인한 억울함이 상당한 듯 보였다. 운송사는 화물기사가 유가보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운임을 계속 깎는다고 했다. 화물차 기사 A씨는 “서울에서 지방까지 장거리 왕복 운행을 하는데,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면 오히려 택시보다 운임이 낮다”며 “유가보조금을 폐지하면 오히려 운임이 오르지 않겠느냐, 지금 제도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건 대기업과 운송기업이다”고 비판했다.
이참에 표준운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들은 요즘 안전이 화두인데 만약 표준운임제가 도입되면,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당연히 화물차 사고도 감소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면 자신들도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렇지만 시장이 쉽게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C씨는 “(고위관료 중) 화물운송시장의 구조를 속속들이 잘 아는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이 쉽게 바뀌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기사들을) 대변해줄 마땅한 조직도 없고, 이 분야를 잘 아는 국회의원이나 변호사도 드물다”고 한탄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가슴에 묻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올해로 46년째 화물차 기사로 일한다는 B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운수업을 하겠다고 찾아오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한다. 한때 운수업이 호황을 누린 괜찮은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으려는 화물차 기사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물차 기사들은 우리나라 화물운송시장에서 가장 하부에 위치한다. ‘갑을병정’으로 치면 ‘정’이다. 화주나 운송사가 과적을 강요하면 어쩔 수 없이 물건을 싣는 게 일상이다. 거절했다간 계약이 종료된다. 그들은 ‘계약종료’를 ‘사형선고’에 비유한다. 혹시라도 과적에 적발되면 화주나 운송사는 책임을 회피한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화물차 기사는 자차보험에 가입하는 요건도 까다롭다. 만에 하나 본인 과실로 사고가 발생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간혹 완전 정차상태에서 일반차량과 접촉사고가 발생하면 대형차라는 이유로 ‘사각지대’를 운운하면서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46년을 운수업에 종사한 B씨는 취재 말미에 동료 기사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말자”는 말을 전했다. 위축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다는 것. 기사들이 각자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저항해야 열악한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조언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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