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국법준거약관의 효력과 적용범위
가. 준거법의 결정원칙과 영국법준거약관
우리나라 국제사법 제25조 1항은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 다만, 묵시적인 선택은 계약내용 그 밖에 모든 사정으로부터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고 규정함으로서 준거법의 선택에 있어서 당사자 자치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국제계약은 준거법조항을 두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원칙적으로 이에 따라 준거법이 결정될 것이나, 이와 관련해 준거법이 외국법으로 지정된 경우에도 어느 범위에서 그 효력을 인정하고 외국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약관의 효력과 적용범위의 문제, 어떻게 외국법을 적용하고 증명할 것인가 하는 외국법의 적용 및 증명문제와 외국법의 적용이 국내법질서에 반하는 경우 그 적용을 배제할 것인가 하는 공서의 원칙이 아울러 검토돼야 한다.
따라서, 보험계약에 그 준거법을 영국의 법률과 관행을 따르도록 하는(subject to English law and practice) 영국법준거약관이 있는 경우에도 그 효력 및 적용범위가 문제된다.
나. 영국법준거약관의 효력
우리 대법원은 1991년 5월14일 선고 90다카25314판결에서 “보험증권 아래에서 야기되는 일체의 책임문제는 외국의 법률 및 관습에 의해야 한다는 외국법준거약관은 동 약관에 의해 외국법이 적용되는 결과 우리 상법 보험편의 통칙의 규정보다 보험계약자에게 불리하게 된다고 해 상법 제663조(보험계약자 등의 불이익변경금지)에 따라 곧 무효로 되는 것이 아니고 동 약관이 보험자의 면책을 기도해 본래 적용돼야 할 공서법의 적용을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해 보험계약자에게 불리하게 된다고 판단되는 것에 한해 무효로 된다고 할 것인데, 해상보험증권 아래에서 야기되는 일체의 책임문제는 영국의 법률 및 관습에 의해야 한다는 영국법준거약관은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돼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간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유효하다”고 판시한 이래 1996년 3월8일 선고 95다28779판결 등에서 여러 차례 확인하고 있어 우리법상 영국법준거약관의 유효성은 이미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다. 영국법준거약관의 법적 성질과 적용범위
영국법준거약관의 법적 성질이 저촉법적 지정인가(저촉법적 지정설), 실질법적 지정인가(실질법적 지정설),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도 전부지정으로 보아야 하는가, 부분지정으로 보아야 하는가의 적용범위의 문제가 있다.
학설상 계약의 당사자가 그 계약의 준거법을 선택하는 것을 저촉법적 지정이라 하고, 당사자가 선택한 준거법(주관적 준거법) 또는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 준거법 결정원칙에 따라 결정된 준거법(객관적 준거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그 준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당사자들이 준거법 소속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법규를 적용하기로 약정하는 것을 실질법적 지정이라고 한다. 또한 영국법준거약관을 저촉법적 지정으로 파악하는 경우에도 이를 보험계약전체에 대한 지정으로 보는 견해(전부지정설)와 보험계약에 따른 책임의 문제에 한정된 준거법의 부분지정으로 보는 견해(부분지정설)가 나눠져 있다. 저촉법적 지정과 실질법적 지정의 구별은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는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준거법으로 될 객관적 준거법의 강행법규의 적용이 배제되는데 반해,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는 객관적 준거법의 강행법규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위에서 본 대법원 1991년 5월14일 선고 90다카25314 판결은 “All questions of liability arising under this policy are to be governed by the laws and customs of England”라는 내용의 외국법준거약관에 대해 동 약관에 의해 외국법이 적용된다고 판시해 약관의 문언이 책임문제에 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 전체에 대해 영국법이 적용된다는 소위 전부지정설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산고등법원 1997년 11월7일 선고 95나12392판결은 “this insurance is understood and agreed to be subject to english law and practice only as to liability for and settlement of any and all claims”라는 내용의 준거법약관에 대해 해상적하보험의 보험증권에 영국준거법조항이 규정돼 있으므로 해상적하보험에 있어서 적용되는 법률은 우리 상법이 아닌 영국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이라 할 것이나, 이 조항은 보험자의 책임문제에 관해만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의해 결정하고 보험계약자체의 성립 및 효력 등의 문제에 대해는 영국의 법과 관습을 적용할 수 없고 우리나라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해 오히려 부분지정설의 입장이나 실질법적 지정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준거법약관의 법적 성질과 적용범위는 당해 준거법약관의 문언과 당사자의 의사해석에 따라 달라질 것이나, 구체적 사안에서 그 구별기준이 명백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통상 사용되는 준거약관은 이건 보험계약의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한다고 규정하는 대신 이 보험증권상 발생하는 모든 책임문제는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의해 규율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약관 문언에 따라 보험계약전체가 아니라 보험자의 책임문제만을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한 것으로 해석해 보험자의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닌 사항에 대해는 우리나라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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