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3 09:36

여울목/ ‘조양상선 판박이’ 정부 말듣다 벼랑끝 몰린 양대해운사

국내 양대 해운사가 나란히 채권단 관리를 신청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현대상선이 지난 3월29일부로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절차(자율협약)에 들어갔으며 한 달 뒤인 4월25일 한진해운도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국내 해운위기 사태는 2008년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장기불황이 근본 원인이다. 용선료가 고점이던 호황기에 배를 빌린 책임을 경영진에 묻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헤아렸다고 보기 어렵다. 글로벌선사들의 선박 초대형화 전략에 대응하고 전략적 제휴그룹(얼라이언스) 내에서 일정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선 초대형선 투자가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해운전문가들은 오히려 해운시장의 중요성과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다팔기식’ 구조조정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양대 해운사 경영위기 사태는 과거 막대한 규모의 자산을 처분하고도 정부의 유동성 지원을 받지 못해 파산의 길을 걸은 조양상선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국내 3대 원양선사 중 하나였던 조양상선은 지난 IMF 시절 경영난에 빠지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997년부터 3년간 자사선 26척 중 18척을 매각했으며 금융계열사인 제일생명을 처분했다. 정부의 ‘기업부채율 200% 달성’ 지침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조양상선은 총자산의 70% 처분과 사주의 사재 출연 등을 통해 조달한 7500억원 중 6500억원을 부채상환에 썼다. 그 결과 이 선사는 한 때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산과 캐시카우를 내다파는 구조조정의 종착지는 회생이 아닌 파산이었다. 조양상선은 2001년 5월 유동성난을 이기지 못하고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3개월 뒤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과 함께 40년 해운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13년 말부터 두 선사는 벌크선 및 LNG 전용선사업, 항만터미널사업, 컨테이너장비, 금융계열사 등을 매각하는 내용의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자구노력을 통해 각각 2조원 이상의 현금을 조성했으며 이 자금을 대부분 회사채 차환과 이자 갚는 데 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핵심자산을 대거 처분함으로써 두 선사는 급속도로 경영파탄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단행한 구조조정이 되레 두 선사를 수렁으로 내몬 꼴이 됐다.

정부는 이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도 자본집약적 산업이란 해운의 특성을 무시한 채 여전히 초대형선 건조 자금 지원의 선결조건으로 ‘부채비율 400% 달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되뇌고 있다.

두 선사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게 될 경우 그 후유증은 과거 해운산업합리화 시절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때 세계 5위까지 올라섰던 우리나라 해운력은 회생불능 상태로 곤두박질칠 게 뻔하며 동북아 환적허브를 지향하고 있는 부산항도 동반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입물류의 99.7%를 도맡고 있는 해운시장의 몰락은 국내 무역업계에도 심각한 내상을 입힐 것으로 관측된다. 두 선사가 원양항로에서 철수해 아시아역내항로에 집중하게 될 경우 국내 연근해선사들까지 연쇄적인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자율협약 신청으로 두 선사는 산업은행 관리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해운업계 안팎에선 두 선사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작금의 경영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편으로 채 20년도 안 돼 해운시장에서 정부정책 실패가 똑같이 되풀이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금융당국자들의 해운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의 큰 벽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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