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차 구입하셨나봐요? 연비는 어떤가요?” 신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디자인과 가격을 묻기 전에 우선순위로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에어콘이나 냉장고, TV 등 가정에서 사용되는 제품도 마찬가지다. ‘에너지효율 등급’이 높은 제품은 구매자들의 눈길을 끈다. 1등급은 5등급에 비해 무려 40%라는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어 구매자들의 우선구매 대상이다.
선박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친환경 고효율을 앞세운 에코십 즉 친환경 선박은 단연 인기다. 선주들 입장에서 위시리스트(희망사항)에 올려두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핫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에코십이다. 기존 선박보다 연료사용량을 20% 줄이고 탄소배출을 30% 이상 감축할 수 있기에 선주들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에코십의 중요성을 발표하는 세미나가 최근 들어 자주 열리는 것도 이같은 인기를 증명한다. 발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사들의 연료절감의 이유를 설명하며 친환경 설계의 장점을 청중들에게 설파하고 있다.
선주들의 에코십 사랑은 국내 조선소로 이어지고 있다. 그중 세계 1위 해운선사인 머스크라인의 ‘통 큰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향후 5년간 150억달러를 에코십 건조와 컨테이너 장비 제작 등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며 선대 규모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의 마지막 선박을 최근 성공리에 인도했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 머스크라인은 2조원 규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계약을 체결하며 거래가 없었던 현대중공업과 7년 만에 물꼬를 텄다. 비단 머스크라인뿐만 아니라 MOL, 에버그린, MSC 등 해외 유수의 선사들도 앞다퉈 1만8000급~2만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고 있다. 선사들은 대형화를 통해서 단위당 원가를 절감하는 한편 연료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연료비를 절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선주들의 잇따른 에코십 투자는 국내 조선사들에게 ‘가뭄의 단비’다. 해양플랜트에서 기대했던 재미를 보지 못한 국내 조선사들은 올 들어 컨테너선과 유조선으로 일감을 채우며 수주가뭄을 해갈하고 있다. 올해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반토막 수준이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수준의 수주량을 유지하며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선사들의 불붙은 ‘연비 레이스’는 계속될 전망이며 국제해사기구(IMO)의 온실가스배출 규제도 20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이기에 에코십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조선소는 연이은 수주에도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대형업체뿐만 아니라 중소형 조선사들의 영업실적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기 위해서라도 대형선 및 에코십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할때다.
또한 중국 조선소들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놓이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중소조선사들의 회복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한다. 국내 대형조선사들에 비해 자생적인 회복이 불가능하기에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꼭 병행돼야 할 것이다.
에코십 수요 증가는 세계 조선업의 새로운 기회가 되는 동시에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는 것을 뜻한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찾아온 기회를 잡느냐 못잡느냐의 결과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내 조선업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에코십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조선업계와 정부의 발빠른 대응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