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와 웨스턴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고, 명작 원작만을 골라 영화화 하기를 좋아했던 거장 ‘리처드 브룩스(Richard Brooks)’ 감독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Bratya Karamazovy)’이나 ‘엘머 갠트리(Elmer Gantry)’ 같이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희곡의 대가로 무대와 영화로 널리 알려진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장미의 문신(The Rose Tatoo),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로마의 애수(The Roman Spring of Mrs. Stone)의 원작자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1911~1983)’ 의 풀리처상과 뉴욕 평가상에 빛나는 또 하나의 원제 극본을 영상화 한 고전 걸작이 바로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A Cat on a Hot Tin Roof)’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중반이 넘을 때까지 남자 주인공 ‘브릭(Brick:폴 뉴먼/Paul Newman)’과 여 주인공 ‘매기(Maggie: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란 아름답기 그지없는 두 젊은 부부와 자수성가한 부호 아버지 ‘빅 대디(Big Daddy:벌 아이브스/Burl Ives)’는 도대체 왜 이리 뒤틀어져, 꼬인 삶을 이어가는지 스토리를 알 길이 없고 튀격태격 열띈 대화의 연속으로 지루함을 느길 법도 하고 친구, ‘스키퍼(Skipper)는 이름만 거론될뿐 얼굴 없는 배역이고 취해서 밤중에 허들을 마구 뛰어남다가 다리를 다쳐 시종 목발을 짚은 채 연기를 하는 등 그야말로 미국판 “가족끼리 왜 이래?”의 전형이라 해도 좋을거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1950년대 ‘미국개발’과 ‘카튼필드(Cotton Field)’의 상징, 남부 미시시피주 대농장의 두째 아들 브릭은 한때 잘 나가던 미식축구 스타였지만 지금은 술로 세월을 보내는 자칭 주정뱅이, 알콜 중독의 패배자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뛰어난 미모의 아내 매기와 함께 위독하다는 연락과 함께 아버지의 65세 생일 잔치에 와서도 방에만 틀어 박혀 손에서 술잔을 떼지를 못하고 연거푸 술병을 찾는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는 이름난 변호사로 일하는 형님 ‘구퍼(Gooper)’와 형수 ‘메이(Mae)’ 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 내외였지만 부부관계가 동침을 않을 정도로 소원했기 때문에 애기를 갖지 못했다.
뜨내기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갖은 고생 끝에 광활한 미시시피의 2만8천 에이커의 대 목화농장을 일궈낸 부호로, 지역에서 으뜸가는 유지가 된 아버지는 뜻밖에 말기 암 선고를 받지만 가족들의 속셈이 달라 진단결과 별 이상이 없다는 쪽으로 쉬쉬하고 덮는다. 다섯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큰 아들 구퍼 변호사 내외는 상속을 노리고 할아버지 앞에서 손주들의 재롱을 겸해 요란한 생일파티를 열어주며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의 건강보다 상속받을 재산에 눈독을 들이며 아버지 임종시에 대비, 재산 분할까지 미리 작성해 둔 상태다.
형 구퍼(Gooper)는 아버지의 희망대로 열심히 살았고 변호사로 성공했으며 농장 일까지 도왔기 때문에 재산 상속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늘 둘째를 편애하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혹시 재산을 상속받지 못할까 두려워움을 갖고 치밀하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술로 제앞도 못가리는 브릭에게 재산을 줘선 절대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겉으론 전형적인 남성다움을 드러내지만 한편으론 동성애적 절친 친구 스키퍼(Skipper)에 대한 억압된 성적욕망과 아내 매기에 대한 애정 사이의 갈등으로 괴로워 하는 브릭. 작품 속의 명문장, “스키퍼, 내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말아요. 아니면 브릭이 그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그에게 말해요. 둘 중 하나를 택하세요”에서 보듯 미모를 밑천 삼아 부잣집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을 했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당할 수 있다는 각오와 함께 브릭과 친구 스키퍼와의 동성애적 우정을 질투는 하지만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 매기. 둘째 아들 내외의 사이가 왜 좋지 않으냐고 따지고 드는 시아버지 앞에서 매기는 스키퍼와 하룻밤을 보낸 애기를 털어 놓는다. 그의 죽음에 대한 고백을 받기 위해 매기를 부른 브릭은 그녀로부터 스키퍼의 유혹을 받아 들이려다 끝내는 거부했다는 대답을 듣는다. 퇴역후 풋볼 관련 일을 함께 해온 남편 브릭이 다친 어느 날 매기는 우연찮게 스키퍼와 호텔에서 만나 한방에 있게 된다.
그날 밤 스키퍼는 매기와의 성관계를 시도함으로써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입증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것.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깨닫게 된 스키퍼는 전화를 걸어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고 분노한 브릭이 그것을 거부하고 전화를 끊자 이로 인해 브릭이 자기를 버릴까봐 결국 비관한 스키퍼는 호텔에서 떨어져 투신자살을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생일 잔치 도중 브릭 부자는 지하실 골동품 창고에서 격렬하게 다투고 골동품들을 마구 부수며 아버지에 대해 분노를 터뜨린다. 이런 비싼 물건들 보다 왜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며 어머니, 빅 마마(Big Mama/주디스 엔더슨)나 농장 일꾼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죽음에 임박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버지 역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각오한다.
부자지간에 저택 지하실서 모처럼 깊고 진지하게 벌어지는 대화가 백미로 인상적이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이 가방 하나만을 물려받았을 뿐”이라는 아버지에게 “가방 하나 뿐일까요, 사랑을 물려 주셨죠”로 반격하는 아들. 재산만 노리는 큰 아들과 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둘째 아들, 그리고 부자와 형제간 갈등의 일대 격전장이 높은 옥타브로 장시간 전개된다.
“나는 이제 죽을 용기가 있다. 너는 살 용기가 있느냐?” 부자는 서로 화해의 포옹을 하고 유산 상속을 둘러싼 속물적 토론의 격전장이 연출된다. 다섯 아이를 낳은 동서가 우선권을 내세우며 기선을 잡자 매기 역시 재산권 행사를 적극 요구하며 자기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폭탄 선언을 한다. 형님 내외가 거짓이라고 반박하자 남편 브릭은 아내의 말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진실이라고 그녀의 말을 공개적으로 인정해 준다. 서로를 용서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화해의 키스를 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내 아내가 나의 친구와 하룻밤을 잤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란 의구와 여운을 남긴채. 이 작품에서 접하는 대사의 묘미는 필자 역시 모두가 그러듯 우리나라 인기 드라마 작가 김수현(金秀賢)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버지와 아들, 아내와 남편이 주고 받는 대사들은 주옥 같아서 ‘위선, 거짓’과 ‘진실, 사랑’은 서로 상반된 면이 있지만 동질적인 면도 있어 인간사회의 행위들을 펼쳐 나가며 ‘갈등’으로 시작해서 ‘화해’로 끝난다는 교훈도 준다. 여느 한국사회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갈등과 알륵, 재산다툼의 실상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보였던 브룩스 감독은 좌절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의 내면을 여기서도 적나라하게 여과없이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기역에는 리즈 외에 라나 터너와 그레이스 켈리가 거론되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다. 폴 뉴만의 포스넘치는 섬세한 표정연기와 함께 죽음을 앞둔 부자 노인의 마지막 생일파티장을 중심으로 하루 사이에 일어나고 벌어지는 한정된 시공간에서의 뛰어난 대사와 심도있는 주제가 크게 돋보였던 영화로서의 작품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조하고 불안하며 안타까운 긴장 속에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숨막히는 나날을 살아가는 매기에게 “뜨거우면 그냥 뛰어 내려라”고 비아냥대는 브릭의 독설처럼 인간의 삶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잠시라도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까치발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고양이와 같다는 매기의 입장을
주제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가진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며 가식 덩어리의 가면을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는 교훈적 암시에 필자가 받은 공감은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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