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농협중앙회 최원병 회장은 지난달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토요일 일요일 없이 상시로 운영하는 택배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택배업 진출 의사를 분명히 했다. 우체국택배의 토요일 업무 중단이 농협의 택배업 진출 배경이다.
농협은 기존 택배업체를 인수할지 새로운 조직을 구성할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택배기업 인수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동부택배와 KG옐로우캡 인수·합병(M&A)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농협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내부 조직을 통해 택배사업에 진출할 경우 물류자회사인 농협물류가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농협물류는 지난해 전국 권역별 물류센터 건설, 농산물 유통구조 간소화 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택배업 진출을 검토한 바 있다. 올해 초엔 외부에 의뢰해 진행한 택배업 진출에 대한 사업성 분석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농협이 택배업 진출을 놓고 신바람을 내고 있지만 기존 택배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과거 우체국택배 때처럼 시장과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가 택배업에 진출한 것은 지난 2000년. 우체국택배 출현과 함께 택배시장은 단가경쟁으로 내몰렸다. 지난해 기준 평균 택배단가는 2500원 선이 붕괴됐다. 단가하락은 기업들의 수익 악화뿐 아니라 배송기사의 생계악화, 취업기피 등을 유발하고 택배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기업들의 자정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한번 떨어진 택배단가는 좀처럼 오를 생각을 안 하는 모습이다. 택배시장이 이전투구의 격전지가 되면서 기업들은 M&A 시장의 매물 명단에 오르내렸다. 세덱스 삼성HTH택배 동부택배 KGB택배 옐로우캡 로젠택배 등 제법 규모가 큰 업체들마저 주인을 갈아타거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일부 기업은 M&A 시장의 단골 매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우체국택배와 같은 공기업은 화물운수사업법(화운법)의 울타리 밖에서 택배사업을 한다는 점도 큰 문제다. 민간 택배기업들은 화운법에 따라 노란색 사업용 번호판을 반드시 발급받아 택배사업을 벌여야 한다. 이를 어기고 자가용 차량을 이용할 경우 2년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반면 우체국 택배는 ‘우정사업운영에 관한 특례법’으로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한 유상운송이 가능하다. 화물차 허가제와 무관하게 택배차량을 늘리고 줄여가면서 사업을 하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농협도 마찬가지다.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우체국택배처럼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업을 벌이거나 세제 감면이나 보조금 지원 등의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단위농협을 통한 물량집화는 현 정부가 타파하고자 노력했던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와 다를 게 없다는 점도 민간택배사들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농협의 택배업 진출은 출발부터가 특혜로 점철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농협이 택배사업 진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기준 우체국의 농수축산물 배송은 국내 전체 택배물동량의 2.61% 정도를 차지했으며 이 중 토요일 물량은 전체 물량의 0.0057%에 불과했다. ‘농민을 위해서’라는 농협의 택배업 진출 이유가 군색한 변명임을 엿볼 수 있다. 농협이 저단가로 택배사업에 뛰어들 경우 농민들을 위한 신선농산물 택배서비스는 힘들다는 게 물류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소기의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시장만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택배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기업 인수나 설비 투자 등에 수천억원의 초기 비용이 들어간다. 막대한 국민 혈세를 동원해 물류생태계를 교란하고 시장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공기업들의 행태에 정부가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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