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필가 이경순 |
오늘은 90회 어린이날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되고나서는 매년 어린이날이면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예찬>을 떠올리곤 한다. 내 아들 딸을 기를 때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어린이날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런 내 자식만을 챙길 생각뿐이었다.
이<어린이 예찬>은 어린이를 깊이 사랑하고, 늘 곁에 두고, 그 자는 얼굴에 도취해서 들여다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정녕 쓸 수 없는 글이다. 어린이의 잠든 얼굴에 깃든 고요와 평화를 예찬하고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기쁨을 노래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어린이의 능력을, 그 기쁨을 꽃피워 주려는 생각을 피력한 글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의 입장에서 나온 예찬이다. 아니 어쩌면 어린이의 아비를 길러낸 할아버지의 시각에서 쓴 글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이 글을 매년 되새기면서도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오늘 신문에서 방정환 선생님이 32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는 임종을 지켜본 색동회 조재호씨가 소파는 “우리 어린이들을 어찌하오?” 란 단 한 마디를 남기셨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해는 언제나 씩씩합니다. 무서움을 타지 않습니다. 겁이 없습니다. 해는 쉬지 않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법도 없습니다. 어린이들이 해를 배우며 자라면 조선에는 수많은 태양이 생겨날 것이니, 기쁘지 않습니까.”라고 역설하며 1923년 5월, 선생님은 어린이날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9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라는 소파의 <형제 별>을 비롯해, 어린이 사랑 동요 운동은 전국에 울려 퍼졌다. 동요가 지닌 폭발력과 암울한 시기에 힘들 때일수록 동요를 불러야 더욱더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아셨기에 소파는 ≪어린이≫ 창간호에 동요 모집 공고를 냈다.
조선 방방곡곡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응모해 주옥같은 작품들이 생겨났다. 1925년 ≪어린이≫4월호에 서덕출의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란 <봄 편지>와 윤석중의 “책상 위에 오뚝이 우습구나야…”의 <오뚝이>가, 11월에는 최순애의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의 <오빠생각>이 입선되었다.
그리고 1926년 ≪어린이≫ 4월호에 이원수의 <고향의 봄>이 실렸다.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묶어주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들을 때 동요작가 이원수와 작곡가 홍난파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한편 잡지 ≪어린이≫와 방정환을 떠올리며 새삼 가슴이 뭉클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윤극영씨는 “어린이에게 우리말 노래를 주자”는 소파의 간청을 받아들여 1924년 ≪어린이≫ 2월호에 유지영의 <고드름>에 곡을 붙였다. 그리고 11월호에 대표작 <반달>을 발표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이란 동요의 <반달>은 조선 어린이들의 이미지였다. 이 모두가 명곡으로 오늘도 애창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2008년 합계출산율은 국가적 재앙 수준인 1.19명이고 올해는 1.0명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약 출산율 1.0명이 이어진다면 2018년부터 인구 감소로 돌아서 300년 후엔 지구상에서 한국인이 완전 소멸하게 된다며 어린이날을 맞아 매스컴에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1919년의 3·1만세 운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화 시킨 첫 봉화였다. 그 이듬해인 1920년, 2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찬란한 대한민국 건국 제1세대요, 1940년대에 생겨난 이들을 제2세대, 1960년대에 어머니 뱃속을 나온 이들이 제3세대다. 제1세대가 동요 보급 초기단계라서 널리 퍼져 부르지는 못했으나 1930년대에는 동요 부르기가 절정기에 이르렀고 제2세대인 광복을 전후한 1940년대에는 좌. 우익 극한 대립 등 급변하는 국내 정치 환경 변화로 동요가 소강기를 맞았다.
그런데 동요 보급 초기 단계인 1920년대 생들은 그 아들딸을 많게는 10명 내외에서 평균 5~6명씩을 1940년대에 생산했다. 그리고 동요 부르기 전성기를 맞아 늘 듣고 부르며 살았던 1930년대 생들은 평균 3~4명씩의 386세대를 낳았다. 이 386세대는 건국의 성장 열매를 배불리 따 먹으며 귀하게 자라서인지 아버지 세대를 욕되게 하며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며 진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지금도 말썽이란 말썽은 곳곳에서 다 부리고 있다. 이 무슨 조화일까.
가만히 되짚어 보면 알 것도 같다. 193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동요 부르기는 애국 애족이며, 공산주의 추구는 제국주의 구축이자 항일운동이요, 좌익은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386세대는 바로 이 1930년대 세대의 아들딸들인 것을...
제2세대인 광복 전후세대인 1940년대 생들은 동요는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으나 정부의 방침에는 적극 순응했다. 1970년대 당시 대구 인구인 80만 명의 어린이가 매년 태어나니 인구 과잉이 된다는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둘만 잘 낳아 기르자는 구호를 잘도 따랐다. 1950년대 생 이후는 어떠했을까. 아들 낳으면 잘해야 고속버스 타고 효도 관광 가지만 딸을 낳으면 비행기 타고 관광 가니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시책에 따라 하나만 낳은 가정이 상당수 있다.
여기에 남아 선호사상이 가세하여 성비(性比)의 지나친 쏠림 현상은 애 낳을 생산기반이 더욱 줄어들었다. 지금 동요 생성시기였던 건국1세대인 1920년대 후반생들과 1930년대 생들의 손자 세대들이 국가적 재앙 수준인 합계출산율 1.19명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아버지 세대들은 정부의 시책이나 따랐다고 하지만 이 세대들은 제 부모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환경인 저출산과 여권신장의 덫에 걸려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 어린이들을 어찌하오?’란 방정환 선생의 말씀을 선생님께서 다가올 오늘의 이 같은 애기 낳지 않는 현상을 예견하신 거라는 억지도 부려보게 된다. 지금도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는 선생님이 노래했던 저 드높고 밝은 해가 빛나고 있다.
한 가정마다 2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태어나서 저 해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고 희망에 마음이 부푼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러기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노력과 제반 여건 환경은 엉뚱한 방향으로 점점 왜곡되어 가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올곧고 건강하게 이끌어줄 어른은 다 어디 있는가. 푸르른 오월 그리고 가정의 달에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예찬>을 입에 올리기조차 너무 부끄럽다.
위 논단 내용은 당사의 견해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많이 본 기사
스케줄 많이 검색한 항구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