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후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은 북미항로와 유럽항로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운임회복에 나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유럽항로에선 운임을 기존 수준에서 두 배 이상 끌어올리는 강수를 둬 해운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선사들의 공격적인 행보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선사들의 얼라이언스 재편 등 합종연횡에 더해 물동량이 몰리면서 선사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운임은 연초에 비해 3배가량 인상됐다.
5월 초 북유럽항로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 기준으로 2000달러 가까이 뛰어 올랐다. 미국 서안항로 운임은 한 때 40피트 컨테이너(FEU) 기준 2700달러대까지 상승하며 첫 3000달러 운임 출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성공적인 운임회복은 컨테이너선사들에게 턴어라운드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운임회복이 시장에 안착한 2분기에 흑자 경영의 틀을 다진 후 3분기 성수기를 맞아 영업실적 상승세에 탄력을 더한다는 구상이었다. 4분기의 시장 하락을 효과적으로 방어해낸다면 1분기의 부진을 씻고 흑자전환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란 전망이 속속 제기됐다.
상반기 글로벌 컨선사 대부분 적자 못 빠져나와
그런 점에서 컨테이너선사들의 상반기 실적은 올 한 해 흑자경영을 이뤄내느냐 못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잣대로 평가됐다. 1분기의 적자 폭이 컸던 만큼 2분기에 이를 얼만큼이나 개선하느냐가 선사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지금까지 발표된 선사들의 상반기 실적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선사들은 2분기 이후 운임회복에 명운을 걸며 실적개선에 힘썼지만 내놓은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다. 해운시장 침체의 골이 깊다는 점만을 사뭇 확인케 했다.
선사들 대부분은 상반기에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2분기에 어느 정도 실적 개선을 이룬 선사도 있었지만 1분기의 막대한 적자 규모를 만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나란히 1억4700만달러 1억8900만달러의 손실을 냈다. 한진해운은 2분기에 718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1분기 2184억원이란 적자의 벽은 높았다. 한진해운은 2분기에 운임이 낮은 대량화주(BCO)와의 거래를 접는 대신 물량 규모는 작더라도 운임이 높은 일반화주 대상으로 한 영업을 강화하는 수익 개선 전략으로 2분기엔 그나마 흑자를 거둘 수 있었다. 현대상선은 2분기에도 컨테이너선 사업부문에서 38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운임을 14%가량 끌어 올리고 물동량도 7.6%가량 늘렸지만 부쩍 커진 원가부담 앞에 흑자전환의 꿈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세계 1위 정기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올 상반기에 3억달러를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덩치가 큰 만큼 적자 규모도 가장 컸다. 머스크라인 역시 2분기에 2억6500만달러의 흑자를 냈지만 1분기의 막대한 적자 폭을 넘어서지 못했다.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싱가포르 APL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양대 선사들도 모두 상반기에 적자의 늪을 빠져나오는 데 실패했다. 1분기의 부진이 워낙 컸기에 상반기 흑자 전환이 힘들 거란 관측을 하긴 했지만 적자 폭은 예상보다 꽤 컸다.
특히 일본 선사들은 2분기에 해당하는 2012 회계연도 1분기(4~6월)에도 컨테이너선 부문에서 흑자를 내지 못했다. MOL과 NYK는 이 기간에 각각 24억엔 33억엔의 손실을 봤다. NYK는 상반기 적자 규모면에서 머스크라인 APL에 이어 세 번째에 올랐다. 매출액 순위로 따져 볼 때 손실 폭이 다른 선사들에 비해 매우 크다.
홍콩 OOCL이 유일하게 흑자성적표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OOCL은 혹독한 해운불황이 엄습했던 지난해에도 이례적으로 흑자를 내 해운업계의 주목을 모았다.
운임회복 성공에도 불구하고 상반기에 대다수의 선사들의 큰 폭의 적자를 낸 배경엔 비용 상승이 있다. 머스크라인 하파그로이드 코스코 한진해운 등은 두 자릿수의 매출액 신장을 거뒀으나 운항원가 급증에 가로막혀 수억달러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특히 국제유가의 강세는 여전히 갈 길 바쁜 선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박연료유의 t당 평균 가격은 지난해 2분기 625달러에서 올해 2분기 716달러로 10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현대상선은 2분기에 선박연료비가 21%나 늘어난 게 흑자전환 실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선사들, 유럽항로 ‘사라진 성수기’에 난감
상반기의 저조한 실적으로 인해 올해 정기선사들의 지상과제였던 턴어라운드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성수기마저도 예년만큼의 시황호조는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분기는 전통적으로 아시아에서 북미나 구주로 나가는 물량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시기다. 선사들은 상반기 성적이 다소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3분기에 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성수기 효과가 크게 반감됐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부터 성수기 효과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선사들은 말한다. 오히려 3분기 이후 수요가 약세로 돌아서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북미항로는 미국 주택시장이 살아나면서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유럽항로는 2분기보다도 못한 3분기를 보내고 있다.
선사들은 3분기에 즈음해 북미항로와 유럽항로에서 기본운임인상(GRI) 또는 성수기할증료(PSS) 명목으로 대대적인 운임회복을 꾀했다. 하지만 희비는 크게 엇갈렸다.
선사들은 북미항로에서 6월과 8월에 실시한 운임회복이 모두 시장에 안착했다고 전했다. 운임이 다소 하락 추세를 보일 때마다 선사들은 FEU 기준으로 500달러 안팎의 운임인상안을 들고 나왔으며 결과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상하이항운거래소에 따르면 5월 말 230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미 서안 항로 운임은 6월 들어 2700달러대로 인상됐다. 선사들은 운임이 다시 하강추세를 보이자 8월에 GRI를 도입해 6월 수준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또 미 동안 항로 운임은 8월 한 때 4000달러대까지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8월10일자 상하이항운거래소가 발표한 상하이발 미 동안행 운임은 FEU당 4098달러를 기록했다. 미 동안항로 운임이 4000달러선을 넘어선 건 2010년 8월 이후 2년 만이다.
북미항로를 취항하고 있는 외국계 선사 한 관계자는 “현재 북미항로는 물동량이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 적재율)은 미서안항로의 경우 만선에 가깝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항로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 3분기 들어 운임이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6월 말 1900달러선에 육박했던 상하이발 북유럽 및 지중해행 운임은 지난달 말 1300달러선까지 떨어졌다. 두 달 새 500달러가량 빠진 것이다.
유럽지역의 재정위기가 항로 침체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3분기 들어서도 중국발 물동량이 늘어나며 만선 상태에 이르는 예년의 성수기 효과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선사들은 전한다. 최근 소석률은 오히려 2분기에 비해 더 떨어졌다. 한국발 유럽항로의 소석률은 현대상선을 제외하고 대부분 80%대 안팎에 머물러 있다. 80%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선사들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한 운임회복이 시장에 반영될 리 만무하다. 선사들은 7월과 8월에 TEU당 300~500달러 정도의 운임인상을 시도했지만 모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선사들은 9월 중순께 발효되는 300달러의 운임회복을 예고했지만 도입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선사 영업담당자들조차도 운임인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포착된다. 소석률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화주들이 쉽사리 선사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황회복 해답은 ‘수급 개선’
유럽항로는 올해 선사들의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하지만 선사들의 ‘헤쳐모여’도 선복과잉이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1만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들은 유럽항로를 타깃으로 시장에 들어왔으며 비대해진 선복량은 선사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이즈리스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상반기 동안 시장에 인도된 1만TEU급 이상 컨테이너선은 총 36척으로, 이 가운데 30척가량이 아시아-유럽항로에 투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앞으로도 에버그린이 8000TEU급 신조 컨테이너선 20척을 인도받는 것을 비롯해 공급확대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물동량은 하락추세다. 컨테이너트레이드스터티스틱스(CTS)에 따르면 상반기 아시아발 유럽항로 물동량은 675만TEU로, 지난해에 비해 2% 감소했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유럽항로는 해운시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중국발 물량이 약세를 보이면서 전체적으로 안 좋은 모습”이라며 “성수기를 맞아 선사들이 GRI나 PSS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오히려 운임은 더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시황회복의 해답은 수급 안정에 있는 셈이다. 최근 일부 선사들이 수요가 급감하는 중국 국경절 연휴를 즈음해 선복 감축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CKYH얼라이언스와 G6는 일찌감치 유럽항로의 동계운항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두 선사 그룹은 10월 초와 중순께 각각 유럽항로 서비스 한 곳씩을 세울 방침이다.
G6는 중국을 기점으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등을 취항하던 루프3 노선을 잠정 중단키로 결정했다. CKYH는 아직 정확한 세부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과 북유럽을 연결하는 NE1과 NE4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선복감축에 나선다. 두 그룹의 북유럽항로 서비스는 각각 5곳 4곳으로 줄어들게 된다.
두 그룹의 선복감축 노력도 한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3대 선사인 머스크라인과 스위스 MSC 프랑스 CMA CGM이 선복감축에 동참하지 않는 까닭이다. 세 선사들은 지금까지 동계운항프로그램을 도입한 적이 없다. 머스크라인은 중국 국경절을 맞아 북유럽 2개 노선 지중해 1개 노선 등 총 3개 노선을 한 항차씩 번갈아 결항하는 임시휴항 계획을 내놓은 게 전부다. 다만 머스크라인의 최고경영자(CEO)인 쇠렌 스코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11월부터 유럽항로 운임을 10%가량 인상할 방침이라고 말한 건 자못 의미심장하다. 머스크라인이 운임회복을 앞두고 모종의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외국선사 한 관계자는 “CKYH와 G6가 서비스를 줄이는 건 큰 결정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며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선 1~2위 선사들이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해 상위권 선사들의 선복감축 동참을 촉구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많이 본 기사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