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남 편집위원 |
최덕연 예비역 대령, 비상계획부장은 5.16 혁명과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중공업의 메카로 부상한 울산이 그 첫 삽을 뜰 때도 당시는 도청이나 시청의 지방 행정기관 보다도 입지 선정부터 인허가 업무, 시공에서 준공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한가지고 중정의 손길이 닿지 않거나 통제를 받지 않는 곳이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바로 중정 울산분실장 최대령 “내 손 안에 있소이다”였다는 자랑이었다.
업체들로 부터 식음을 대접받거나 향응을 받는 건 물론 돈 든 봉투의 접수 건수가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하긴 당시 중정 요원들은 국군 전문 정보기관 보안사나 경찰 정보계동과 함께 3각편대를 형성하여 행정부처나 산하 기구는 물론 단체나 그리고 개인 기업체에 이르기까지 소위 ‘출입처’ 삼아 사무실을 찾아다녔다.
신분노출은 않고 조용히 최고위직이나 차하급자를 만나 문닫고 귓속말만 나누고 가니 일반 직원들은 누가 뭘하러 왔는지 알 수도 없고 간부급이나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목례 정도를 나누며 지나치는 정도였다.
업계로 부터 일상적인 정보입수나 동향파악이 목적이긴 했겠지만 중정이나 보안사 및 정보나 외사계 형사 등 정보팀들이 뜰 때는 대개의 경우는 꼭 무슨 이슈가 되는 아이템이 있거나 주로 부정부패와 관련되는 불법이나 비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았고 간부급들은 “이번에는 무슨 일인데?”하고 다녀간 까닭을 수소문하며 수군대곤 했었다.
모두 사복을 입고 드나들기 때문에 신분이나 직급을 알수도 없었고 밝히지도 않았지만 상당수 현역도 있었고 주로 하위 직급으로 지금의 부사관급에 해당하는 하사관급이 많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최 대령의 경우는 언론을 담당하는
부국장금이었다니 왕년을 찾을만 했다는 생각이 당시보다 지금에사 더욱 실감이 간다. 특히 울산 분실장 시절에는 지프차를 선물받기도 했는데 그럴 경우는 출고된 어셈블리 제품을 포장도 뜯지 않은채로 발앞에 가져다 놓고 시동을 걸어 차량 타이어에 첫 흙을 묻히며 선임석에 앉아 시승식을 가질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그 위세를 짐작할 만 했다.
점심시간에 식사후 잠시라도 여유가 있으면 비상계획부장이란 보직이 업무분장상 크게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니 필자와 흘러간 옛 얘기 하기를 좋아했다.
다른 부서장과 달리 관심이 없어도 평소 비교적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싫은 내색않고 아무 애기나 잘 들어주는 필자인지라 아마도 서슬퍼렇던 시절의 향수를 달래며 자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었던 것 같다.
중앙 정부 주최로 해마다 여름철에 실시되는 도상 전시훈련 을지연습(CPX) 기간 일주일 정도만 해운항만청과 함께 상황실을 운영하며 협회 산하 회원선사 비상계획부를 지휘통솔하며 훈련의 중심역을 담당하는 일 외에는 크게 일거리가 많지 않은 때문이었다.
또 울산 분실장 다음에 동경 분실장으로 옮겨 해외 근무를 하던 얘기와 가족을 두고 떠난게 부인과의 비극적 종말을 초래한 계기가 됐다는 악몽을 얘기할 때는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며 서글퍼 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한 국가 중앙 정보기관의 고급 간부로 온갖 정보를 다 수집 분석하며 주물러도 자기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정보는 심증적으로는 파악하면도 직접 수사를 담당하거니 지휘할 순 없었단 대목에서는 필자도 함께 분노하는 것으로 아픔을 같이해야 했었다.
또 유쾌한 기억으로는 어느날 최대령이 필자에게 잘 나가던 왕년 얘기에 열을 올리는 중에 김 이사장이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마침 이를 엿듣고 “최대령! 귀하가 왕년 자랑을 하면 나도 왕년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라고 해서 중정이었지만 아무렴 육군 대령이 설마 육군 대장만이야 했을까, 한전 앞에서 촛불을 켠 격이 된 걸 계면쩍어 하면서도 모두 한바탕 크게 웃던 모습이 두 사람 모두가 타계한지 오래지만 지금도 필자 기억에 생생히 재생된다.
그 시기에 해상운송 시스템의 컨테이너화가 세계적인 추세였고 우리나라도 컨테이너선 전용부두 건설을 서둘러 세계은행(IBRD) 자금을 들여와 재래식 5부두와 6부두를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축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교통부에 해운부서가 있었지만 세은서 자금회수를 책임질 기구 설립을 요청, 별청으로 항만청(KPA)을 만들고 보안사령관을 지낸 윤필용사건 관련, 강창성 예비역 소장이 부임했다. <계속> < 서대남 편집위원 dnsuh@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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