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2 07:00

KSG에세이/ 바다의 날에 즈음, 해양문학 산책 - (9)

서대남 편집위원
“바다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삶의 무대”
원양어선 船長 천금성(千金成) 海洋소설가 (하 - 4)

서대남 편집위원
필자가 앞서 언급했듯이 외항해운, 원양어업 및 선박건조 등 바다 연관 3박자 산업에서 세계 최 상위권을 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해양문화 측면으로는 아직 별다른 관심이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와 종사자들에게 작은 메시지라도 전하려고 시도한 졸고 '해양문학 산책'이 김성식 선장 시인은 타계했지만 천금성 선장 소설가는 엄연히 생존해 있음에도 그저 원양어선 선장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라는 사실과 몇몇 발표된 작품이름 및 한때 화제가 됐던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외엔 일면식도 없는데다가 취재를 하려고 수소문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아 상당히 불안한 가운데 지면을 메워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며칠전 다행이도 연락처를 알아내고 손전화로 극적인 통화를 하는데 성공했다.



▲ 필자 수소문 끝에 釜山거주 千작가와 첫통화 e-mail 수신

알고 보니 은둔해 거처를 숨긴 것도 아니었는데 우선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필자의 노력이 부족했고 또 학연위주의 알만한 지인을 통해서만 알아보려던 방법의 선택과 과정이 빗나간 탓으로 돌릴 수 밖에.

필자 보다는 한살 위. 생면부지였으나 예상과 달리 첫 통화에서 곁에 있으면 당장에 양념 꼼장어 구이에 두꺼비 소주라도 몇 병 비우며 얘기가 될 법한 술 벗 같이 편한 분이란 필링이 꽂혔다. 필자가 한국선주협회 근무 시절 해기사 출신으로 출입기자를 했고 현재 한국해기사협회 월간 ‘해바라기’를 전담하고 있는 수필가 김동규 편집국장과 역시 필자와 1981년 한국해대 실습선 ‘한바다호’를 타고 함께 원양 승선실습을 했고 한국해대에서 불문학과 해양문학을 강의했던 황을문 명예교수를 통한 접선(?)이 드디어 주효했던 것이다.

전화후 첫 메일에서 가까이 있다면 책도 증정하고 “당장 한잔 나누고 싶다”는 얘기가 제일 필자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현재 부산에서 기거하며 집필중이라고 했고 “내가 상경하거나 선생이 하부하거나 기회가 있겠지요”하며 필자가 글로는 몰라도 우선 술로는 통하겠다는 여운과 암시를 주는것 같았고 작가 본인에 대한 자료도 어디서 많이 확보하느라 수고했다는 칭찬도 잊지 않아 앙금처럼 뇌리를 맴돌던 그간의 천작가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이 일시에 가셨다.

傳記집필에 앞서 軍관계자로 부터 취재 중인 千작가


▲ 東亞日報 칼럼보고 허문도氏 전화로 全장군 일대기 집필 부탁

거리로나 시간 관계상 당장 만남은 어려운바 작가의 모교 경남고등하교 동창회보에 실었던 내용을 인터뷰 대용물로 보내오는 성의마저 보였다. 필자로선 고맙기 그지없고 머잖아 조우나 해후가 있을 것이란 기대에 안도하며 앞당겨 지면으로 상봉을 하게됐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를 일이다.

상술하진 못했지만 작품에 대해선 그간 여러차례 제목이라도 나열했기에 이젠 해양문학 작가로서의 인간 천금성이 살아온 삶과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꼬이거나 좌초했다고 표현한 지난 날의 어둡던 그림자를 24회 졸업 이상룡 편집위원이 동창회보에 실은 “전두환 일대기를 쓰고는 내 인생이 꼬였다.” 제하의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 해 본다.

경남고 14회 출신(1960년 졸업) 파랑(巴浪) 천금성 작가는 1980년대초 소위 신군부세력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의 일대기를 쓴게 단초가 되어 격랑의 물결을 타게된다. 천작가는 인터뷰를 시작하자 할 말이 많은 듯 속사포로 말을 이어갔다고 했다.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는 자주 한숨을 쉬었고 무엇에 북받치는 듯 ‘죽고 싶다’는 말까지 내뱉기도 했다고 한다. 70살이 넘은 노작가에게서 ‘자살’ 운운하는 말을 듣고 있기가 거북해서 다방에서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소주잔을 놓고 다시 마주 앉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두환 대통령의 일대기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쓰고는 한마디로 혼이 났던 셈이네요.
“혼 난 정도가 아니지. 그걸 쓰고부터 내 인생이 뒤죽박죽, 말 그대로 엉망이 되고 말았지.” 수없이 날아왔을 돌맹이들(?)

그는 “그 일로 인해 글 쓸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문단에서 그를 ‘어용작가’라면서 철저히 ‘왕따’시켰다는 것.

오래 전 일인데도 문단의 외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당시 허문도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했던 걸 알게 됐지. 내가 세상 물정을 워낙 몰랐고 어리석었어. 역사의식도 없었지. 그러나 지금 와서 후회한들 뭐하겠나”

천 작가는 원양어선 선장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인도양과 남태평양 등지에서 참치를 잡으며 바다를 소재로 하는 소설을 잇달아 발표, ‘우리나라 해양문학을 개척했다’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한 때는 ‘아주 잘 나간 작가’였다는 사실은 전술했듯 필자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1980년 8월. 12년간의 원양어선 선장 일을 끝내고 잠시 배에서 내려서 경향신문에 <표류도>라는 제목의 소설연재를 막 끝냈을 때였다. 동아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 서울대 재학시 農大학보 편집 선후배로 許氏와 인연 맺어

조오련 선수가 대마도까지 헤엄을 쳐 건너는 쾌거를 이뤄냈다며 그것과 관련해 칼럼을 써달라는 원고청탁이었다. 그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던 것. ‘지느러미도 갖지 않은 인간이 그 무서운 해류가 흐르는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다니…’ 운운으로 조 선수의 투지와 용기를 치켜 올리는 글을 써 보냈고 그게 8월 13일자 지면에 실렸다.

천 작가는 “그 칼럼이 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말하더라는 것. 그 칼럼이 나간 바로 그 날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서리 비서실장이었던 허문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허씨와는 서울대 농대에 재학 중 농대학보를 함께 만들면서 친하게 지냈던 사이. 그러나 대학 졸업 후에는 서로 연락이 통 없었다.

허문도씨는 “배 타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서울에 있었구먼. 칼럼을 잘 읽었다. 당장 만나자”고 했다. 그날 남산의 중앙정보부에서 만난 허문도씨는 거두절미하고 A4용지 크기의 인사기록카드 한 장을 보여주며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허문도씨가 “곧 대통령이 될 분이다. 지금 나라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데, 우리가 다 한다(개혁을 주도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 분 일대기를 써 봐라”고 했다는 것이다. 천 작가가 “전기 같은 건 써 보질 않아서…”라며 망설이자 허씨는 “그게 뭐 어렵냐. 취재 좀 해서, 또 다른 전기들을 참고해서 쓰면 되지”라며 강권했다고 한다.

그는 허문도씨가 동아일보에 난 칼럼을 읽고는 자신에게 전두환 일대기를 쓰도록 하여 당시 실력자에게 ‘크게 한 건 해 올릴 궁리’를 했음이 틀림없었다고 말했단다. <황강에서 북악까지>는 그렇게 남산 기슭에서 기획되었고 ‘또 하나의 작전’으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이 작전에서 천 작가는 ‘재주를 넘은 곰’이었고 모든 생색과 공은 결국 허문도씨가 차지하고 말았다고 단언했다는 것.

▲ 사례도 제대로 못받고 ‘어용작가’로 문단서 ‘왕따’당해 억울

천 작가는 집필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인 10월 말 원고를 완성한다. 200자 원고지 1천4백장 분량이었다. 허문도씨에게 원고를 넘겼더니 끝 쪽에 정리된 ‘12.12’ 관련 내용을 보고는 “이런 걸 넣으면 안 돼”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하고는 50장 정도의 원고를 제 멋대로 빼내 버렸다고 한다. 책 제목도 허문도씨가 일방적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전기 <땅콩밭에서 백악관까지>가 출판됐는데 그 제목을 본 딴 것이었다고 했다. 허문도씨는 완성된 원고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네 읽어보도록 했고 따로 신군부 핵심세력들에게도 회람시켰다고 했다. 나중에 허문도씨에게서 “각하가 원고를 읽어보시고 크게 만족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천 작가는 ‘청와대에서 사례를 두둑히 하리라’고 내심 기대했으나 두어 달이 지나도록 아무 기별이 없었다. 이때까지 그가 허문도씨에게서 받은 돈은 착수금 50만원, 그 후 중간에 50만원, 또 탈고하고 나서 받은 100만 원 등 달랑 2백만원이 전부였다. 불만이 쌓여가던 중 그해 10월 말경 허문도씨에게서 마침내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영부인께서 보자고 하니 급히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이제야 뭔가 인사를 제대로 받겠구나 싶어 기대가 컸다. 이순자 여사는 그를 반기며 “내가 전씨 가문에 시집온 지가 21년이나 되어 알 만큼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책에는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 많아 놀랐다” 며 “작가님이 수고를 아주 많이 하셨는데, 이를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라며 자리 옆에 붙은 높이가 낮은 서랍 쪽으로 손을 뻗치는 시늉을 했다는 것.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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